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5월 30일에 있었던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인 송현동 구 ‘애경사’ 건물의 철거를 계기로, 인천의 근대 건축물이 다시 재조명되는 듯 합니다. 인천시는 내년부터 인천시 내 근대 건축물을 전수 조사하기로 하였고, 각 구청에 근대 건축물 보호를 요청하였습니다. 인천시는 알려지지 않은 근대 건축물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니, 이번 일을 계기로 건축 유산이 더 주목받고 보호받는 방향으로 진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돌이켜보면, 낡고 오래된 건물로만 이해되던 근대 건축물이 보호의 대상으로 존중되고, 그것을 넘어 새로운 도시 명소로 부각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근대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1년의 일로, 이 제도를 계기로 만들어진 지 50년 이상 된 건조물이나 시설물 중 “근대사에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큰 것, 지역의 역사 문화적 배경이 되고, 그 가치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 한 시대의 조형의 모범이 되는 것” 등이 등록문화재 지정을 통해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등록문화재 소유자에게 유지와 보수 비용, 세금 등의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들이 훼손되지 않고 꾸준히 관리될 방법을 만들게 되었고, “개조, 내부변경, 부분변경, 창조적 모티브의 채용”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현재에도 사용가능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근대 건축물의 수명을 연장하고, 활용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일종의 복고주의가 유행하면서 잘 보존되고 활용되는 근대건축물이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를 연상시키는 상업시설, 패션이나 디자인에서 레트로한 경향이 유행을 타게 되었습니다. 또한, 건축과 인테리어에서 속칭 ‘인더스트리얼 모던’이라고 불리는, 인테리어 요소에서 구조나 설비의 날 것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혹은 그것을 모티브로 이용하는 방법들이 유행하게 되었죠. 이 과정에서 80년대 건축된 단독주택의 리모델링이 부각되고, 북촌 한옥마을로만 이해되던 도시형 한옥이 전국 각지에서 재발견되며, 나아가 근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레플리카가 아닌 오리지널로써의 근대 건축물들이 다시 도시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천, 서울, 부산, 군산 등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도시들은 도시 역사의 스토리텔링을 위하여 이러한 근대 건축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관광 자원화 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1900년대 초중반 건립된 근대 건축물, 특히 서양식 건축물을 적극적으로 재발견하고 건축물에 남아 있는 기억을 되살려 도시의 삶에 역사의 깊이를 심기엔 무척 어려운 부분이 한 가지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많은 근대 건축물들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건립되어 행정기관이나 금융기관 등으로 사용된 건물이고, 이것을 ‘기념’하기에는 이 건축물들에 남겨진 역사적 기억은 침략과 고통의 역사이기에 적절치 못하다는 벽에 부딪히는 것이었습니다.
근대 건축물을 통해 역사 공간을 구성하고 관광 자원화 하려는 시도와 그 공간의 실제 기억 사이의 딜레마에 처한 도시는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근대에 들어서 서구 세계와 접속하면서 해안 주요 도시에 열강의 조계를 내어주어야 했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상하이, 홍콩, 마카오 등의 수많은 서양식 건축물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근대의 열강 침략의 유산입니다.
이 중에서 상하이의 경우는 생각할 여지를 많이 줍니다. 상하이는 오래된 구도심과 옛 조계 지역을 재건하면서, 이런 역사적 기억을 긍정적 기억으로 치환하는 시도를 합니다.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서양 각국의 침략의 역사였던 조계 지역은 실제로는 중국인들이 더 많이 섞여 살았던 일종의 ‘국제도시’로 이해됩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인 상하이의 역사적인 대구(對句)를 만들어낸 것이죠. 이 해석을 기반으로 상하이의 오래된 주거지와 조계지는 과거 중국에서 가장 코스모폴리탄한 ‘상하이 모던’의 상징 공간으로 이해되고, 오늘날 국제적인 금융 도시인 상하이의 원조와 같은 모습으로 관광 자원화 됩니다. 신텐디, 티엔즈팡과 같은 지역이 근대 주거 건축물 등이 적극적인 외부 보존과 내부 수리를 거쳐 가장 떠오르는 상업 공간과 관광지로 변신한 것입니다.
굳이 근대 건축물을 관광자원이나 공공시설, 전시관 등으로 이용하지 않더라도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변화한 도시에 걸맞게 증축되어 업무시설이나 상업 건축물로 이용된 사례들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2006년 완성된 뉴욕의 허스트 타워는 본래 대공황 시기에 6층으로 지어진 업무용 건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물은 노후화되고, 기업은 더 많은 사무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이런 경우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허스트 타워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철거와 재건축 대신 증축을 택합니다. 기존 건축물의 외면을 살리면서 내부에서 기존 건축물을 기단 삼아 182m의 초고층 빌딩을 세운 것입니다.
일본 도쿄의 중심가인 마루노우치 지역도 오래된 업무 지역을 재개발하면서 비슷한 방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근대건축 보존을 독려하기 위해서 외관을 보존하면 내부 개조와 용도 전용을 폭넓게 허용해주고, 보존에 대한 보상으로 재건축 과정에서 용적률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1894년 은행으로 만들어진 건물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미츠비시 이치고칸 뮤지엄처럼 증축 없이 내부 개조를 통해 재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쿄 중심가에서는 1990년대부터 정부 정책에 따라 근대건축물을 보존하면서 고층 증축을 하는 사례가 확산되었습니다. 1993년 기존 건물의 2개 입면만을 남기고 고층으로 증축한 도쿄은행협회빌딩, 1995년 21층의 고층 건물을 증축한 제일생명관(DN타워 21), 1920년에 건설된 건축물의 1/3을 보존하며 초고층 빌딩으로 증축 및 재개발한 일본공업클럽 등이 건설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마루노우치가 본격적으로 재개발되면서 2005년 미츠이무로마치 타워가 건립되고, 2013년 고층 증축과 함께 중앙우체국 건물의 입면과 내부구조 일부를 보존하면서 내부를 쇼핑몰로 개조한 ‘키테’(KITTE)등이 개관하면서 마루노우치는 일본 경제의 황금기 기억을 장소에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심지어 도쿄에서는 이미 없어진 근대건축물을 사진과 도면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재현된 신바시 정류장은 신바시-요코하마 간의 일본 최초의 철도의 시점이었습니다. 1997년 업무용 빌딩과 주택 등으로 재개발되어 사라진 이 역은 발굴조사를 통해 유구가 드러났는데, 옛 건물에 대한 자료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재현된 건물이 원형과 다름을 명시하면서까지 이 건물을 복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두 도시의 역사와 기억을 박물관에 밀어 넣지 않고, 도시 안에서 계속 생명력을 갖고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한 다양한 모습의 결과들입니다.
한때 낡은 주거지역에서 도시 미화와 관광을 목적으로 ‘벽화마을 만들기’가 대 유행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화동, 동피랑 마을, 부산 감천마을 등의 사례를 통해서 알려진 벽화 그리기는 무수한 지자체에서 벤치마킹 되었지만, 대부분 사후 관리에 실패하거나, 개성 없는 복제품으로 전락했습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이제는 잘 논의조차 되지 않는 벽화마을의 사례는 각 도시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찾는 방법으로 ‘요즘 유행하는 어떤 것’을 잘 찾아 가져오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오히려 도시의 스토리텔링과 정체성 찾기에 더 좋은 방법은 도시에 숨겨져 있는 기억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발견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배경으로서의 도시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 그때 도시를 살아온 사람들의 여러 작은 기억들을 찾아내어 현재에 다시 내놓는 것이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난 과거의 향수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도시의 작은 역사가 베낄 수 없는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게 해 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미 찾아내어 여러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근대 건축물들뿐 아니라, 지금까지 도시 풍경을 어지럽힌다고 무시 받았던 오래된 건물들을 적극적으로 재이용하려는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은 식민통치의 상징이어서 제거의 대상이 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고도성장기의 건축은 건축적 철학이 부족하거나, 건설 수준이 조악하다고 비판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떠한 건물들은 그 건물이 있었던 동안 간직해온 역사를 통해 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은 낮고 낡아서 수익성이 떨어지니 고층의 산뜻한 현대적 건물로 재개발해야 한다’는 과거의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근대 건축물을 통해 인천의 100년 전을 지금도 느낄 수 있듯, 신포동의 극장들과 번화가, 송림동과 만석동을 채우던 공장들, 양조장들과 같은 50년 전의 구도심의 여러 기억 또한 현재에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개항과 산업화를 관통해오며 인천은 다른 도시들보다 더 많은 기억과 이야기거리를 쌓아왔음에도 더 현대적인 도시와 발전된 미래를 좇아오느라 그것들을 잊어왔습니다. 오래된 건축물과, 그 안에 있는 오래된 기억들을 찾아내어 기억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인천경제자유구역과 같이 미래를 꿈꾸는 인천의 다른 한 편에 깊은 역사를 채워나가길 기대해 봅니다.
글/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 한지은(2014), 도시와 장소 기억,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 문화재청(2005), (근대문화유산 보존을 위한)등록문화재 제도 안내, 문화재청
– 이토 타케시(2006), 도쿄에 있어서 근대건축보존의 성립과 전개, 서울학연구, (27)
– 이현정,윤인석(2007), 한국 근대건축의 보존과 활용-명동지역의 장소성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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