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지난 6월 16일과 17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는 ‘스테이지 149’의 일환으로 극단 골목길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박근형 작, 연출)를 상연했다. ‘스테이지 149’는 인천문화예술회관의 도로명 주소에서 착안하여 만든 기획시리즈 명으로, 공연예술의 현주소를 관객에게 소개하겠다는 목표로 2014년 시작되었다. 전국 투어를 다니는 공연의 경우 대중성이나 흥행여부를 고려하기 때문에 이전까지 인천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의 ‘스테이지 149’는 작품성과 예술성을 우선시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멀리 가지 않고도 만날 수 있도록 인천 시민들에게 소개한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는 2016년 대한민국의 탈영병 이야기,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피랍된 청년의 이야기, 2010년 초계함의 침몰로 죽은 해군의 이야기, 일제강점기 ‘자살특공대’ 가미카제의 일원이 된 조선 청년의 이야기 등 네 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겨있다. 네 가지 이야기 속 인물들은 시대도, 장소도 다르지만 모두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자신의 죽음과 희생을 자랑스럽게 여기겠다고 말하는 가미카제의 청년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군대에서 탈영한 청년 사이에 70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국가가 개인에 우선한다.’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개인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다루었다는 점만 두고 보면 네 개의 이야기는 모두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 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미카제에 지원한 조선인 청년은 엄마와 동생이 일본인들에게 더 이상 무시당하며 살지 않기를 바라며, 민간무장단체에 피랍된 청년은 사랑하는 여자친구와의 결혼 자금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라크를 찾은 것이었다. 침몰하는 초계함에서 군인들은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부대를 이탈한 탈영병은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내하기로 마음먹었던 개인들은 의도치 않게 국가를 위해서도 똑같이 희생할 것을 강요당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개인은 더 이상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없고, 그들의 행복 역시 지킬 수 없다. 국가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가. 개인의 희생을 통해 국가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연극의 말미에서, 탈영병은 제대를 코앞에 남겨두고 탈영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군대 밖으로 나가봤자 잘 살 자신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집도, 학교도, 군대도, 어차피 세상이 전쟁터고, 우리 모두가 군인’이라고 말하며 ‘사람이 어떻게 그냥 참고 살아요, 우리가 그래도 사람인데.’ 하고 목 놓아 외치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받았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에게 희생당한 군인들의 모습은 팀의 동료들의 눈치를 보느라, 친구들, 가족들의 눈치를 보느라 각자의 행복을 포기해야만 했던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이다. 이렇게 군인의 죽음이라는 특수한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번 공연이 특히 더 많이 회자되었던 이유로 지난 해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블랙리스트’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연출한 박근형 연출가가 지원금 포기를 종용 당했다고 폭로하며 정부의 문화예술 검열 논란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개된 작품인 만큼 화제성도 높았지만, 오래 기다린 만큼 완성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문화예술 지원제도가 단순히 예술가들의 생존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선택하고, 좋은 작품을 관람할 권리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였다.
예술가들이 국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희생을 요구당하지 않고,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그로 인해 많은 관객들이 좋은 작품을 선택하여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글, 사진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