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을만들기, 지역공동체 또는 마을공동체, 주민자치, 도시재생. 대규모 철거 재개발 방식의 도시 정비 방식에 대한 반성 이후로 최근 몇 년 간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철거 재개발 방식에서 드러난 문제점-원 거주자들의 낮은 재정착 비율과 그에 따른 기존 지역 사회의 해체 등이 있습니다.- 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죠.
서울시는 뉴타운 지정 구역을 해제하고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국토부에서도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지방도시의 낙후된 원도심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천시도 2014년부터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센터를 운영 중이고, 원도심 지역에 도시재생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강화군의 경우에는 이미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설립되어 있지요. 사업지역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대체로 도시기반시설이 낙후되고, 오래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곳들입니다. 이렇게 마을만들기나 도시재생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를 재건하는 것입니다. 지역 주민 참여를 기본적인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사업 진행에 있어서 많은 주민들의 높은 이해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역 공동체와 관련된 많은 연구에서는 공동체의 형성과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에 유리한 조건으로 시간적으로는 오랜 거주기간을, 공간적으로는 단독주택을, 소유형태로는 자가 소유를 꼽습니다. 이것은 다시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한 지역의 주민 구성이 자주 바뀌지 않으면서, 접촉 빈도가 높을수록 유리하다는 것이지요. 이 관점에서, 공간적으로 단독주택과 대비되는 아파트는 오랫동안 지역 공동체 형성의 훼방꾼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과거에는 아파트의 획일적인 디자인과 배치가 ‘병영’에 비교되기도 하고, 주차장 위주의 외부 공간과 주민간 접촉이 줄어드는 동선계획 등으로 인해 주민 간 관계가 익명화, 파편화 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많았습니다. 최근의 아파트는 고급화 되는 과정에서 단지 외부와의 교류를 단절하는 ‘빗장 도시(Gated Community)’가 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룹니다. 과거에나 현재나 아파트 단지는 지역에 섬처럼 존재하며, 단지 밖 마을과 소통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아파트 단지가 이러한 취급을 받는 것에는 일면 억울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는 앞에서 이야기 한 ‘주민 구성의 안정성’의 측면에서 그러하고, 또 하나는 주민 자치와 협력의 경험적인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인천에 대기업에서 분양한 고층의 대단지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한 역사가 어느덧 30년이 넘었습니다. 전국적으로도 전체 주택 숫자 중 아파트의 숫자는 60%에 육박합니다.[1] 지역 공동체를 이야기 함에 있어서, 아파트와 아파트 거주자들을 배제하고 논의할 수 없어졌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2015년 인천시민들이 ‘어떤 형태의 집을 어떤 형태로 소유하고 있는지, 또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얼마나 오래 살고 있는지’를 정리한 것입니다.[2] 인천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5년 이내에 이사 경험이 있는, 주거 이동성이 큰 도시입니다. 40% 이상이 자가 소유를 하지 못하고 임대 기간에 맞추어 이사를 해야 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마을만들기, 도시재생사업 등이 수 년간에 걸쳐 주민참여를 이끌어내는 점진적인 것임을 떠올려보면, 이렇게 짧은 거주 기간은 주민들이 지역에 대해 애착을 갖기도 어렵게 하고, 참여의 결실을 맺기 전에 이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도 합니다.
반면 전체 인천시민 가구 중 50% 이상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는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가구는 5년 이상 현재 거주지에서 꾸준히 머물러 온 사람들입니다. 또한 아파트 가구 중 전체의 68%는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도시에 대한 애착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다른 주거 종류에 비해서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파트 거주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이미 주민자치의 경험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입주자 대표회의, 아파트 부녀회와 같은 주민 모임은 단지 내 문제를 거주하는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주민자치의 경험이 됩니다. 마을만들기사업, 도시재생사업에서 많은 부분이 지역 주민들에게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재인식시키고, 지역주민을 ‘조직화’하는 역량을 만드는 데에 투자되는데, 아파트의 이러한 주민자치의 경험은 이러한 역량을 미리 갖추도록 돕습니다. 최근 단지 주민에게 회의를 공개하는 등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이 늘어나는 것 또한 긍정적입니다.
최근 아파트 외부 공간에서 지상에 주차장을 없애는 기법이 보편화 되면서, 건설회사들은 이공간에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피트니스 센터나, 보육시설, 북카페 등을 넘어 최근에는 애견 놀이터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아파트 거주자들은 이런 공간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아파트의 문제로 지적되어 온 ‘주민 간 접촉 빈도’를 늘릴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주민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커뮤니티 공간을 주민들이 스스로 운영하도록 한다면 공간 자치의 경험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의 아파트 역사가 30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 노후화된 아파트에 대해서 리모델링과 재건축의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도시재생의 눈으로 아파트 단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 형성을 위한 여러 이점이 있는 만큼, 아파트 단지의 마을만들기, 아파트 단지와 인근 지역이 함께 꾸려가는 도시재생과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늘어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1] 2015년 현재 전국 총 주택 재고 중 아파트의 비율은 59.91%, 인천은 55.24% (2015 주택총조사. 통계청)
[2] 필자는 인구총조사 상 소유 형태 중 ‘전세’, ‘보증금이 있는 월세’, ‘보증금이 없는 월세’, ‘사글세’를 ‘임대’로 정리. 주거 형태 중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을 ‘연립/다세대’로, ‘비거주용 건물 내 주택’과 ‘주택이외의 거처’를 ‘기타’로 정리. 거주 기간 중 ‘1년 이내’, ‘1년-3년’, ‘3-5년’을 ‘5년 미만’으로 정리. (2015 인구총조사. 통계청)
글/ 김윤환(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 발레리 줄레조(2007), 아파트 공화국, 후마니타스.
– 박인석(2013), 아파트 한국사회, 현암사.
– 곽현근(2013), 지역사회 사회적 자본의 주거관련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 한국공공관리학보, 27(1).
– 김성수,김경준(1998), 지역사회 주민의 공동체의식에 관한 연구, 지역사회개발연구, 23(2).
– 김순은,권보경(2016), 도시공동체의 주민자치와 사회자본, 지방행정연구, 30(1)
– 이종수(2015), 주거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신뢰의 영향요인 분석, 한국주거학회 논문집, 26(1).
– 신중진,정지혜(2013),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마을만들기의 역할과 과제, 정신문화연구 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