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도깨비마을이 아닌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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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숨결, 문화도시 인천 동구’ 라는 문구를 자주 보게 된다. 인천 원도심중 하나인 동구, 동구에서도 특히 배다리는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겠다. 100년이 넘는 근대건축물들과 1960년대의 생활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 6~70년이 넘게 책방문화를 이끌고 있는 책방지기들을 통해 그야말로 배다리마을만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문화적 가치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드러내는 방법도 다양하다. 최근 모 방송 매체의 드라마 촬영지로 배다리헌책방이 문화상품으로 소비되면서 배다리는 그야말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몇 십 명씩 줄을 서서 책방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으며, 주말에는 밀려드는 차들로 인해 주차할 곳의 부족으로 불법주차까지 이뤄지고 있다.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던 썰렁한 동네에 관광객들이 몰려와 북적북적 활기찬 온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기는 하다. 어찌 보면 즐거운 비명이자 투정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배다리는 책이 있는 마을, 책 읽는 마을보다 드라마 촬영지로 더 유명해져가고 있다.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은 그 지역의 특성과 동떨어져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차이나타운 자장면거리와 포토존이 되어버린 동화마을에서의 소비 방식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기념하고, 즐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자장면거리에서는 맛있는 자장면 집을 찾아다니며 맛을 즐기듯이 헌책방거리에서는 읽고 싶은 책, 오래된 보물 같은 책들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따로 있는 것이다.

어제는 히잡을 쓴 외국인 관광객이 드라마촬영지인 서점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오지랖이 발동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말레이시아에서 왔으며, 서울에서 한 시간이 넘게 걸려 왔는데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와서 사진 몇 장 찍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 마을 지도를 보여주며 마을을 소개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를 권했다. 볼 것과 보여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분별없이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 이벤트만을 내세워 겉핥기식 관광을 부추기는 일들은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문화를 단지 싸구려 관광 상품처럼 ‘사람의 수와 돈의 가치’만으로 환산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밀려드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화들을 더 잘 드러내고, 가치를 재발견하는 작업들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동구청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몇 년 동안 잘 농사지어왔던 텃밭 부지를 경작 금지시켰다. 배다리를 찾는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목적으로 꽃밭을 조성할 것이고, 이를 위해 포크레인으로 흙을 갈아엎겠다고 하여 주민들과 크게 마찰이 있었다. 한 번 스치고 지나가버리는 관광객들을 위해 주민의 삶을 뿌리채 흔들어놓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유채꽃? 양귀비꽃? 어떤 꽃을 관광객이 좋아할까’를 고민하는 대신 해야 할 생각은 따로 있다. 관광객과 검증되지도 않은 경제 효과에 마음을 뺏겨 마을과 주민들을 구경거리로 만들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배다리를 역사문화마을로 가꾸며,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오고 있는 주민들의 뜻을 헤아리고 북돋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올해는 배다리마을이 산업도로 건설로 두 동강이 날 위기를 지켜낸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마을공동체가 더 탄탄하게 형성되었고, 배다리 마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담고 있는 많은 문화예술공간들이 자리를 잡았고, 오래된 책방들이 꾸준히 책 손길을 보태며 다듬어지고 있다. 책방이 단순하게 책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려오는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옷을 갈아입으면서 60년이 넘게 책방거리를 유지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기실, 이번 ‘도깨비’드라마 촬영지중 하나로 배다리가 뜨거워지면서 책방들도 시나브로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 집에 놀러오는 손님을 맞을 준비를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 쌓여있는 먼지를 한 번 더 털어내기도 하고, 책을 편안히 볼 수 있게 자리 배치도 바꾸고, 삐걱거리는 책장도 손질하고… 일요일에 쉬던 책방도 밀려드는 손님들을 위해 격주로 문을 열고, 가게 앞 낡은 화분을 손보기도 하며 서서히 단장을 하고 있다. 반짝하는 관광 상품에 눈을 맞추는 대신 더 다양한 책을 갖추고 손님들을 배려하느라 책방의 책손들이 바쁘다.

‘역사의 숨결, 문화도시 인천 동구’의 역사와 문화는 단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켜켜이 쌓아온 삶의 흔적이며, 지금까지도 살아내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오래된 도시가 품고 있는 매력은 그 시간만큼 발품을 팔아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배다리는 이상하고, 요상한 도깨비마을이 아닌, 가까이 보아야 예쁘고, 자세히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곳이다. 느린 걸음과 여유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발을 담그기를 권한다.

청산별곡 / 생활문화공간 달이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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