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토요일, 송도에 위치한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입구에서부터 직접 손으로 삐뚤빼뚤 만든 포스터들이 관객들을 반겼다. 8개월 동안 준비한 영화가 처음 사람들 앞에 공개되는 날인만큼 청소년 작업자들의 얼굴에는 들뜬 마음과 함께 긴장이 서려 있었다. 불이 꺼지고 익숙한 얼굴들이 스크린에 비치자 청소년 작업자들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청소년 작업자들은 배우와 감독을 꿈꾸는 중․고등학생 34명으로 올해 3월 처음 모였다. 1박 2일 캠프를 시작으로 친해진 청소년 작업자들은 ‘피리부는 사나이’ 이야기를 가지고 연극을 만들었다. 4월에는 인천역과 차이나타운 일대를 돌아다니며 ‘인천의 청소년들은 학교 밖에서 무엇을 하며 노는가’를 주제로 직접 대본을 쓰고 연극을 만들었다. 그리고 8월, 연극 대본을 각색하고, 배우, 연출, 촬영, 음향 등 역할을 나누어 영화를 찍었다.
‘청소년 작업장 예술가 되기’ 프로그램이 다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실제 영화 현장에서 작업하는 감독들, 인천독립영화협회의 회원들이 프로그램의 기획자, 강사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란희, 신운섭 감독은 연극, 영화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비싼 학원비를 들여가며 입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학생들이 부담 없이 연극, 영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역에 있는 아이들이 지역에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자신이 생각하는 진로분야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경험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존 학교 교육에서는 예술을 하게 되면 ‘모 아니면 도’가 된다고 가르쳤어요. 완전히 성공하지 않으면 완전히 실패하는 것으로 양 극단만 상상하게 만든 것이죠.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현실적인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해요. 누구나 잘 나가는 영화감독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감독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지역에서 근근이 먹고 살면서도 자기 작업을 계속해나가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이란희)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꿈을 포기하고 예술 강사로 진로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10년간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뒤에 예술 강사가 되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만나는 데 있어 창작 현장에서 쌓은 경험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예술가가 되어 작업하기를 꿈꾸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작업하는 감독들이 강사로 투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신운섭)
청소년 작업자들이 만든 영화는 작업자들이 일상 속에서 겪은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조별 모임에 늦는 친구를 두고 다투는 이야기 ‘인천역 기다림’, 학업과 진로, 연애 등 선택에 관한 고민을 담은 ‘동전’, 학교 폭력을 경쾌한 미스터리물로 풀어낸 ‘내가 보여?’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담은 8편의 단편 영화는 또래 청소년들에게는 공감을, 어른들에게는 학창시절의 풋풋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었는데 영화 관련한 활동은 학교에서 하기 어려웠는데 청소년 작업장을 통해 영화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글을 쓰면서 생각만 하던 것을 직접 연출을 하니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양우민, 대건고, ‘바람차이’연출)
“토요일마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행복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집에 늦게 들어와서 피곤한 기색을 보여도 뭔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직접 겪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요. 저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워온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처럼, 앞으로 아이들의 인생도 멋지게 연출하고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한만수, 한세하·선하 학생 아버지)
우리는 흔히 어린 학생들에게, 젊은 청년들에게 야망을 가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야망이란 돈과 명예 등 성공만을 가치에 둔 야망이다. 어른들이 예술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두고 비현실적인 꿈을 꾼다며 말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소년 작업자들은 영화인으로서 허공에 둥둥 뜬 미래를 상상하기보다 땅에 발 디딘 현실 가능한 미래를 경험함으로써 돈과 명예가 아닌 또 다른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의 열정이 꿈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되기를 응원한다.
글 /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시민기자 민경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