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롱은 연금술사가 평범한 돌을 금으로 변신시키듯 예술작품이 지닌 신비롭고 마술적인 힘을 믿으며 개인사적 이야기와 현실 너머에 있는 기억, 환상, 또는 상상이 뒤섞인 세계를 그린다. 회화를 비롯하여 에그 템페라와 메탈 포인트 드로잉과 같은 고전기법을 이용해 신비로운 세계의 단편들을 그린다. 최근에는 과거 마녀술(witchcraft)에 사용되었던 상징 기호들에 관심을 갖고 그에 관한 도상과 기호를 회화적 이미지와 결합한 일련의 추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2017년에 있을 개인전과 여러 그룹전 준비에 전념할 계획이다. 기존 회화 양식과 함께 에그 템페라 기법을 활용한 작업, 현재 진행 중인 40여 개의 마녀술 상징 기호에 관한 일련의 추상적 회화 작업, 그리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설치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숲길과 유니콘, 캔버스에 유채, 91×91cm, 2016
숲 속의 오필리아와 유니콘,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16
원초적 세계,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16
밝고 빛나는 무엇, 캔버스에 유채, 130×97cm, 2016
마녀술과 마술, 캔버스에 유채, 194×390cm, 2016
이프타 야 심심, 종이에 순금 드로잉, 29×52cm, 2016
14개의 수집된 유니콘 뿔들,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6
숲 속의 산책, 에폭시 몰딩 컴파운드에 에그 템페라, 14×15cm, 2016
작가노트
“숲에는 구불구불한 길들이 쭉 이어진다. 그 길들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덤불 속에서 갑자기 끝나버리기 전까지” -하이데거 <숲길> 서문에서서
숲은 회화적 행위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그림의 소재가 된다. 나를 압도시키는 무수히 많은 나무와 나뭇가지, 꽃과 수풀, 흙과 돌 등을 캔버스 화면에 밀착해 그리고 있노라면 내가 그리고 있는 대상, 숲속에서 길 잃은 플라네르 마냥 나는 손에 쥐고 있는 붓과 물감으로 화면 속을 헤맨다. 나는 내가 찍어 바르는 색들의 병치, 여러 면과 선들의 얽힘, 겹치고 쌓여가는 물감들의 숨김과 드러남 등의 시각적 현상들이 눈앞에서 바로 만들어져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렇게 그려진 나의 숲 그림들은 일상으로부터는 떨어져 존재하는 마술적이고 신비로운 세계이다. 그곳은 현존하지만, 일상 속의 장소가 아닌 현실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에 속한 세계의 장소이다. 그곳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세계이며 신비로운 예술의 세계이자 나의 회화적 행위를 보여주기 위한 원초적 세계이다.
예술은 한때 주술적인 용도로 활용됐었고 영혼을 담기 위한 도구였으며 일상을 넘어선 삶 그 자체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어떤 것이었다. 예술은 신비의 영역 속에서 작동하는, 즉 자연과 인간과 신을 연결하고 우주 속에 있는 미시적 존재들에 다른 차원의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마술적인 힘이 있었다. 예술행위는 연금술사가 평범한 돌을 금으로 변신시키고자 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와 같은 예술의 유래는 과거의 대가들이 합목적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믿고 찾고자 했던 태도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예술의 원초성을 복원시키고자 회화작업뿐만이 아니라 에그 템페라와 은 드로잉 같은 고전 기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숲길 위에 있다는 말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가고 있을 때 사용하는 흔한 독일식 표현이다. ‘사유하다’를 숲길 속을 걷는 것이라는 표현을 썼던 하이데거는 결국 아무 곳도 아닌 곳이 어디인가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쩌면 숲길 속을 걷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숲을 그리고 여러 기법들을 사용하면서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가고 있을 수 있으나 결국엔 어디인가로 향하게 될 수 있길 바라며 그러한 노력이 ‘예술’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