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시민, 인천을 꿈꾸다 – 2016 인천왈츠, <1936, 그날>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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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 고급 사교춤에서 평등의 상징으로

10월의 첫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는 조금 색다른 공연이 열렸다. 시민창작뮤지컬 <인천왈츠>는 일반 시민들이 직접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작품이다. 인천문화재단에서는 2010년부터 <인천왈츠>라는 이름으로 시민이 중심이 되는 공연을 선보여 왔다. 2010년과 2011년에는 각각 ‘시민합창단’과 ‘시민밴드’가 중심이 되는 콘서트 형태였고, 2012년부터는 ‘인천을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에 시민들이 직접 배우가 되어 참가하고 있다. 사실 <인천왈츠>라는 제목만 들으면 공연이 무슨 내용인지 의아할 수 있다. ‘시민’을 중심에 놓는 공연을 하면서 왜 ‘왈츠’라는 표현을 썼는지 다소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19세기 초의 유럽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사회 곳곳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상공업의 발달로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산층 시민계급이 부상하고 있었다. 또한 궁궐 문화가 해체되는 와중에 집약적 노동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여흥을 즐기게 되었다.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귀족 중심의 고급문화가 평민들의 삶 속에까지 파고들게 되었고, 남녀노소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왈츠’가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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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의 역사
사실 한국에서 뮤지컬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다. 2001년 라이선스 공연으로 국내 무대에 선보인 <오페라의 유령>은 7개월간 244회의 공연을 이어가며 약 24만 명이 관람, 총 192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의 성공을 계기로 한국의 뮤지컬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는데, 2000년대 초반에는 외국 라이선스 공연(주로 브로드웨이 형식의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다가 이후에는 오리지널 캐스트 공연이 그 뒤를 잇게 된다. <캣츠>로 시작된 영미권 오리지널 공연 붐은 이후 <노트르담 파리> 등 불어권 작품으로까지 파급되었고, 급기야는 번안 공연과 오리지널 캐스트 공연이 시차를 두고 차례로 공연될 정도로 관객층이 두터워졌다.
외국 라이선스 공연이 뮤지컬 시장 형성을 견인했다면,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낸 것은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었다. 올해로 공연 20주년을 맞이한 <명성황후>는 물론 <사랑은 비를 타고>, <김종욱 찾기> 같은 소극장 뮤지컬들이 관객의 다변화를 꾀하면서 뮤지컬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산업적으로 성장하면서 뮤지컬 제작 노하우도 보편화됐다. 사실 뮤지컬은 노동 집약적이며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한다. 극작이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곡과 안무가 이루어져야 하며, 대중적인 발성으로 노래하면서 춤까지 소화할 수 있는 전문 배우들이 대거 필요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시장이 성장하면서 뮤지컬 전문 무대제작인력이 양성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배우 층도 두텁게 형성되면서, 뮤지컬 제작에 도전하는 공연기획사들도 늘어났다. 또한 지자체에서 자기 고장의 이야기를 가지고 뮤지컬을 만드는 흐름도 생겨났다. 2006년에 수원 화성을 소재로 한 작품 <화성에서 꿈꾸다>가 제작되는 등 전국적으로도 뮤지컬 제작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전문예술인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이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충남 아산의 경우 청소년을 배우로 참여시키는 뮤지컬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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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이 노래하는 그 날까지!
다소 장황하게 뮤지컬의 역사를 짚어본 것은, 유럽에서 귀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사교춤 ‘왈츠’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널리 퍼지게 된 것과 대한민국에서 ‘뮤지컬’이라는 가장 전문적인 공연 형태가 민들에게 보급되기까지 유사한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천에서 뮤지컬은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찾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문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입안된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문화정책 연구자들이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얘기하는 것은 바로 ‘향유’였다. 하지만 최근 ‘문화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참여’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향유’라는 표현은 태생적으로 전문예술인들이 만든 예술작품을 일반 시민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머무른다는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참여’라는 표현은 시민들이 수동적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만들어나가는 적극적 입장을 지향한다. 즉 시민은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고, 시민 자신이 예술가가 되어 무대에 서서 그 무대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혹자는 ‘모든 시민이 전부 무대에 선다면 그 무대는 누가 봐 주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무대가 단순히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라는 단편적인 시각에 머무르는 것일 수 있다. 무대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공간’이기 이전에, 무대에 서는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힘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창조의 공간’이다. 관객은 무대에 서는 사람이 창조한 세계관에 공감하고 그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또 다른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대에 선 사람과 관객은 상호간에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는 관계라고 할 수 있으며, 무대는 그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시민창작형뮤지컬 <인천왈츠>는 이렇게 시민들의 ‘문화적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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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꿈에 관한 것이다. <인천왈츠>는 2012년에 처음 시민창작형 뮤지컬로 제작될 때부터 ‘꿈’에 대해 말해 왔다. 특별히 이번에 선보인 ‘1936, 그날’은 2015년 ‘꿈스터디 꿈스케치(이하 꿈스꿈스)’에 이은 ‘꿈’ 연작이다. 2015년 작품 ‘꿈스꿈스’가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꿈을 찾아보지 않겠냐고 질문을 던졌다면, 2016년 작품 ‘1936, 그 날’은 80년 전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독립이라는 꿈을 위해 달려가던 선조들의 삶을 소박하고 진솔하게 담아냈다.
시민이 중심이 되어 만든 <인천왈츠>의 의미적 요소를 생각하고 공연을 보더라도,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시민의 공연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관객들에게 숨겨져 있던 꿈이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이야기를 건네는 무대였기에, 잊고 있었던 나만의 꿈에 대해서도 부담 없이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시민의 자발적인 문화참여활동이 가장 활발한 분야가 바로 음악이며, 음악 활동을 하는 시민들이 행정 당국의 정책적 지원을 가장 많이 원한다”는 연구 보고서 내용이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많은 시민들이 노래하고 꿈꾸도록 도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문화정책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고 나온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야외광장의 밤공기에 방금 들었던 노래하는 시민들의 열기가 풋풋하게 묻어나는 것 같아 반가웠다. 부디 이 따뜻한 열기가 인천 전역에 퍼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바란다.

공규현 / 인천문화재단 경영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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