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지트가 우리의 문화공간으로 변하는 특별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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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아지트 산책단

“카페에서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한번쯤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이른바 카페족이다. 카페족이 이름처럼 그리 근사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오천원으로 제공받는 음료, 테이블, 화장실, 인터넷이 간절한 사람들일 뿐. 이곳 카페에는 그렇게 반나절 이상 죽치고 있는 사람들이 열 명 정도 된다.”

김금희의 단편 소설 <당신의 나라에서>는 카페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카페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카페족’에게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소방서 옆 건물에 위치한 시끄러운 원룸에서 빠져나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오랜 구직 생활로 소원해진 가족들의 눈초리를 피하는 은신처, 그야말로 아지트인 셈이다. 카페에서 매일 마주치면서도 서로를 곁눈질로만 몰래 지켜보던 사람들은, 카페가 정전이 된 사건을 계기로 서로 가까워진다.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책과 노트북만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카페의 불이 꺼지자 옆 테이블의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아지트였던 카페는 우리의 아지트로 변하고,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 틈새로 대화와 여유의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소설의 첫 구절에서도 보이듯, 카페에서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일은 드물고, 나만의 아지트는 내가 앉은 테이블로 한정될 뿐, 카페 전체가 우리의 아지트가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소설에서처럼 정전이라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소설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나만의 아지트에 그러한 특별한 사건이 생긴다면 어떨까.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올해, 일상의 공간들에 공연이나 강연과 같은 작은 문화행사들을 만들어 나만의 아지트를 우리의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을 운영 중이다. 

올해 5월, 인천 곳곳에 위치한 카페, 서점, 갤러리, 목공소 등 20여 개의 공간이 ‘동네방네 아지트’ 지원 사업을 통해 일상과 생활 속에서 문화를 충전하는 아지트로의 변신을 시작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공간에서는 생활문화 동아리 활동을 진행하거나, 전문가를 섭외해 작은 규모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공연을 보며 술 한 잔을 마시던 재즈 바에서 사진동아리를 만들어 공연 사진을 찍기도 하고, 혼자 책을 읽던 동네 서점에서 저자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한다. 공연을 보고, 책을 읽는 등의 소극적인 문화 활동을 혼자만 즐기던 사람들이, 직접 공연 사진을 찍고, 책의 저자와 함께 생각을 나누는 적극적인 문화 활동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문화, 예술의 향유자이자 소비자에 머물렀던 일반 시민들이 많은 돈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문화, 예술을 생산하는 창작자가 되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 8월에는 ‘동네방네 아지트 위크 – 시가 있는 작은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지트로 선정된 공간 20곳에 시인과 뮤지션들이 방문하여 시를 낭송하고 음악 공연을 펼쳤다. 아지트에서 벌어지는 소모임이나 동아리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일부의 사람들 뿐 아니라 공간을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다. 또한 일상에서 오고가면서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문화공간들을 소개하는 ‘동네방네 아지트 산책단’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려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문화 공간, 또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몰라서 찾아가지 못했던 공간들을 산책하듯 둘러보는 것이다.

지난 8월 18일에는 10여 명의 산책단이 강화에 위치한 아지트들을 방문했다. 그 중에서도 ‘버드 카페’에는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를 보호하고 그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어새와 강화 인근 갯벌의 사진을 전시하고 엽서를 판매하며, 저어새를 캐릭터로 만들어 다양한 상품과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었다. 버드카페를 운영하는 000씨는 “멸종위기에 처한 저어새는 강화가 최대 번식지이지만, 지역주민들은 농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저어새를 보호하지 않는다. 다양한 강연과 캐릭터 상품, 그리고 펠트 수공예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주민들과 만나고, 저어새의 소중함에 대해 알리고자 한다.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을 통해 진행하는 강연 등이 지역 주민들에게 공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

9월 한 달간은 인천 곳곳의 오래된 아지트와 새로 생긴 아지트들을 방문하고 전문가의 강연까지 들을 수 있는 산책 코스를 운영 중이다. 오래된 아지트 코스는 인천의 오래된 가게들을 방문하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정진오 기자가 안내자가 되어 그의 책 <오래된 가게>에 등장하는 가게들을 소개하고 함께 둘러보는 코스로 구성되었다. 지난 9월 8일에는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 중 하나인 인일철공소에 방문하고 인근에 자리한 숭의평화시장 내 카페 라온에서 인일철공소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숭의평화시장에서 가게를 운영 중이라는 무명 씨는 ‘한 시간짜리 짧은 강연이 있다고 해서 가게가 한산한 틈을 타 카페를 방문했다. 자주 오고 가면서도 어떠한 물건을 만드는 가게인지, 얼마나 오래된 가게인지 몰랐는데,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한편 책<오래된 가게>를 감명 깊게 읽고 인일철공소를 방문해보고 싶어 찾아왔다는 하복순 씨는 ‘인천 토박이로 지금도 인근에 살고 있는데 평화시장 내에 이러한 카페이자 문화공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주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은 단순히 공간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에 그치지 않고, 그 공간을 오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공간을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공간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동네의 작은 공간이 생활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기획부터 홍보까지 모든 것을 돕는 ‘풀 옵션’ 지원 사업인 셈이다. 비록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이고, 일상에서 경험한 작은 예술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당장 수치로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큰 성과만을 강요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을 만들어주고, 작은 여유를 내어주는 것이 문화예술이 가진 엄청난 힘이자 문화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일상의 틈에서 만난 작은 웃음과 짧은 여유가 가져다 줄 더 큰 웃음과 행복을 기대해본다.

 

글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민경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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