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전거로 사쿠라기초에서 신바시까지 달리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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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문화통신은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다양한 국제교류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소개하는 다른나라 문화소식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국제교류사업으로 일본의 요코하마 뱅크아트1926, 인도의 산스크리티재단과의 교류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소식을 격호로 싣습니다.

일본에서 전차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국도만큼 조밀하게 짜여져 있는 전철의 총연장은 2만 7천km정도로 세계 15위권에 지나지 않지만, 수송량은 연간 80억명, 수송분담률 29%로 단연 세계 1위의 철도 국가이다. 1872년 일본 최초로 개통된 요코하마 사쿠라키초역(桜木町駅)에서 도쿄의 신바시역(新橋駅)까지 철도길은 아직도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진ⓒ노기훈

오늘은 일본 최초의 철도라는 사쿠라키초역(桜木町駅)에서 신바시(新橋駅)까지 왕복 60km를 자전거를 타고 달렸습니다. 갈 때는 신나게 달렸는데 올 때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갈 때는 밝았는데 올 때는 어두웠거든요.

갈 때부터의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일본의 낮은 한국보다 훨씬 맑습니다. 하늘도 파랗고 대기오염이 없어 태양이 눈으로 바로 들어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그 빛을 좀 더 빨리 맞받아 나가는 기분인데, 그럼에도 선글라스를 굳이 챙기지 않는 이유는 운전을 해야하는 경우만 제외하면 사진을 찍는 사람이 탈색된 풍경을 바라보는 것에는 여러 아쉬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이 아프기도 한 빛을 맞으면서도 계속 자전거를 몰아 나가기로 했습니다.

요코하마 사쿠라기초역은 제가 살고 있는 간나이역 인근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단지 한 정거장 거리입니다. 뱅크아트NYK 스튜디오에서도 걸어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인천역과 인접한 것과 같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사쿠라키초역에 도착해서 구글맵을 체크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기필코 도쿄에 다녀 오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걸어가면서 보는 모습이 아니면 자전거를 타니 사진을 찍기 더욱 어려웠습니다. 괜찮은 풍경이 보이면 자전거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는데 걸어가면서 연속적으로 보는 풍경과는 멀어지게 되어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만, 거리에 차가 함부로 주차되어 있지 않은 미나토미라이 일대를 관망하면서 같은 기획으로 탄생했지만 처지가 다른 송도와 청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도 어서 빨리 불법주차 단속이 엄격하게 시행되어 비상정지 깜빡이가 면죄부가 되는 상황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에 있는 대규모 테마파크가 있다. 그곳에는 높이 112.5m에 48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세계 최대급인 관람차 코스모클록21이 있다. 정상에서 도쿄를 바라보면 도쿄타워가 보인다. 사진ⓒ노기훈

거리는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평일에는 검은색 정장 차림에 표정 없는 직장인들만 간혹 보이던 곳인데 주말만 되면 도시 구성원에 대한 대대적인 일제검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평상복 차림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해맑은 모습으로 신도시 일대를 빽빽이 메우는 곳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자전거 횡단보도에서 살짝 삐그덕하며 자전거에 오르는 바람에  옆에 지나가던 아이에게 부딪힐 뻔해서 “어디 주변도 살피지 않고 올라? 뭐야 정말?”이라며 아이 어머니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화난 일본사람의 표정을 본 첫경험이었습니다.

계획된 도심구역이라 그런지 미나토미라이의 보도는 직선에 가깝게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옆 쪽으로 휑하니 잡초만 돋아나 있는 공터도 여럿 보였습니다. 빌딩숲 속 개발의 틈에서 비켜나간 자리에는 땅이 살아나고 풀을 키웠습니다. 인간이 가꾼 빌딩이 올라간 만큼 사람마저 시스템에 집어넣어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속을 층층이 꿰차는 것처럼 규율과 법칙으로만 가득 차 보이는 일본에서도 흙이라는 빈틈이 자라나고 있는가 봅니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후달리는 허벅지를 한번 보고 그리고 옆으로 지나가는 전차를 확인하고 멀리서 날아오는 요코하마만의 바다 냄새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킁킁거리며 앞으로 달렸습니다. 해를 보니 북쪽으로 가던 방향이 동쪽으로 우회하는가 싶더니 장엄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요코하마역을 장면의 밖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빌딩과 수로로 큼지막하게 구획을 나눈 몸통 위로 아무렇게나 꼬아놓은 듯 보이지만 정확한 계획에 따라 날실과 씨실로 나뉜 옷가지를 덮은 식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요코하마의 심장은 요코하마역이었습니다. 웅크리고 있던 요코하마역이 에반게리온처럼 천천히 일어나 휴일을 즐기는 일본사람들에게 일제히 환호를 받을 것 같았습니다.

요코하마역 일대는 종합쇼핑몰, 먹거리타운, 레저시설이 밀집해 있는 요코하마 최대의 중심지이다. 사진ⓒ노기훈

실제로 요코하마역은 JR 5개 노선, 사철 4개 노선, 시영지하철, 각종 버스 등이 있는 대규모 터미널입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요코하마에 오자면 NEX티켓으로 요코하마역에 오는 것이 가장 싸고 편리하고, 하네다 공항에서도 새벽 2시 20분까지 있는 직항버스를 타면 바로 도착하는 곳도 요코하마역입니다. 위에서 밑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그리고 기차로 버스로 가로질러 다른 곳으로의 절차가 이곳이 요코하마라면 필히 요코하마역이 대장입니다. 일본 제2의 도시로써 도쿄의 명을 받아 요코하마는 작동합니다.

역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밖으로 드러난 위용을 보면서 내심 부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자전거를 타며 인파로 인해 속력을 내지 못하고 가끔은 놀래 서있기도 하면서 요코하마역을 빠져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미래 도시와 같은 모습들이 차츰 시들해졌습니다. 건물이 점차 낮아지며 사람들도 뭔가 의기소침해 보였습니다. 어깨가 구부정한 노인들이 넓은 도로에서 작은 도로로 빠져나오는 차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이런 느낌이 일본의 교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의 골목길에는 불법주차된 차들이 거의 없다. 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될만큼 철도가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다. 때문에 굳이 중심지에 살지 않아도 되기에 부동산 투기 현상도 한국보다 덜하다. 사진ⓒ노기훈

사진과 자전거를 동시에 다루는 일은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는 지나 있었습니다. 벌써부터 안장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내심을 발휘해서 조금 지나면 자전거가 맞추든 내가 맞추든 누구든 서로에게 맞추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도쿄로 흡수되어 가는 요코하마 쪽은 짱구의 집같은 일반적인 주택이 많았습니다. 문득 인천 도화동의 어느 집 대문 앞에서 보았던 모란이 생각났습니다. 모란꽃은 뭔가 사진을 찍게 만드는 힘이 있었던 피사체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주택은 담이 거의 없고 현관문이 바로 골목길과 연결된 형태가 많은데, 집주인에게 허용된 그 작은 틈 사이에도 예쁘게 가꾼 작은 화분이나 취향에 따라 자신들이 모시는 신과 닮은 도자공예품을 가져다 놓습니다. 과한 집은 집에 물건들이 차고 넘쳐 현관에 이른 듯 현관을 애써 찾아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풀과 장식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일본의 마니아틱한 영화들을 보면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한 할머니가 사는 그런 집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 집의 현관을 살피면 그 집의 도로의 차선을 넘겨서 집 앞을 사유재산화한 불편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나 하나 뿐이라는 생각은 공공이 마련한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고라는 점을 몸소 습관화하고 있습니다.

더욱 조심스럽게 교통 안내선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동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횟수에 비례해서 배는 텅텅 비게 되어 역 근처로 가서 뭔가 먹을까 하다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어느 하나 뒤떨어져 보이지 않는 이 많은 일본 음식들 속에서 괜히 주변부만 서성이며 가격만 확인하다가 다시 자전거에 타게 되었습니다. 무리해서라도 가와사키까지 가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음식들을 가려나가기로 했습니다.

수로와 철도가 만나는 풍경. 철도가 집을 가르고 수로가 마을을 양분하는 모습은 일본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사진ⓒ노기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요코하마와 도쿄 일대의 특색으로 느껴졌습니다. 잔잔히 흐르는 수로들 위로 오래되어 보이는 철제 보강제를 밟고 전철들이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쉴 새없이 다녀서 아주 긴 열차 한대가 시간을 들여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2층짜리 좁은 집들이 차 하나가 지나갈 듯한 길을 마주보고 서로 이웃하며 있었습니다. 골목 사이로 간혹 너풀거리는 빨래만 차선을 넘어 허공을 침범하고 있었습니다.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지 않는 사람들과 빨리 달리지 않는 차들을 보면서 문득 얼마 전 요코하마 관계자로부터 들은 내용이 기억났습니다. 요코하마시가 2003년 ‘창조도시 요코하마’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 소음 규제와 관련한 전문가가 도심재개발 사업에 투입되어 간나이 쪽 도심을 설계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소음을 공해 차원에서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 저는 한낱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그 도시를 다루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했다면 어디쯤 왔을까? 지금 보이는 일본의 모습을 인천의 어딘가와 견준다면 어디가 괜찮을까? 사진을 찍기로 마음먹고 다니는 길이라 주변의 정황들이 사진 속에서 인천과 도쿄의 관계로 맺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 반대로 인천과 요코하마의 중간지대에 있는 풍경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도 보고 싶었습니다. 인천도 분명 아닌데 일본은 더더욱 아닌 그런 풍경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 감지되게 될지 궁금해져 왔습니다. 점점 요코하마와 도쿄의 중간이라는 가와사키시에 가까워져 가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더욱 심해졌습니다. 마침 운이 좋게 조시키라는 곳에 큰 시장이 있어 그곳을 횡단해 가면서 눈요깃거리가 많아져 눈을 믿고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가면서 본 풍경 중에서는 가장 소리를 크고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장은 어딜 가나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인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음식의 가격은 간나이의 절반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아케이드가 눈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자전거에 내려 천천히 구경하면서 일본어 소리에 집중했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단어들이 나와서 내용을 안다 싶으면 그새 또 다른 단어가 나와 귀를 막았습니다. 그래도 그 미묘한 억양과 표정으로 신포시장에서 봤던 상인들의 얼굴을 기억해 내게 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배가 고파져서 신포닭강정을 닮은 일본식 닭 튀김 가라아게를 시키려고 했는데 뒤에서 먼저 외친 고등학생 때문에 밀려나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뒤돌아 다시 가던 길에 가기 위해 자전거를 대고 근처 편의점에서 에너지 음료를 사서 바로 다 들이켰습니다. 아직 도쿄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글,사진/ 노기훈 작가

 

노기훈은 2017년 인천아트플랫폼-뱅크아트 스튜디오의 국제교환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8월부터 11월까지 일본에 체류한다. 사진카메라와 영상카메라로 주로 찍어 내는 활동에 관심이 많으며 사진과 기행문을 동시에 써서 글로 찍기도 한다. 인천역에서 출발하여 노량진역까지 최초의 철도 경인선을 따라서 사진 찍었으며, 지금은 일본 1호선인 사쿠라키초역에서 신바시역까지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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