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구 신포동 시장 안에 있던 옛 선술집 ‘백항아리’에서 뵌 분 중에는 권투인 김병옥(金丙玉) 선생이 계시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고 언변 또한 조용한 분이셨다. 조용히 약주 잔을 드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신태범(愼兌範) 박사께서 생전에 김병옥 선생에 대해서 쓰신 구절이다. 인천은 개항과 더불어 모든 서구 문물이 들어오던
곳이어서 일찍이 여러 분야에서 개화사상을 가진 분이 많았는데, 선생도 체육 쪽에 그런 선구적 생각을 가지신 분이었던
것 같다. 또 한편 개항 이후 인천 사람들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대변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김병옥 선생이 활약하시던 시절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던 시기여서 불행하게도 선수로서 올림픽 같은 큰 국제 시합에
나가 이름을 빛내거나 하시지는 못했다. 국내 대회나 아마추어 권투 한일 대항전 같은 시합에 대표로 나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광복 후 지도자의 길을 걸어 우리나라 아마추어 권투 발전을 위해 공헌하신 사실은 체육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당시 한일 양국을 통틀어 무적의 밴텀급 챔피언이셨던 김병옥 선생 생전에 약주 한 잔을 변변히 못 올린 것이 못내 부끄럽다.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