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uld you be my model? 나의 모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작가 서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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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uld you be my model? 나의 모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작가 서해영

1작가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거리로 나간다. 가방 안에는 흙과 석고, 조각을 위한 재료들이 담겨있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두상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던 거리의 예술가들과 조금 다른 점은 돈을 받지도, 만들어진 두상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두상을 만드는 시간조차 일정하게 정해두지 않으며, 5분이든 1시간이든 모델로 참여하는 사람이 원하는 시간 안에 조각을 만든다. 완성된 조각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어 모델과 한 장씩 나눠 갖은 후 부숴버리고 이들이 나눈 시간과 과정은 사진이나 영상과 같은 기록으로만 남는다. 서해영 작가가 지난 3개월 동안 호주 시드니에 머물며 진행한 “Would you be my model?”(2015) 프로젝트다. 이 작업은 다양한 문화, 다른 언어를 갖은 사람들과 시간이나 기억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로 불특정 다수에 가까운 개인과 느슨하게 ‘관계 맺기’의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본인이 마주한 특정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작업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며 우연처럼 불거지는 화학작용을 만들어 낸다.
작가 서해영은 <산에서 조각하기> ,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등 관념적이고 결과중심적인 조각을 거부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전통적인 매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실험해오고 있다. “Would you be my model?” 프로젝트는 2016년 8월 말부터 9월 말까지 진행되는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참여전시에서 매주 3일간 진행될 예정이고 누구나 작가의 모델이 될 수 있다.

2Q. 거리에서 사람들의 두상조각을 만들면 참여한 사람이 돈을 주고 갖고 싶어 하거나, 작가로서도 없애지 않고 남기고 싶을 것 같은데?
시드니에서 거리 조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에 하나가 “How much?(얼마에요?)”였다. 나는 그때마다 “It’s free~!(공짜)”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대신 조각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지나갔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기뻐하며 한참을 기다리면서도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의 거리예술가들은 자신의 재능과 예술행위를 돈으로 보상받고, 사람들은 돈으로 그 예술의 가치를 인정(표현)하기 때문에 나의 거리예술은 좀 이상한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돈’을 교환의 가치로 두지 않았던 것은 내가 모델을 만나고 조각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 동등한 관계에서의 ‘소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시드니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흥미로웠고 그 얼굴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내가 할 수 있는 ‘조각’을 통해서 담아내고 싶었다. 만약 내가 돈을 받고 조각을 만들었다면 그들을 더 닮게 만드는 일에만 열중해야 했을 것이고 자유로운 대화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대신 즉석사진으로 기억을 공유하고자 했다. 물론, 몇 개의 초상조각은 석고캐스팅을 했다. 작업의 내용과는 모순되지만 내가 만든 것을 부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고 하루에 1개의 두상은 뜨기 시작했다. 시드니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조각 총 10개가 겉틀 상태로 남겨져 있고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초상조각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인천은 한국이지만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서울과는 매우 다른 곳이라고 느껴진다. 이주민의 역사가 깊고 그만큼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간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중구와 그 주변을 여행하면서 내가 잠시 머무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담아내고 싶다. 이번에는 인천의 여러 장소에서 사람들의 초상조각을 만들고, 전시장에서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업을 할 계획이다.

Q. 기존의 관념적이고 결과중심적인 조각을 거부하는 반모더니즘적 성격이 눈에 띈다. 이런 작업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오랫동안 전통적인 조각교육을 받아오면서 관념적이고 결과중심의 획일적인 작업방식에 한계를 느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조각은 무엇일까” , “현대 조각의 ‘조각’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나 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조건과 경험을 반영하는 과정 중심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조각의 방법론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Q. 작업 과정에 중심을 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특히 <산에서 조각하기>는 그 의도를 잘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작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
배낭을 꾸려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최대 무게의 작업재료, 도구, 옷과 음식 등을 꾸려 산에 올라가서 산의 풍경, 돌멩이들을 조각으로 만든다. 스스로 운반이 가능한 재료들을 가지고 산에 올라 조각을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은 나의 신체적인 조건에 의해 재료의 양과 내용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관습적인 조각의 방법론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산에서 조각하기> 등의 작업들을 통해 ‘등산’이라는 일상적인 노동과 ‘조각하기’라는 미술의 노동을 결합한다. 즉, 내 삶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던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상호연결할 수 있게 만들고, 순수한 예술의 영역을 지지하는 전통적 조각의 입장을 위반하는 것이다.
하나의 산 조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 번의 산행이 필요하다. 첫 번째 산행에서 주로 작업 장소를 찾아 재료를 옮겨놓는다. 두 번째 산행에서 추가로 흙과 석고, 물을 운반한 후에 흙으로 조각을 만든다. 조각 과정은 카메라 앵글을 이용해 조각이 실제의 산 풍경을 가리는 형식으로 촬영된다. 카메라 앵글 안에 들어오는 실제 산의 풍경을 흙으로 가리는 방식으로 만든다. 흙 작업은 석고로 겉틀을 뜬 다음, 석고 틀만 가지고 산을 내려온다. 흙 작업에 썼던 흙은 수풀 속에 버리고, 작업실에 가지고 내려온 틀은 다른 물질로 캐스팅한다. 산에서는 재료, 공간, 날씨, 운반, 관찰의 한계에 의해 제한된 조각의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존의 ‘멋진’ 조각이 아니라, 개인의 구체적인 조건과 한계가 반영된 ‘현실적인’ 조각을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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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구름을 잡기 위한 도구>와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는 작가가 사용하거나 만지는 도구들을 적극적인 형태로 변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작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구름을 잡기 위한 도구>는 인공암벽을 즐겨 하는 내 일상적인 취미활동에서 시작됐다. 인공암벽에 붙어있는 홀드(오르기 위해 만들어진 돌기, 덩어리)를 유기적인 형태로 만들어 비어있는 공간에 설치한다. 이 홀드들은 제작 과정에서 내 손에만 맞게 만들어졌다. 내가 만든 이 홀드들은 도구의 기능과 조각의 형식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완성된 나만의 도구(홀드)들은 흘러가는 구름영상과 중첩하여 암벽타기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벽에 설치했다.
도구와 조각을 결합하는 방식은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라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여성 조각가인 나 자신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것으로, 대나무 자나 기타 물건을 이용하여 헤라(조소도구)등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건 본래의 기능은 조각을 위한 도구라는 새로운 기능으로 전환되고,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했던 재료와 도구가 조각의 최종적인 결과물로 등장하면서 전형적인 조각의 상황을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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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 시리즈는 다양한 형태의 협업과 커뮤니티 과정으로 발전시켜 나갔는데 커뮤니티 작업이 궁금하다.
기존의 획일화된 작업 환경에 문제를 느끼고 여성의 조건과 상황에 맞는 대안적인 작업환경을 만들어보고자 실제 협업을 시도하고 이를 위한 협업의 도구를 제작했다. 다양한 조건과 상황에 놓여있는 여성들과 협업을 한다면, 조금 더 여성의 다양한 조건과 생각들을 반영한 실질적인 도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온․오프라인으로 7명의 여성들을 모집해 한 달 동안 하나의 타피스트리(Tapestry)를 만들어 나갔다. 여성들의 협업을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게 만드는 도구가 필요함을 느꼈고, ‘소통’을 위한 도구로 ‘타피 원형 틀’을 만들었다. 이 틀은 원형테이블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 참여자들 간의 물리적인 만남을 갖게 하고, 그 안에서 많은 대화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작업적인 부분에서도 서로 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원형구조와 릴레이 타피스트리 작업방식으로 서로간의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 타피스트리(Tapestry): 손으로 직물을 짜서 이미지를 만드는 섬유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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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천아트플랫폼에서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지?
엄마의 고향이 인천 섬이다. 그곳은 ‘백아도’라는 외딴섬으로 인천에서 덕적도로, 덕적도에서 통통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백아도는 누구나 알만한 관광지도 아니고 활발한 어촌마을도 아니며 이제는 군사지역도 아닌 섬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곳은 매우 쓸쓸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많지 않은 엄마의 고향, 백아도를 과거와는 다른 관점, 다른 입장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고, 엄마가 기억하는 그곳의 모습과 지금 내가 바라본 그곳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관심이 문화적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그곳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은 시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천아트플랫폼에 머무는 기간 동안 인천의 다양한 지역의 모습을 작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보여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

정리 : 오혜미 /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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