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별별 플리마켓, 예술시장에서 만국시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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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마켓(flea market), 벼룩시장은 오래된 물건이나 중고용품을 직접 사고파는 시장을 말합니다. 쓰지 않는 물건을 공원 등에 가지고 나와 매매나 교환 등을 하는 시민운동의 하나로 시작됐죠.

벼룩시장은 유럽 야시장에서 유래했습니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했는데(‘마르셰 오 뿌쎄’), 시장에는 일정한 자리를 할당받은 ‘정규 벼룩’과 ‘무허가 벼룩’이 섞여 있었습니다. ‘무허가 벼룩’들은 한쪽 귀퉁이에 물건을 내놓고 팔다가 경찰이 단속을 나오면 감쪽같이 없어졌고, 경찰이 가면 원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 모습이 벼룩이 튀는 것 같다고 해서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프랑스어 ‘뿌셰(Puces)’가 ‘벼룩’이라는 뜻 외에 ‘암갈색’의 의미도 있어 암갈색의 오래된 가구나 골동품을 파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혹자는 ‘벼룩이 들끓을 정도의 고물을 판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네요.

프랑스 외에 유럽 대륙에서 망명해 온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영국 런던의 소호 지구도 노천 벼룩시장으로 유명합니다. 벼룩시장은 기존의 관광자원 외에 도시가 보여줄 수 있는 일상의 내면으로 인정받았고, 갖가지 물건들로 작지만 이색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 청계천8가 주변 시장에 삼지창(三枝槍)을 비롯해 호랑이 잡는 덫, 엿장수 가위, 요강, 족두리 같은 골동품에서부터 중고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시장은 한국전쟁 후에 형성됐고, 벼룩시장, 개미시장, 만물시장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죠. 지금은 황학동과 동묘공원에서 옛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벼룩시장은 중고품을 사고파는 형태의 플리마켓(flea market)과 직접 만든 창작물을 판매하는 프리마켓(free market)이 결합된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출발은 홍대 앞이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문화행사 일환으로 첫 문을 열었고, ‘벼룩시장’과 ‘아트’가 결합한 ‘예술 벼룩시장’은 다른 지역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갑니다. 이른 바 ‘아트 벼룩시장’은 중고품이 아닌 ‘아트’를 판매했습니다. 아트는 순수미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수공예작품 모두를 포함하는 용어로, 직접 제작한 물건(작품)이면 누구나 그 물건(작품)을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예술정원에서 열리는 ‘예술시장 소소’는 올해로 5년째 열리고 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열정의 만남’을 표방한 ‘소소’는 첫 해, 참여작가와 관람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실험적인 미술가의 퍼포먼스, 싱어송라이터 연주, 야외영화상영회, 북 콘서트 등 공연과 예술, 문학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문화예술축제로 운영됐으며 올해도 사전공모를 통해 선정된 95팀이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합니다. 독립출판물, 드로잉, 일러스트, 디자인 소품, 사진, 예술 아카이브 등 소소한 예술품을 주로 출품했다고 하네요.

시민들은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고, 작품을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 참여작가들은 “일반인들에게 작품을 직접 보여줄 기회가 없는데 이런 자리가 있어서 좋다”, “마주 앉아 얼굴을 마주보고 육성으로 소통하는 행위에 대해서 집중하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소소시장이 특히 젊은 예술가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관람객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제주의 플리마켓은 이제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자 필수 여행코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주 전역에서 열리는 플리마켓 중 상시 장터만 20여 곳이나 됩니다. 매주 토요일 세화포구에서 열리는 ‘벨롱장’은 길게 뻗어난 방파제를 따라 노천 장터가 형성됩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마법 같은 장터가 펼쳐지죠. 제주어로 ‘멀리서 불빛이 반짝이는 모양’을 뜻하는 ‘벨롱’. 벨롱장이 서는 시간은 두 시간뿐입니다. 평소엔 갈매기들만이 날아다니는 조용한 방파제이지만 장이 서는 날에는 어디선가 몰려온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날씨가 좋을수록 사람이 넘쳐나죠.

‘소랑장’과 ‘아라올레 지꺼진장’은 금요일에 장이 섭니다. 소랑장은 서귀포 법환포구 앞에 있는 제스토리 카페 2층에서 열리는데 실내 장터라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덕분에 사계절 내내 폐장 없이 운영되죠. ‘소랑’은 제주어로 ‘사랑’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아라올레 지꺼진장’은 제주 농부들이 주축이 된 토박이 장터입니다. 땀 흘려 키운 제철 농산물을 함께 나누고자 시작한 직거래 장터로 기존의 시장에 플리마켓 개념을 도입하면서 풍성하고 재미난 시장으로 거듭났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이 있는 농부장을 비롯해 먹거리장, 예술장 등 다양한 분야가 서로 어우러진다고 하네요. (한국관광공사 2016.9. 자세히보기 ▶ )

인천의 만국시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아트플랫폼 일대에서 열리는 만국시장은 매달 주제가 바뀌는 색다른 플리마켓입니다. 지난해에는 예술창작, 나눔, 생활이 함께 어우러진 ‘별난마켓’,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 뮤지션을 만날 수 있는 ‘만국음악살롱’,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는 ‘별별극장’으로 진행했고, 올해는 마켓과 음악살롱으로 이어갑니다.

인천의 플리마켓은 다양한 문화가 뒤섞였던 개항장을 상징하는 대표공간인 자유공원의 옛 이름을 따 ‘만국시장’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중구 송학동에 위치한 현재의 자유공원은 1888년 ‘만국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입니다. 인천의 개항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온 외국인들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만들어졌죠.(경인일보. 2016.10.20. 자세히보기 ▶)

각국공원(1888), 서공원(1914), 만국공원(1945), 자유공원(1957)으로 이어진 공원 명칭의 변천사는 인천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파노라마입니다. 개항의 현장으로 여전히 이국적인 근대풍경을 담고 있고, 근대 인천의 독립운동과 청년운동의 베이스캠프로도 인식됩니다. 전쟁과 분단의 그늘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장소 역시 지금의 자유공원입니다.

‘만국시장’은 인천의 문화사와 경제사를 복원하는 키워드로서의 만국공원을 지역의 문화콘텐츠로 확장했다는 데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플리마켓의 확산을 온라인 중고거래와 연결 짓는 시각도 있습니다. 불경기와 불안정한 일자리 등으로 말미암아 온라인 중고물품 거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된다고 하네요. 적은 돈으로도 쓸 만한 물건을 구매하려는 수요층과 적은 돈이지만 경제적 보상을 원하는 공급층이 든든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플리마켓 장터의 상업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시장이 성장하면 많은 셀러들이 참여를 원하는데,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의 셀러들도 모여듦으로써 순수성이 옅어져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겁니다. 셀러들 간의 반목이나 호스트의 권력이 방문객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제주레저신문 2014.8.26. 자세히보기 ▶)

한국의 플리마켓은 중고거래라는 플리마켓 역사성에 충실한 형태라기보다 한국의 특성에 맞게 재해석한 기념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아트마켓의 특성이 강합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수공예 작품,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물건, 마음이 담긴 서비스를 소개하고 판매하죠. 슬로푸드, 욜로라이프, 히피문화 등의 삶의 방식도 이곳에서 공유됩니다. 그래서 플리마켓의 분위기는 리버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은 그 나라와 사회의 생활양식 이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다양한 사람과 물품의 만남을 넘어 문화와 예술이 즐거움과 가치의 이름으로 스며드는 자리, 앞으로 플리마켓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할지 기대해봅니다.

 

글/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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