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만지는 아이들 <토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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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일 부평문화센터 달누리 극장에서 열렸던 <토끼전> 공연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아이들은 작품의 주제나 의미 따위를 강조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저 경험하고 느끼며 웃고, 잠들기 직전 일기에 “참 재미있었다.”라고 쓴다. 아마 어떤 예술 작품에 대한 평도 아이들이 쓴 일기보다 더 적절할 순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의 ‘재미있다’라는 말은 매우 두텁다.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높은 눈으로 작품을 마주하고 그걸 세세하게 뜯어내고 평가하는 어른들의 말이 더 얄팍하다. 산타는 원래 없는 게 아니라, “울어도 돼. 사실 산타는 없거든.”(<쇼미더머니6>)이라는 말 때문에 없어진다.

<토끼전>은 문화공작소 세움과 극공작소 마방진이 만나 고전 우화를 재해석한 음악극이다. 지난 인터뷰에서 세움의 유세움 대표는 “<토끼전>이 재밌는 게, 대부분의 우화들은 선악관계라든가 갈등관계라는 게 다 있잖아요. 근데, <토끼전>에는 그런 게 모호해요. 누가 나쁜 놈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별주부는 못나게 생기고 느릿느릿해 매번 다른 물고기들에게 무시당한다. 그래서 토끼 간을 찾아오면 보건복지부장관 자리를 주겠다는 용왕의 말에 혹하고 마는 별주부의 모습은 매우 ‘인간적으로’ 보인다. 한편, 무서운 동물들에게 쫓기곤 했던 토끼는 별주부에게 속아 용궁으로 간다. 그리고는 기지를 발휘해 용왕을 속이고 별주부를 자라탕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한다. 토끼는 약삭빠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 우화에는 그다지 나쁜 놈도 착한 놈도 없다. <토끼전>은 구태여 권선징악 같은 걸 찾지 않는다. 그냥 재밌게 놀아보자고 말한다.

달누리 극장의 무대는 물고기와 동물들이 뛰노는 최적의 상태였다. 수영장을 본뜬 세트 위에 미끄럼틀, 사다리, 튜브, 목마가 설치되었고, 동물들은 시종일관 그걸 타고 논다. 스크린에는 뭍과 용궁의 배경이 영사되고 있고, 그 뒤에서 세움의 아티스트들이 가야금, 기타 첼로, 트럼펫, 타악 등을 연주한다. 그 음악에 맞춰 별주부는 보드빌(vaudeville)처럼 노래하고 춤춘다. 독수리 삼형제는 훌륭하게 고꾸라진다. 고래는 변사처럼 극을 이끌고, 새우는 탭댄스를 추고 랩을 한다. 악어는 장난감 칼을 휘두르고, 용왕은 욕조에 누워 거대한 츄파춥스를 휘두른다. 아이들은 토끼와 대화하고 고래의 지휘에 맞춰 ‘산토끼’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유세움 대표는 “풍자와 해학”을 모두 이야기한 것 같다. 풍자는 부정밖에 알지 못한다. 풍자 속에서 별주부는 그저 못생기고 아둔한 것일 따름이다. 반면, 해학은 긍정을 안다. 해학은 별주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토끼에게 속아 토끼 간은커녕 ‘토끼 똥’ 밖에 구하지 못한 별주부를 좌절 속에 파묻어 두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가 비관하지 않도록 돕는다. 적대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토끼와 별주부가 서로를 속이고 속게 만든 건 누구였던가? 용왕이다. 그렇다고 <토끼전>이 용왕에게 죽음이란 벌을 내리는 건 아니다. 별주부가 토끼 간을 구해오지 않자, 용왕은 아픈 배를 부여잡고 300년을 산다. 그리고 마침내 별주부를 찾아내고, 그가 들고 있던 ‘토끼 똥’을 토끼 간으로 오해한 채 집어삼킨다. 마법처럼 용왕의 병이 낫는다. 권력자와 통치자는 항상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날 거라며 우리에게 겁을 준다. 그러나 그 심각한 일에 대한 처방은 ‘똥’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 음악극의 클라이맥스는 토끼가 기지를 발휘해 용궁을 빠져나오는 순간이나, 용왕이 치유되는 순간이 아니다. 어른들은 매번 가르치려고만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잠들기 직전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건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게 재밌기 때문이다. 혹시 꿈속에서 토끼와 별주부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음악극의 클라이맥스는 물고기 친구들이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순간, 무대에서 내려와 아이들의 손을 잡는 순간, 무엇보다 커다란 풍선으로 만든 달들이 객석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게 되는 순간이다. 아이들이 까르륵 웃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아이들은 달을 만지고 달을 가지고 논다. 

 

글/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박치영
사진/ 문화공작소 세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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