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공연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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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올스타빅밴드 정유천 대표 인터뷰
“스윙재즈는 음악도시 부평의 정체성이에요”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공연콘텐츠 강화,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교류 활성화, 지역 우수 공연프로그램 향유 기회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 부평올스타빅밴드는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스윙재즈공연을 하는 부평아트센터의 상주단체이다. 이 단체의 음악적 기원은 부평 미 8군 클럽에서 연주되던 스윙재즈에 있는데, 정유천 대표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왜 부평이 음악 도시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해방 이후 한국에 주둔한 미군 부대와 그 주변에서 스윙재즈를 연주하던 밴드들은 부평의 혼종적인 동시에 활력이 넘치는 음악적 계보를 만들어 냈다. 이는 과거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류라는 글로벌 기류를 타고 세계를 훨훨 날아다니는 케이-팝의 기틀을 만든 것이 바로 미군 부대와 그 주변 클럽에서 활동하던 밴드들이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는 미 8군 클럽에서 케이-팝까지 이르는 시간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정유천 대표와의 인터뷰는 마치 보물 상자를 열어보는 기분이었다. 그 보물들은 어떻게 다시 닦아서 사용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정유천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에 상주단체로 참여하고 계신다. 부평올스타빅밴드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부평올스타빅밴드는 2005년 창단된 단체로, 해방 이후 스윙재즈를 기반으로 미 8군부대에서 활동했던 하우스밴드들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해방 이후에 부평엔 애스컴(ASCOM)이란 미군수지원사령부가 있었는데, 지금은 물론 캠프 마켓(Camp Market) 하나만 남았지만, 당시에는 그에 몇 배나 되는 미군 부대가 주둔해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내의 미 8군 클럽을 비롯해 영외에 수많은 클럽들이 생겼는데, 그 클럽들에서 주류를 이루던 음악이 스윙재즈였어요. 이러한 부평의 음악적 정체성을 이어받아 스윙재즈를 연주하는 밴드를 만들고 싶어 부평올스타빅밴드를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2. 우선, 11월 11일에 <스윙플러스 콘서트>라는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던데 어떤 공연인지 소개 부탁드린다.
작년에 저희가 옛날 부평의 미군 부대 애스컴과 그에 따른 음악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스윙&애스컴 토크 콘서트>를 연적이 있어요. 그땐 현미 선생님이나 당시 활동했던 가수분들이 오셔서 옛날 미군 부대에서 나온 음악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요. 올해는 11월 11일에 부평아트센터 해누리 극장에서 <스윙플러스 콘서트>라는 공연을 합니다. 이전에는 과거의 것을 재현했다면, 이번엔 재현뿐만 아니라 보다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자 해서,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과 콜라보레이션하는 형태로 진행할 계획이에요. 한국블루스음악의 디바라는 별칭을 얻고있는 강허달림, 전자바이올린으로 활동하시는 제니유, 우즈베키스탄의 ‘기작’이란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아크 마리아라는 우즈베키스탄 연주자 아크밀 등과 함께하면 어떠한 소리가 날지 협연해보려 해요. 말하자면 빅밴드 형태에서 좀 더 발전적인 시도를 해보는 음악회에요. 그래서 ‘스윙’에다 ‘플러스’를 붙여 <스윙플러스 콘서트>라는 제목을 지은 거죠.

3. 당시 주둔해 있던 미 8군부대가 부평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많다고 알고 있는데, 각각의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부평 쪽에선 특히 스윙재즈가 많이 연주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큰 도시엔 거의 다 미군 부대가 주둔해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부산, 경기도 평택, 파주, 의정부, 동두천 등등이 다 그렇죠. 인천만 해도 월미도에 있었고. 제가 부평올스타빅밴드를 만들면서 궁금했던 게 있었어요. 전설적인 로큰롤의 대부 신중현 선생님의 경우 미 8군부대 공연을 많이 했는데, 그분 자서전을 보면 부평 얘긴 거의 없어요. 어떻게 보면 당시 부평엔 엄청난 규모의 미군 부대가 있었는데도, 부평에서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셨더라고요. 왜 선생님께서는 여기서 공연을 하지 않았을까?, 그게 제 의문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나름대로 유추를 해봤는데, 그게 부대 특성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의정부나 동두천 같은 쪽의 미군 부대에는 주로 보병들이 많았어요. 당시 보병들은 주로 생활이 어려워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자원입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사람들에겐 로큰롤이 익숙했던 거죠. 반면, 부평에 있는 애스컴의 특징은 그게 군수 지원 사령부였다는 거예요. 여기엔 보병들이 아니라 직급이 높았던, 지금으로 치면 화이트컬러 쪽 사람들이 주둔해있었던 거죠. 듣는 음악이 달랐던 거예요. 미 8군 클럽에서의 음악은 사실 미군들을 위한 음악이잖아요. 그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윙재즈가 부평의 지역 특성으로 자리 잡았던 거죠. 당시 활동했던 선배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거의 기타, 드럼 베이스 등 리듬악기에 트롬본 색소폰 등 브라스악기가 추가된 형태의 6~8인조를 구성해 연주했더라고요.

4. 수용자층의 차이가 음악 장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얘긴 거 같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밴드 연주자들이 많이 모였을 것 같다.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지금으로 따지면 부평2동과 3동인데, 당시엔 이 두 지역 간에 연결고리 같은 게 있었어요. 부평3동의 경우는 주로 클럽과 주점, 그리고 양부인들이 많았던 동네인데, 그래서 예술가들이 거기서는 살 수 없었죠. 그래서 그곳과 가까운 부평2동에 음악가들이 한 백여 명씩 모여 살았던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60~70년대에는 교통이 지금처럼 편하지 않았잖아요. 뭐 70년대에는 통행금지까지 있었던 시절이니까. 그런데 각 미 8군 클럽으로 출퇴근하기 좋았던 곳이 바로 부평2동(삼능)이었던 거예요. 왜 그랬냐면 미군에서 직접 이곳까지 와서 밴드들을 픽업해서 각 부대의 클럽으로 데려갔던 거예요. 당시 미군 부대가 밴드들을 픽업하던 장소가 지금의 동수역 2번 출구 당시 삼부약국 인근이었는데 그곳에서 미군클럽에서 연주하는 밴드들을 실고 가고 실고 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밴드가 그걸 타고 이 부대 저 부대로 흩어졌다가 다시 미군트럭을 타고 이쪽으로 퇴근을 했죠. 이런 걸 보면 역사적인 사실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조사되어야하는데,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그들이 어떻게 음악을 해왔는지 집중적으로 조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부평엔 역사적으로 음악적 특성이 분명히 있어요.

5. 왜 부평이 ‘음악도시’라 불리는지 알 것 같다. 부평올스타빅밴드 내부에 당시에 활동하셨던 분들도 있다고 알고 있다. 재밌는 에피소드 같은 것도 많을 것 같은데.
 제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라,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들려드리기 힘들지만 한 가지 재밌는 게 있어요. 당시 미 8군부대에서 음악을 하려면 꼭 오디션을 봐야 했어요. 지금 우리나라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열풍이 불고 있지만, 사실 그 원조는 미 8군 오디션이라 할 수 있죠. 오디션을 미군 차원에서 관리했던 거예요. 당시 얘기를 들어보면, 보통 3명의 심사위원과 무대가 있고, 연주하기 원하는 연주자들이 거기서 자기들 레퍼토리를 적어낸 후 몇 번째 곡 해보라 하면 연주하는 방식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미군 부대에서 그걸 들어보고 클래스(등급)를 매겨요. 예를 들면, A, B, C, D이런 식으로요. 그게 밴드들이 받을 수 있는 공연료로 산정됐던 거죠. 재밌는 게 이게 전국에서 통용되었던 거란 점이에요. 그렇게 받은 클래스를 가지고 밴드들이 전국에 있는 미군 클럽에서 쇼 비즈니스를 했던 거죠. 대표적으로 현미, 한명숙, 최희준, 패티김 등이 다 미 8군 출신들이에요. 그들의 특징이 뭐냐면, 음악을 굉장히 잘했다는 점이죠. 미 8군 클럽에서 일하려면 백프로 실력 없인 안 됐어요. D 클래스를 받으면 공연을 못 했죠.

6. 미군 말고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있었죠. 근데 당시 미군 부대에서 하는 공연에 비해 규모가 매우 작았어요. 60년대 당시 미군 부대에서 공연해서 벌어들인 돈이 120만 달러였는데, 그해 우리나라가 수출해서 벌어들인 것이 1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어요. 미군 부대에서 벌어들인 게 더 많았죠. 당시 일반 공연 같은 경우는 무대도 작고 퀄리티도 떨어졌어요. 미 8군 클럽에서 연주한다는 건 미군들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 수준에 맞추려면 웬만한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죠. 엄청난 연습이 필요했어요. 미 8군 출신 가수나 밴드들이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의 기틀을 거의 다 쌓았다고 봐도 무방해요. 해방 이전 우리나라 음악의 주류가 트로트 음악이었는데, 당시엔 그럴 수밖에 없었죠. 일제강점기 이다보니 일본 음악 엔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이건 역사적으로 사실이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형태는 트로트 음악이 아니라 미 8군 밴드 음악과 비슷해요. 엔카는 5음계를 쓰는 데 반해 지금의 대중음악은 대부분 8음계를 쓰죠. 이런 식으로 대중음악 판이 8음계로 바뀌고 거기서부터 케이-팝(K-POP)이 나올 때까지 그 기틀을 미군  8군 클럽 무대 출신 음악가들이 만든 거라 할 수 있죠. 당시 미군 8군 클럽 무대 출신 작곡가분들이 쓴 곡을 보면 다 팝(POP)스러워요. 특히 한명숙 선생님의 「노란셔츠 입은 사나이」 같은 경우는 완전 컨츄리음악이에요.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거의 획기적인 전환기였던 거죠.  

7. 과거 얘기를 하다 보니, 최근의 대중음악계나 후배 밴드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실지 궁금해진다. 
제가 부평올스타빅밴드 단장이지만, ‘락캠프’라는 라이브클럽을 20년째 운영하면서 수많은 인디밴드들을 보고 있는데, 슬픈 마음이 들어요. 인디밴드에 개성 있는 음악과 연주도 좋고, 곡도 잘 쓰는 뛰어난 뮤지션들이 너무 많은데, 빛을 못 보고 있어요. 우리나라 음악 시장이 너무 편협하게 되어 있는 건 아닌지. 이렇게 모든 대중음악시장이 아이돌음악으로 채워지는 게 대중음악의 다양성이란 면에서는 지루함도 가져올 텐데, 왜 이게 그대로 묵인된 채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을까, 슬프죠. 똑같이 평등하게 기회를 줘야 하는 건데, 왜 대형기획사에서는 시시때때로 아이돌들이 툭 튀어나오고, 반면 인디밴드는 10~20년을 어렵게 음악 해도 라디오에서 음악 한 번 안 틀어줄까.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스크린 쿼터제 처럼 대형기획사소속 가수나 연예인들의 방송출연 횟수를 어느 정도 제한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인디 씬들은 밴드뿐만 아니라 레이블이나 기획자들도 영세하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부나 문체부 방통위등에서 어떤 대안을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8. ‘주니어빅밴드예술학교’라는 퍼블릭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어떤 프로그램인가? 
주니어빅밴드예술학교는 상주단체 퍼블릭 프로그램으로 사업계획을 세운 건데, 작년 9월부터 시작됐어요. 인천 관내 초등학생 중 신청받아서 현재 18명 정도 악기를 배우고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 음악의 전반적인 환경을 보면, 브라스 연주자들이 많이 부족해요. 제 어린 시절엔 각 학교마다 밴드부가 있어서 브라스 악기(금관악기)를 배울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타나 드럼은 많이 배우는데 브라스를 배울 데가 없어요. 대중음악이든 클래식이든 다 브라스 연주가 필요한데, 이러다간 앞으로 우리나라 음악 시장 전체에 문제가 많이 생길 수도 있을 거에요. 그래서 이걸 누군가는 청소년 교육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것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저희라도 브라스 연주자들을 키우기 위해 학생들을 모아 일주일에 한 번씩 악기강습을 하고 있어요. 이걸 계기로 훌륭한 연주자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학생들에게 어릴 때부터 이런 체험을 통해 악기의 멋있는 소리를 많이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9. ‘주니어빅밴드’말고도 앞으로 ‘시니어빅밴드예술학교’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지금은 아무래도 예산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 구상단계에 머물러 있어요. 지원사업뿐만 아니라 인천의 기업들과 메세나를 통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면 하고 싶은 사업이에요. 지금 제가 58년생인데, 제 주변 나이들은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되고 있어요. 근데, 이 친구들을 보면 사실 아직 굉장히 젊어요. 지금 100세 시대라는데, 그렇게 보면 앞으로 40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일 문제가 뭐냐면 소일거리, 심심풀이로라도 뭔가 할 게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은퇴한 분들을 모아서 주니어 빅밴드처럼 악기를 가르쳐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서로 모여서 악기도 같이 배우고 공연하고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술도 한잔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거죠. 요새 마을공동체 얘기가 많은데, 악기를 배워 자연스럽게 자신이 사는 아파트나 공원을 무대로 마을 연주회를 열면 이런것도 마을공동체의 한부분이 되는 거죠.

10. 벌써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장점이나 보완할 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상주단체가 되기 전과 지금이 완전 달라요. 상주단체가 되기 전에는 지속성을 갖고 활동하기가 힘들었어요. 1년에 한두 번 정도 자력으로 공연을 했는데, 연습장도 없어서 제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클럽에서 테이블 다 치우고 연습을 했죠. 지금은 상주단체 프로그램 때문에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희 같은 경우엔 부평을 기반으로 활동하는데, 부평아트센터의 상주단체라는 게 편리함을 주죠. 공연장 담당자들과도 지역을 공통으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기도 하고요. 부평이 음악도시가 되는 데 저희가 협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반면에, 행정적인 부분에서 상주단체 사업이 보완되어야 할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1년 단위로 상주단체를 선정하잖아요. 그러다보니 단체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못 세우게 돼요. 예를 들면, 시니어빅밴드를 만들고 싶은데 내년에 저희가 상주단체로 선정될지 아닐지는 모르는 거기 때문에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4월이나 5월 중에 상주단체 발표가 나는데, 그러다 보니 상반기 사업을 잘 못 한다는 것도 문제예요. 공연단체 입장에서 급하게 할 수 있는 게 공연밖에 없게 되는 거죠. 더 좋은 중장기적인 프로그램이 있어도 그걸 실행하기에 시간적인 제약이 있는 것 같아요.

11. 앞으로의 활동계획과 함께, 부평올스타빅밴드의 공연을 관람하러 올 시민들께 한 마디 부탁드린다. 
부평의 음악적 정체성인 스윙재즈를 보다 많이 홍보하는 걸 통해 부평이 음악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보다 노력하려해요. 지역의 역사와 가치를 좀 더 잘 알리고 싶어요. 또한, 인천 지역의 문제가 될 수있는 은퇴하시는 시니어들의 문제들을 음악적으로 풀 수 있을지 더 고민하려 해요. 11일 공연에 대해선, 저희 공연은 분명 흔하게 볼 수 있는 공연은 아니에요. 저희는 MBC, KBS 악단이나 전국노래자랑 악단에서 활동할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분들이 모인 단체에요. 정말 훌륭한 공연 볼 수 있는 기회니까 오셔서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스윙재즈는 신나고 가벼운 맛도 있어요. 즉, 스트레스 하나 안 받으면서 볼 수 있는 공연이란 거죠(웃음). 이런 게 스윙재즈 음악이구나, 경험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오셔서 많이 즐겨주세요.

 

글, 인터뷰 정리 /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박치영
사진 제공 / 부평올스타빅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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