극단 <미르>가 창단 10주년을 맞이했다. 대표 이재상에게 10주년은 <미르>가 어떤 색을 간직하고 있는지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다. 올해 4월, 그는 <미드나이트 포장마차>를 시작으로 앞으로 2년에 걸쳐 극단 레퍼토리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극단의 색깔을 되짚어 보기 위한 그의 긴 여정을 이제 시작하려 한다.
Q.<미르>가 창단한 지 10주년이 되었지만, 연극인의 삶은 살아온 것은 자그마치 30년입니다.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연극을 시작한 계기는 조금 우스워요. 처음에는 시가 잘 안 써져서 연극을 3년만 해보자고 결심을 했죠. 책상 앞에서 고민만 하다가는 글이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때마침 합창단에서 만났던 선배님이 극단을 만든다는 소식에 그 문을 두드렸어요. 그때 이후로 연극이 저랑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틀었죠.
Q. ‘미르(MIR)’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MIR에는 세 개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하나는 우리나라의 옛말인 ‘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두 번째는 러시아어로 ‘평화로운 세계’라는 의미가 있어요. 마지막으로는 ‘Moving Island on the Road(길 위에 움직이는 섬)이라는 약자예요. 저는 인간 자체가 하나의 섬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길 위에서 온전하게 자신의 세계를 지키면서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위로 하늘의 뜻을 살피고, 주변을 보살피고, 인간 개인은 자신의 세계를 지키며 묵묵히 길을 걷자’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MIR에는 제가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관이 모두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미르>를 10년 동안 운영하시면서 가장 큰 변화나 전환점이 있으셨나요?
<미르>는 신중히 생각해서 창단한 두 번째 극단이기 때문에 큰 변화는 많지 않았어요 다만, 처음에 레퍼토리 시스템을 목표로 한 달에 3~4개의 작품을 연속 공연한 적이 있는데 관객이 늘지 않는 거예요. 한 달에 2편 이상 연극을 보는 일이 일반적으로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전용 극장이 생기기까지 레퍼토리 시스템은 무리라는 생각을 했죠. 이번에 10주년이라 레퍼토리 시스템을 다시 점검하지만, 여전히 전용 극장에 대한 아쉬움은 큽니다. 언젠가는 전용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레퍼토리가 발전, 성장, 소멸하고 재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올 거로 생각해요.
Q. 10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그동안에 굵직하고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셨습니다. 이번 10주년을 기념하여 <미드나이트 포장마차>,<보이체크>,<현자를 찾아서> 작품을 선정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작품마다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나요?
MIR레퍼토리는 기본적으로 제가 만든 작품과 고전작품을 공연하겠다는 생각을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다루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외부 연출을 하므로 굳이 다른 작가의 작품을 MIR에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죠. 지금도 이 생각에는 큰 변화는 없습니다. 만약 MIR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을 공연한다면 다른 사람이 연출하거나, 그 작품이 고전만큼이나 큰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겠죠. 이번 10주년 창단도 제 작품 2개와 고전작품 1개를 묶어서 시즌 별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미드나이트 포장마차>는 가족의 의미와 사회의 정을 그렸고, <보이체크>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소외 문제, <현자를 찾아서>는 자신의 길에 대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앙상블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한 작품의 양식으로나, 형식 면에서도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Q. 포장마차에서 실제로 <미드나이트 포장마차>공연을 펼쳐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드나이트 포장마차>야 말로 조명 없이도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는 공연 도중에 창문 틈새로 소음이 들렸는데도, 객석 입장에서는 위화감 없이 관람할 수 있었어요..
Q. 인천과 일본을 넘나들면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인천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선생님과 극단 <미르>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인천은 제가 백일 때부터 자라왔던 곳이고, 연극인으로 성장할 수 있던 베이스캠프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술가에게는 ‘활동하는 지역보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렸을 적 인천에서 연극 수업을 할 때 여건상 어려움이 있어 친구들이 서울로 많이 떠났었죠. 그러나 그 와중에 인천에서 몇몇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서 연극에 대한 공부 방향과 태도를 꾸준히 잡을 수 있었어요. 여전히 저의 경험과 책이 제 스승이라고 생각하지만, 연극에 대한 방향성과 태도는 그 당시 선배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인천에서 그런 선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인천에 계속 머무르고 있습니다.
Q. 지역 극단으로 꾸준히 나아가기 위해 지향하는 가치가 있을까요?
연극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데 지역성이 모호한 현시대에서 지역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단지 서울의 물리적인 인접함이 인천의 특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서울이 가까우니 인력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죠. 하지만, 그 반대로 인력유입도 매운 쉬운 환경이라 인천의 배우들이 다른 지역의 배우들로부터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는 우려도 있죠. 현재, MIR의 바람직한 모습은 기본을 닦고 성장한 선배들이 후배양성을 도와주고 여러 지역,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펼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직 선배들도 삶에 여유가 있지는 않지만, 조금씩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Q. 오랫동안 극단을 유지할 수 있던 원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에게 연극은 제가 살고자 하는 삶의 목표나 방법과 가장 근접한 방식이기 때문에 그만두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극단이란 연극적 철학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단을 처음 창단했을 때도 단원모집을 따로 하지 않았죠. 그리고 우리 극단은 탈퇴가 매우 쉬운 극단이기도 해요. 단 가입할 때는 연수과정을 우선 거치는데 서로 어울리는지 판단하는 데 약 1년이라는 시간을 갖습니다. 또한, 조금 다른 길과 꿈을 갖고 극단에 들어와도 별로 문제를 삼지 않지만, 극단에 있을 때는 극단의 규칙과 정신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보니 재미있는 구성이 되었습니다. 단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룹, 연기를 배우러 들어온 그룹, 들락날락 하는 객원들이 있죠. 가끔 본인들을 ‘정신적인 단원’이라고 말하는 그룹도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MIR와 함께한 많은 이들이 크게 평가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태지윤
글/사진 이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