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많은 도시 인천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다”: 손다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천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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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할 말이 많은 도시 인천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다” 손다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천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경인일보 박현주(朴賢珠) 정치부 기자

손다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천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그동안 인천이라고 하면 부평역 지하상가 정도만 떠올렸죠.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인천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 도시는 참 할 말이 많은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죠.

 

손다혜(30) 영화감독은 인천에서 독립영화 제작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기록을 보여주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다.
손 감독은 “많은 사람이 현상을 담은 뉴스가 객관적인 매체라고 생각하는데 뉴스도 제작자의 견해가 들어가듯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그렇다.”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의 시선을 통해 사실을 나열하고, 제작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시 어떻게 조합해서 만들지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 ‘인천 고택, 30일 간의 기록 – 지워버린 마을 부평2동 미쓰비시 줄사택’으로 제4회 더줌 다큐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2019년 시청자미디어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지워버린 마을 부평2동 미쓰비시 줄사택은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지역 문화와 역사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룬 ‘시민영상 아카이브 인천’의 두 번째 프로젝트였다. 서울에서 방송과 드라마 편집, 편성 업무를 맡았던 손 감독이 잠시 일을 쉬던 시기 우연하게 알게 된 프로젝트였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징용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현장이 있다”는 해설로 시작한다. 영화 소재가 된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본 군수공장 ‘미쓰비시제강’에 징용된 노동자 숙소다.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한반도를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로 만들기 위해 서울과 인천항을 잇는 부평에 군수품을 생산하는 인천육군조병창을 만들었다. 이어 일본의 군수공장 중 하나인 미쓰비시제강도 이곳으로 오게 됐다.
“과거 미쓰비시제강이 있었던 부평공원에는 인천육군조병창과 미쓰비시제강에 강제 노역된 노동자들을 기린 ‘징용 노동자상’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아픔이 서린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큐멘터리 영화로 다루고 싶었어요.”

영화는 미쓰비시 줄사택에서 살았던 주민과 전문가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한 주민은 “미쓰비시 줄사택에 살던 사람들은 이곳을 빨리 떠나는 게 목표였다”면서도 “과거가 있어야 현대가 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근대 문화를 자꾸만 없애면 현대는 어디에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영화 속 인물의 말은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둡고 아픈 역사의 증거’라는 가치를 가지면서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미쓰비시 줄사택. 이 고택의 쉽게 헐릴 수 없는 운명을 짚으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인천이라는 도시에 관심을 두고 정착하기로 했다는 게 손 감독 얘기다.

“경상남도 밀양과 경기도 평택, 안성, 일산 등 여러 곳에 살다가 2017년부터 서울로 출퇴근하기 위해 인천에 오게 됐습니다. 그동안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이 도시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손 감독은 이듬해 2019년에는 CJ나눔재단이 지원하는 한부모 자조모임 프로젝트 일환인 영화 ‘드림 캐쳐(감독·옥승희)’의 각본·구성을 맡기도 했다. ‘드림 캐쳐’는 나쁜 꿈은 걸러내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장신구 이름이다. 그는 청소년 시기 아이를 낳은 8명의 한부모와 유대 관계를 형성해 그동안 어디에도 쉽게 터놓지 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는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 이후 과정에 더 많은 의의가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벅찼을 한부모들은 편견과 혐오라는 사회의 시선 속에서 항상 위축돼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한부모들이 많은 관객으로부터 응원을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가정의 부모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게 값진 의미가 있었다고 손 감독은 설명했다.

“영화에 출연한 한부모들은 영화 상영 이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아이 엄마들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그동안 내가 한부모라는 사실을 밝히면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은 관성이 컸을 테니까요. 그러나 많은 관객이 이들과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한부모들을 위로하고 이해하고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부모들은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뿌듯하고 기쁜 성과가 있을까요.”

손 감독은 낯설었던 인천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영화인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현재 지역 영화인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2020년부터 인천 영화인들이 모인 사단법인 인천독립영화협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3년 발족한 인천독립영화협회는 인천 지역 독립 영화인에게 필요한 인적 자원은 물론, 교육·사업 등을 연계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천에서 활동하던 독립영화 감독들이 “다 같이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한 것이 인천독립영화를 조직한 계기였다. 올해는 인천독립영화협회가 매년 열고 있는 ‘인천독립영화제’가 10회를 맞이하면서 이전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인천독립영화제는 인천 영화인을 발굴하고, 주민에게 독립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 수가 늘었고, 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감독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 감독은 올해 8월 열리는 인천독립영화제 주제를 ‘지나온 10년, 나아갈 10년’으로 잡고, 인천의 독립영화가 성장한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방안을 기획하고 있다. 인천독립영화제가 인천 영화인과 시민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인천의 예술 축제’로 확장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지난 10년간 영화제에서 상영한 작품 중 인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다시 살펴보고 인천과 인천 독립영화를 통해 성장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이뿐만 아니라, 인천의 독립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거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이 인천 독립영화와 함께 성장한 만큼,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행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손 감독은 지역 영화인과 함께 인천만의 ‘영상문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영화인이 영화 제작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더라도 인천에서 독립영화를 만들고, 상영하고, 배급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천에서도 영화인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천독립영화협회가 그 기반을 만드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상업영화에서 흥행이라는 요소 때문에 배제될 수 있는 다양한 ‘메시지’를 오롯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독립영화만이 갖는 매력 아닐까요. 지역 영화인이 제작한 독립영화를 통해 그동안 관객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인천만의 이야기를 전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진행/글 박현주(朴賢珠, Park Hyeonju)

경인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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