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나직하지만 단단하게: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이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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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나직하지만 단단하게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이종구

류수연(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이종구 李鍾九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동산고 교사를 거쳐 지난해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0년대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임술년> 그룹전, <지평전> 등에서 활동하였고,  <민중미술 15년>(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 리얼리즘>(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출품했다. 1980년대부터 피폐해 가는 농촌현실과 민족현실에 주목하며 우리의 삶을 주제로 작업해 오고 있다.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고, 가나미술상, 우현예술상을, 그리고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공공미술관과 한국은행, 청와대 등 공공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현재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종구 교수를 수식하는 말은 ‘국내 및 인천을 대표하는 화가’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이제 그를 호명해왔던 이 수식어 뒤에 또 다른 수사가 더해질 것 같다. 바로 그가 제7대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선임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오랫동안 지역 예술계의 멘토로 자리매김해 왔던 만큼, 인천문화예술의 토양을 비옥하게 할 일꾼으로서 그에게 거는 지역 예술계의 기대 역시 크다.

인터뷰를 위해 부평구에 자리 잡은 그의 작업실로 향하면서,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확고한 자기 세계를 가진 예술가에 대한 존경과 인천 문화예술의 미래를 일구어낼 광역문화재단 신임 대표이사로서의 포부. 어느 쪽도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정된 지면을 고려하면서, 필자가 선택한 방향은 후자였다. 화가이자 교수로서 그의 삶은 이미 『인천을 감각하는 8인의 대화』(인천문화재단, 2020)에 어느 정도 담긴 만큼, 이번 만남에서는 신임 대표이사로서 그의 비전과 포부를 담아내는 것이 보다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천문화재단 제7대 이종구 대표이사 취임식(2022년 2월 28일)

인천’ 작가를 키우는 시스템으로

이종구 대표이사가 가장 먼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인재’ 그 자체였다. 그는 문화예술사업 및 지원에서 보다 고려되어야 할 것은 지역작가의 육성이라 강조했다. 지역작가는 있지만 지역미술(혹은 지역예술)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동시대와 호흡해야 하며 거기엔 지역이라는 경계는 없다고, 그는 말한다. 오늘의 인천에서 생산되고 호흡하는 미술이 서울이나 부산과 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예술을 지역의 명칭으로 한정하는 것은, 자칫 폐쇄적인 성격의 향토예술로 전락해버리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역에 대한 사회적, 예술적 탐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역작가의 육성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그는 무엇보다 3년 차 작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대학을 졸업을 하고 이제 막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 인천에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지원금을 주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젊은 작가들이 인천에 와서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원금의 액수와 규모를 확장하는 것만큼, 예술가들의 활동 자체가 활성화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야만 청년예술가들이 인천으로 와서 자립할 수 있는 트랙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 등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그것과 연계될 수 있는 또 다른 동력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천청년문화창작소 ‘시작공간 일부’

인천문화재단 청년예술가기획지원 ‘바로 그 지원’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사실 청년예술가를 키워야 한다는 구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것이 얼마큼 실천되는가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은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진입장벽을 마주한다. 기존의 진입장벽이 경력과 생계였다면, 최근에는 장르까지도 하나의 한계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는 단지 여러 장르의 협업을 지적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현대 예술이 더 이상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미 예술 현장에서는 그 어떤 장르로도 규정할 수 없는 작품들이 창작되고 있다. 기존의 틀만으로는 청년예술가들로 하여금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도록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문화재단의 눈은 이러한 새로운 시대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정책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더하기’의 눈이다. 바로 새로운 시대의 문예를 위한 시야와 추가적인 지원과 활동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가들이 인천이라는 도시로 모여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문화재단은 정보지원의 거점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음을, 그는 또한 강조하였다. 재단의 지원이 비단 경제적인 것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광역문화재단이 지역의 모든 예술가를 지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보에 있어서만큼은 재단은 충분한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재단의 문을 두드리는 예술가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허브로서 재단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만 지역작가들이 문화재단을 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기관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예술’을 둘러싼 재단의 전문성 강화

이러한 실천을 바탕으로 신임 대표이사로서 그가 내세우는 첫 번째 포부는 예술지원과 예술교육에 따른 재단의 전문성 강화이다. 예술지원/교육 영역은 문화재단의 핵심적인 역할이며 어찌 보면 재단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조직이다. 지역의 문화예술인을 육성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임 이후 이 분야의 인력을 충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내부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포부를 강조했다. 이는 향후 인천문화재단이 사업 중심의 조직으로 성장하는 기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인천’을 대표하는 상징성 있는 예술행사의 필요성

그가 내세운 두 번째 포부는 인천을 대표하는 예술제의 확립이다. 인천은 서울과 인접하고 공항과 항만을 끼고 있는 국제도시이지만, 그 이름에 걸맞은 문화예술행사가 아쉬운 상태이다.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있지만, 인천이라는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예술의 화두는 아직 명징하지 않다. 인천만의 ‘무엇’을 담아내는 동시에, 그간 인천에서 자생해왔던 여러 문화적 기반을 아우를 수 있는 상징적 아젠다가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한 것이다. ‘평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 방향성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볼 수 있다.

셋째, 인천문화재단 설립 20주년을 향한 포부

잘 알려진 대로 이종구 대표이사는 인천문화재단 설립 이전부터 재단과는 건실한 협업 관계를 구축해왔다. 재단 설립추진위원회의 일원이었으며, 인천문화재단의 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그러한 그가 재단의 20주년을 책임질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으니 그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무엇보다 지난 3년간 인천문화재단은 혹독한 성장통을 겪었다. 혁신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업과 조직 모두 한층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안정기를 맞이하며 새롭게 도약할 시점이 되었다. 인천문화재단이 인천 문화예술인의 든든한 지원자로서 제대로 성년(成年)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종구 대표이사는 자신의 임기 동안 내실을 다지는 일에 헌신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나직하지만 단단한 의지

2시간여 동안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이종구 대표이사의 목소리는 나직하지만, 흔들림 없이 단단하였다. 교단에서 물러나 오롯하게 자신의 작품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포기하고 재단의 대표이사를 맡고자 나서기까지 적지 않은 고뇌의 시간이 뒤따랐을 것으로 예측된다.

화가란 그야말로 자유로운 열정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러한 그가 상근이라는 구속에 얽매여 3년이라는 자못 긴 시간 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광역문화재단의 수장이라는 자리는 큰 명예일 수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의 나직하고 단단한 목소리의 힘은 아마도 그러한 고뇌의 결과일 것이다. 이종구 신임 대표이사가 인천문화재단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튼튼한 디딤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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