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상경 重庆上庆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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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한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 국제교류사업인 <중국십방아트센터>교류사업에 에 참여한 작가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2018년 3월 20일 저녁 중국 중경(충칭)에 도착했다. 세번이나 방문한 중국을 우연하게도 모두 중경에서 보냈다. 작년 여름, 중국 리장의 아트레지던시에 참여 중, 중경에 사는 작가들을 만난 인연으로 나흘 정도 관광을 왔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인천문화재단 ‘인천-충칭’ 문화예술 국제교류 사업을 통해서 중경의 예술 기관들을 탐방할 수 있었는데 그때 방문했던 십방아트센터는 나에게 따뜻한 인상을 주었다. 낡았지만 운치 있는 독특한 구조의 건물은 햇빛이 잘 들었고 의외로 많았던 스태프들은 다들 무척 친절했다. 무엇보다 긴 복도에 가지런히 나열된 높은 층고의 복층 작업실을 보는 순간 ‘여기 한 번 올만 하겠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6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중경에 도착한 나는 공항에 마중 나온 Jing과 함께 곧장 훠궈(hot pot) 식당으로 향했다.

베이징 출신의 Jing은 십방아트센터에서 레지던시 관련 일을 맡고 있다. Jing이 올해 2월 국제교류사업 때문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난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에 편하고 반가웠다. 그는 트래픽 때문에 나보다 조금 늦게 공항에 도착하는 바람에 결국 사용하진 못했지만, 도착 출구에서 나를 기다리며 푯말을 들고 있으려고 했다. 그가 푯말을 보여줬다. 아니 이것은…! 내가 얼굴에 물감을 칠하고 퍼포먼스를 하는 장면을 출력해서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 친구의 유머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작가 출신인가보다. 돌발행동이 꽤 창의적이고 재밌다. 물론 실제로 사용했다면 결과도 굉장히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중경은 베이징, 톈진, 상하이와 같은 직할시로서 그 중 유일하게 서부에 있다. 자그마치 300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니 인천 인구의 10배다. 면적은 대한민국의 2배가 조금 넘는다니 역시 중국의 규모는 남다르다. 지리적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기 때문에 안개가 많이 끼고 날씨 또한 덥고 습하다. 덥고 습한 날씨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중경의 가장 유명한 음식은 훠궈(hot pot)다. 그 매운맛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이나 베이징에서 먹은 훠궈랑은 차원이 다른 매운맛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괴롭게 먹는 것 같지만 며칠이 지나면 보글보글 끓는 빨간 고추기름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침샘을 자극한다. 경험상으로는 번듯하게 잘 차려진 식당보다 현지인들이 잘 가는 후줄근한 곳에 가야 진짜 훠궈를 경험할 수 있다. 웃옷을 벗고 시끄럽게 떠들며 먹고 있는 아저씨가 있다면 원조 훠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십방아트센터가 있는 왕지아핑(Wangjiaping)이라는 지역은 약간 낙후된 곳으로 노동자와 서민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레지던시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 양지아핑(Yangjiaping)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20분 정도 가야 한다. 반대 방향으로 15분쯤 걸어가면 중국의 미술대학 중 두 번째로 알아준다는 사천예술대학교가 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 장 샤오강도 이 대학 출신이다. 2005년에 여기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새로운 캠퍼스가 만들어지면서 학교 대부분이 이전하는 바람에 여기 구 캠퍼스는 몇 가지 수업을 진행할 뿐 역사를 보여주는 관광지가 된 것 같다. 10년 전 사천예술대학에서 추진한 엄청난 스케일의 벽화들이 동네의 수많은 아파트와 건물의 외벽에 넘쳐나는 것을 보면 대대적인 차원에서 지역 발전에 힘썼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Jing의 말에 의하면 사천예술대학의 캠퍼스 이전으로 이곳은 내림세를 타며 다시 낙후됐지만 최근 정부에서 이 지역을 다시 중경의 예술 중심지로 발전시키기로 하였고, 따라서 십방아트센터는 본연의 의무에 더 충실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십방아트센터는 예술에 관심이 별로 없는 지역 시민들 일지라도 예술을 함께 공유하며 소통하고자 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지역과 사회를 연구하는 작품을 지원한다. 멋진 취지와 열정으로 형성된 비영리 기관 십방아트센터의 대표 정투(Zeng Tu)는 사천예술대학의 Cross Media 과의 교수이기도 하다.

컨셉이나 사상을 배제하고 오로지 재료의 연구에만 집중한 작품들을 만드는 것이 수업의 취지였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을 빼고 재료와 물질에만 집중하니까 오히려 생각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지역에 익숙해지고 작업실도 모양새를 갖춰갈 때 즈음 나의 예전 작업과 앞으로 이곳에서 진행할 작업에 대한 발표 날짜가 잡혔다. 넓은 소파가 있는 편안한 회의실에서 디렉터 정투와 다수의 관계자, 그리고 레지던시 작가들이 함께했다. 20분 발표와 20분 질의응답이 있었고 사천미대의 학생이 영어-중국어 통역을 해줬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됐다. 내 뒤로 두 명의 작가가 발표를 이어갔고 3시에 시작한 미팅은 6시 반이 넘어서 끝났다. 이전에도 느낀 점이지만 중국 작가들은 토론과 발표에 꽤 자발적이고 열정적이다. 형식과 예우가 갖춰진 환경에서 예술에 대한 평가, 조언, 비판은 작가에게 귀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봤을 때 한국에서는 작품에 대한 비판에 예민해서인지 서로 조심하고 말을 아끼는 것 같다.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비평보다 지적하고 가르치려 하는 평가에 위축된 게 아닌가 싶어 아쉬움이 있는 부분이다.

 어느덧 레지던시에 온 지 3주가 지났다. 여느 레지던시와는 조금 다르게 지원일과 입주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십방아트센터는 각각의 작가들이 입실하고 퇴실하는 시간이 자유롭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1년도 넘게 있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처음 왔을 때는 기존의 작가들과 친해지기가 조금 힘들었다. 같은 기수라는 동질감이 없고 무엇보다 영어를 잘하는 작가가 너무 없었다. 대부분의 식사를 근처 식당에서 사진으로 주문해서 혼자 먹었는데 저번 주부터 여기 작가들과 부엌에서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친해지니까 다들 착하고 친절하고 요리도 잘한다. 식사 준비됐으니 와서 먹으라는 문자가 오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전철역  대형마트 수입코너에 한국 고추장부터 된장, 김치까지 다 판다고 하니 언제 시간을 내서 한국요리를 대접해줘야겠다. 

글, 사진/ 박경종 작가

 

박경종 작가는 페인팅, 애니메이션,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현실을 빗댄 상상의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예술활동지원 역량강화 분야에 선정되어 중국 중경에 위치한 십방아트센터에서 3개월 레지던시 활동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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