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무용계의 미래를 밝히는 젊은 춤함도윤의 <Never Give Up>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젊은이는 내일을 밝히는 존재다. 인천 무용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신진 안무가가 등장하여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대정신을 함양한 개성 있고 역동적인 작품으로 발레 창작에 지평을 넓히고 있는 데다가 관객의 호응과 감흥을 이끌 대중적인 감각까지 함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지켜봐야 할 젊은 발레 안무가로서 함도윤을 조명해 본다.
최근 심상치 않은 인천 무용계의 젊은 춤
인천은 서울과 인접해 접근성이나 영향력 등에 있어서 무용 문화가 활발하게 조성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음에도 오래도록 그렇지 못했다. 국내 무용계의 질적, 양적 주도를 지닌 서울과 인접한 지역으로 이에 관련된 혜택보다는 피해를 보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의 주요한 공연들을 1시간 남짓한 시간 내에 도달하여 감상할 수 있는 관계로 굳이 인천에서 유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데다가 얕은 인적 자산, 열악한 제작 환경, 시민의 관심 부족 등이 더해져 인천 무용계의 활로를 막았다. 대학 무용과나 예고 무용과가 거의 없는 현실 또한 신진 발굴 및 양성에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인천의 독립 무용가들은 외로이 분투하다가 현실적인 문제로 활동을 중단하곤 하며 차세대 무용가들은 인천에서 기반을 잡기보다는 서울로 진학 및 진출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하지만 1~2년 전부터 인천 무용계는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조짐을 보인다. 젊은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인천에 터를 잡고 활동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맑으나 궂으나 묵묵하게 인천 무용계를 지원해온 인천문화재단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인천문화재단의 무용 관련 지원사업에는 서울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젊은 실력자들이 상당수 지원하여 치열한 경쟁력을 보이고 가운데, 함도윤 같은 전도유망한 젊은 창작자가 기대 이상의 성과로 주목을 받았다.
개성 있는 젊은 발레 안무가, 함도윤
발레 안무가 함도윤 ⓒGRACE |
1988년생으로 서른세 살인 함도윤은 안무가로서는 아직 신진이다. 무용수들의 경우는 20대 초중반부터 데뷔하여 빠르게 주목받는 데 비해 안무가들은 안무와 연출뿐 아니라 기획, 행정, 홍보마케팅 등 다방면에서 역량과 리더쉽을 발휘해야 하므로 어느 정도 나이가 찬 다음에 데뷔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태어나서 자란 함도윤은 어려서 발레를 배웠던 여동생의 영향으로 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무렵 현대무용을 보고 ‘저런 춤도 있구나, 저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예술적 충동이 들었으며 그 계기로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 당시에는 현대무용을 배우고 싶었으나 근처의 무용학원에서는 발레를 가르쳐서 우선 발레로 인천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막상 예고를 다니면서 발레를 제대로 배우다 보니 그 고유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형적인 발레리노(남자발레무용수)는 아닌 새로운 창작에 대한 열정을 내면에 품은 미래의 안무가로서다.
2007년 한성대학교에 입학해서 박재홍 교수를 만난 것은 그에게는 폭넓은 성장의 자양분으로 작용하였다. 개인 조교를 하면서 발레 훈련과 창작뿐 아니라 예술가의 자질, 작품 제작 과정, 회의를 이끄는 방식, 문서 작성 및 정리, 강의 노하우 등을 습득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학교 발표회를 통해 이것저것 작품을 만들다가 스물여섯 살에 《K-Ballet 월드》에서 <사라지는 것들>로 안무가로 정식 데뷔하였다. 《K-Ballet 월드》는 우리나라 최대 발레협회인 한국발레협회에서 주관하는 축제로서 국내 3대 발레 축제의 하나다. 신진 안무가로서 가능성은 인정받았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무용 작품을 만든다는 게 안무가에게는 시간과 노력뿐 아니라 재정 면에서도 상당한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6년부터 3~4년간 돈을 벌기 위해 주로 뮤지컬에 출연하였다. 100회 동안 매일같이 똑같은 춤을 추는 때도 있었는데 커튼콜에서 박수 세례를 받으면서도 어느 날 문뜩 이건 내 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연일 매진에 커튼콜과 박수 세례를 경험하면서 오히려 발레로 대중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시 발레계로 돌아온 함도윤은 2019년 <붉은 대지>, 2020년 <청년실신>과 <피터팬>, 그리고 올해 <Never Give Up>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개성 있는 신진 안무가로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청년실신>, 성수아트홀 ⓒ어글리아트컴퍼니(허웅) |
굴복하지 않은 젊음, <Never Give Up>
7월 16~17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 오른 <Never Give Up>은 인천문화재단의 예술표현활동 지원을 받아 전작 <청년실신>을 70분짜리로 재창작한 것이다. “높은 거보다 돈이 더 무서운 거죠.”라는 고층 빌딩 청소부의 말에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청년실신 시대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 시대 젊은 영혼들의 치열한 삶을 발레로 표현하였다. 이 시대 청년을 대변하는 용어가 청년실업, 위험수당, 야근수당, 학자금대출, 생활고, 카드대출, 비트코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단히 현실적이면서도 시기적절한 주제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Never Give Up>에서는 이 시대 청년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묘사가 두드러진다. 아홉 명의 남자무용수들은 실업, 경쟁, 스펙, 빚, 파산, 사고, 자살 등 출구 없는 암울한 현실이라는 미로에서 헤매는 것 같다. 벼랑 끝에 놓은 듯한 엣지 있는 춤으로써 이러한 이미지와 분위기를 제대로 그려낸다. 직설적인 춤적 표현이 만연하지만 그렇다고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특히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등 국내 최정상급 무용단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무용수들이 여럿 있는바 주제에 대한 심오하면서도 감각적인 춤적 실현이 인상적이다.
발레지만 그 정형성에 한정되지 않은 동작과 표현으로 말미암아 현대무용처럼 보이는 장면들도 상당하다. 실제로 발레를 기본으로 하여 현대무용, 비보잉, 아크로바틱 그리고 연기적 제스처까지 폭넓게 넘나들면서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움직임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고 할 수 있다. 안무와 실연뿐 아니라 음악, 조명, 장치와 소품 등을 통해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폭넓은 짜임새가 두드러진다.
젊은이들이 느끼는 처절한 삶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해 뜰 날을 기원하는 모두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마무리 역시 설득력이 있다. 그 안에서 함도윤의 굴복하지 않은 젊은 열정과 패기마저 느낄 수 있다.
<Never Give Up>,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GRACE |
함도윤의 안무 특징 살펴보기
함도윤이 본격적으로 안무를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스타일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발레계의 다른 신진들에 비해 자기 색깔이 뚜렷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의 안무적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시대정신을 진지하게 반영한 주제 의식을 꼽을 수 있다. 그동안 국내 발레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던 이 시대의 사회상을 예리하고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이 함도윤 스타일로 각인되고 있다.
또한, 남성 춤에 있어서 강점을 지닌다. 직설적이고 역동적인 춤은 강한 에너지마저 담고 있는데, 이는 주제에 대한 탐구를 공유한 잘 훈련된 남자무용수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뮤지컬처럼 대중적인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 의식도 엿보인다. 발레에 메인 정형적인 표현방식에 벗어나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유연하고 감각적인 창작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함도윤 같이 춤 예술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집중력을 갖춘 젊은 무용가들의 등장은 인천 무용계의 미래를 밝게 비춘다. 실제로 인천 무용계가 오랜 침체를 딛고 차츰 활기를 되찾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젊은 무용가들의 활약에서 기인하다. 그리고 인천문화재단의 꾸준한 지원이 인천 무용계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한 바탕임은 자명하다.
심정민
무용평론가이자 비평사학자. 한국춤평론가회 회장과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현재 <춤>과 <댄스포럼>에 고정지면을 가지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립극장 등에서 심의·평가·자문 등을 맡아왔다. 저서로는 『무용비평과 감상』(2020)과 『새로 읽는 뉴욕에서 무용가로 살아남기』(2016)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