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련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동북아시아의 고전적 이미지가 동시대에 재현되는 양상을 관심 있게 지켜보며 그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들을 회화로 옮기고 있다. 특히 주류의 미감으로는 비하되기 쉬운 것들을 재발견하거나 한국과 중국의 고전 극영화에서 수집한 클리셰 장면들을 소재로 작업해오며 현실에서는 무용한 소위 ‘동양풍’ 이미지의 효용을 고민하고 있다.
선녀, 220x180cm, 리넨에 유채, 2017 |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동북아시아의 전통과 고전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특히, 그것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동시대에 재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형, 왜곡, 반복 등을 유심히 보고 있다. 나는 나와 같은 세대에서 소위 ‘동양풍’이라고 일컬어지는 ‘오리엔탈리즘적 이미지’를 보는 무지한 시선이 서양인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시선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이렇게 된 배경에 대한 고민을 하거나 현재 상황을 직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관점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2013년에 전통 복식을 걸친 기묘한 마네킹을 그린 것을 시작으로 무속신앙이나 우리나라의 신흥종교, 사극, 전통행사 등에서 발견되는 다소 이상하거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 고졸한 미감이 있는 장면들을 그려왔다. 나는 다른 사람이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에서 캡처한 이미지에서 불필요한 것들만 일부 제거하고 거의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데, 해상도가 낮은 이미지를 많이 사용한다. 실제 작업 이미지 자체는 비교적 모호하게 표현하고, 반투명한 붓질과 캔버스의 굵은 올 등 회화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최근 2~3년간 작업한 작업에는 주로 귀신과 도사가 등장하는 1980~90년대의 판타지 영화에서 장면과 대사를 많이 차용했다. 고전적 이미지가 가진 고색창연한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현실의 부조리와 괴리감을 반영하고자 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회화에서의 전통적인 매체를 고수하는데 린넨이나 황마에 아교칠부터 모든 공정을 직접 하여 나에게 맞는 그라운드(지면)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라운드가 달라지면 올의 굵기에 따라 그에 맞는 붓질도 달라지고 최종적인 결과물도 상당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작업 전에 캔버스를 준비하는 시간은 꽤 오래 걸리지만 그림 자체는 미디엄을 많이 섞어 투명도를 높인 유채 방식으로 수정이나 겹침 없이 한 번에 빠르게 끝낸다. 그러고 나서 그림을 눕혀 놓고 오일을 발라 그린 것을 아주 살짝 녹이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 완성된다. 그 과정에서 붓질이 겹치면서 그렸던 것이 반투명하게 닦여 나가 그림 전체에 희끗희끗한 자국들이 생기는데 이런 흔적들은 이미지의 환영성을 감소시키는 중요한 회화적 요소로 작용한다.
魔王, 你贏了 (King Evil, you won), 230x160cm, 리넨에 유채, 2019 | 무제, 160x13cm, 황마에 유채, 2019 |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나의 대표작업은 2017년에 시작한 <선녀> 회화 연작을 말할 수 있겠다. 이 연작은 2013년의 마네킹 그림 <팔선녀>(2013)와 연관되어 시작되었다. 당시 그 마네킹들은 의복 색에 따라 임의로 ‘용왕’이나 ‘옥황상제’ 등으로 명명되었는데 당시에 여자 마네킹은 선녀라고 이름 붙였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선녀’라는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전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도 ‘하늘하늘한 고전 복식을 입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공통적인 이미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후 시작된 <선녀> 연작은 이러한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실제 사람으로서 선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지역 행사 등에 동원되는 선녀 복장을 한 중년 여성 중 무료하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거나 평범한 한국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고전 서사에서의 ‘선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실, 그들은 구원자도 아니고 주인공도 아니다. 실제 행사에서도 선녀는 남성이 중요한 의식을 행하는 동안 분위기를 조성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작업에서 선녀는 기존의 그녀들과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팔선녀, 53x40cm(8pcs), 리넨에 유채, 2013 |
선녀, 리넨에 유채, 130x163cm, 2017 |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사카구치 안고의 에세이 중 「일본문화사관」이라는 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쓰인 지 50년이 넘은 글이지만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일본적’인 것에 천착하는 현실을 비꼬는 유머 감각이 있는 글이기도 하고, 전통에 대해 ‘필요하다면 사찰을 부수고 그 자리에 철도를 놓자’ 같은 과감한 주장이 흥미롭다(물론 부수자는 것은 아니고 그것에 짓눌리지 말자는 이야기다). 최근에는 나는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이스탄불>을 읽으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 소설 속 비애-멜랑콜리-슬픔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그것이 앞으로의 나의 작품에도 반영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나는 <요재지이>등의 지괴소설을 매우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그 내용뿐 아니라 저자인 포송령(蒲松齡, 중국 청나라 초기의 소설가 겸 극작가)의 삶과 태도에도 관심이 간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항하려 했지만, 무력했던 인간의 한탄은 몇백 년 전의 것이지만 지금의 현실과도 전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굴원’이라는 시인도 비슷한데, 나중에는 좀 더 공부해서 포송령과 굴원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한글세대를 위한 태평광기 220×180, 광목에 수채, 아크릴릭, 2019 |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는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도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는 관람객으로서 감탄할 때가 많이 있다. 특히, 무엇을 그렸는지, 왜 그렸는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보자마자 즉각적으로 “좋다”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그리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그러한 감각적인 경험을 전달하고 싶다.
《망한 나라의 음악》 전시 전경, 오뉴월 이주헌, 2018 |
Q.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지금까지의 작업이 소재가 나와 같은 세대의 작가들 사이에서 비교적 많이 다뤄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 설명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회화적인 요소를 충분히 조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는 그리기 자체에 관해 이야기 하는 비중을 늘려가고 싶다. 화면 구성이나 그리기 방식들도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하여 나 스스로도 작업 과정에서 더욱 회화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나에게 물감들 옆에 항상 꽂아 놓는 동묘에서 산 비녀가 있는데 아마 무속용품이었던 것 같다. 옥색에, 끄트머리 부분은 오방색의 스팽글 장식이 달려있는 키치적이고 조악한 상품인데, 그것을 보면서 항상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동양풍’의 고전적으로 보이지만 진짜 옛날에 제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화려하지만 속악하기도 하고, 나름 꼼꼼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완벽히 섬세하지는 못하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음산한 기운이 있는 물건인데, 볼 때마다 한국 사회가 전통을 대하는 방식이 농축되어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나는 이 비녀와 같이 복합적인 면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그림이 어떤 면에서는 웃기다고 생각하는데, 공감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지금보다 더 웃기면서 무서워졌으면 좋겠다.
妳陽已盡, 陰壽未終, (Your life on earth is exhausted but your life in hell is unfinished), 180x220cm, 리넨에 유채, 2019 |
하늘은 넓고도 성글어, 80x65cm, 리넨에 유채, 2018 | 염라대왕 자네는, 45x45cm, 황마에 유채, 2018 |
Q. 작품 창작의 주요 도구, 재료는?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