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믹 시대, 예술가들의 안전감 획득을 위한
심리상담 서비스 확대의 필요성
문은주 상담사
팬데믹 시대의 예술가
팬데믹 시대의 예술가들을 만나다 보면 1970년대 시행된 유명한 심리실험이 떠오르곤 합니다. ‘아이와 잘 놀아주다가 갑자기 엄마가 텅 빈 얼굴(blank face), 정지된 얼굴(still face)이 되었을 때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실험인데요.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시도하지만 끝내 엄마의 얼굴에 변화가 없자 고통으로 위축, 우울해졌다고 합니다. 관계를 통한 의미 공유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실험이기도 한데요. 상호작용을 하던 대상이 갑자기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뿐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매우 당황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좌절된다면 매우 큰 고통을 마주해야 하겠죠.
기질적으로 민감한 예술가들이 팬데믹이란 상황을 만나게 되면서 심리적 어려움이 심화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인데요. 왜냐하면, 예술창작물과 대중의 소통으로 예술이 완성된다고 한다면 이러한 만남의 제한이 곧 예술의 완성을 제한하는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콘서트를 포함한 전체 공연 시장의 피해액은 2천457억 원으로 추정(KOPIS집계, 2020.08.17.)되고 공연장 및 극장 업종에서의 전체 지출액은 전년 대비 -49.6%의 감소폭(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0.06.29.)을 보였다고 하니 예술가들의 일상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체감하게 됩니다.
상담에서 만난 예술가들은 대중들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부 예술가들을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고 있었고, 경제적인 열악함으로 인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심리적 고통을 예술 창조의 근원으로 생각하면서 약물치료를 고려하지 못한 채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감당하고, 환경적 한계를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부족으로 이해하려는 점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개인 작업을 하는 예술인의 경우 혼자 고립되거나 관계의 미숙함에서 오는 문제, 공동작업을 하는 예술인들은 관계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갈등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어느 정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공을 지속해서 유지하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안전감 획득의 중요성
미국에서 이루어진 연구결과들을 보면 예술가들은 일반인보다 50% 이상의 높은 비율로 항우울제를, 19% 이상 항불안제 복용을 그리고 니코틴 의존의 위험성이 높았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미국의 연구와 다르지 않게 한국의 예술가들도 일반인보다 6배나 높은 매우 심각한 우울을 경험하고 있으며 예술가의 스트레스는 일반인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고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식의 활용도 일반인에 비해 낮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예술가들의 심리적 건강을 돕기 위해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자율신경계 체계(Polyvagal Theory) 연구에서는 개인이 관계에서 편안하고 즐거움을 맺는 데 필요한 요소로 안전감(safety)을 이야기합니다. 이 안전감은 스트레스와 개인의 적응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성장과 건강과 회복을 돕는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어찌 보면 당연한 거 아닌가 생각해보지만 많은 경우 간과되기 쉬운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안전감은 예술가들에게 매우 필요한 요소가 되는데요.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작품완성을 통해 대중과 만날 때까지 여러 가지 만남을 겪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자신의 동기와 만나고, 작품의 도구와 숙련감 있게 만나야 하며 이러한 작품을 대중들과 만나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관계 맺어야 하는 여러 단계의 만남을 말합니다. 즉 ‘나와의 관계’, ‘너와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라는 다중의 과정을 거쳐야 대중들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만남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트레스 상황을 겪게 되고 이 상황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비난하고 정서적으로 압도되어 고립된다면 다양한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통한 안전감 획득
상담에 참여하신 예술가분들이 자신을 자비롭게 대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조절하며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언어화하면서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게 노력하였습니다. 이러한 도움을 통해 예술가들은 안전감 있게 작품에 전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국, 상담에서의 안전한 사회적 관계경험은 선순환을 통해 예술가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에서도 안전감을 강화하게 되고 결국 이를 통해 예술가들은 여러 스트레스를 완화하며 삶의 의미와 목적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예술가들이 제시한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대중들과 공유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입니다. 예술가들이 상담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조절하고 안전감을 획득할 수 있게 되고 결국 다양한 예술적 작품 창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뭔가 뿌듯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상담이 종결된 이후에도 예술가들의 공간에 상담사가 방문하는 <찾아가는 상담실>과 같은 형태의 상담프로그램과 일상적 교육프로그램이 제공된다면, 상담에서 익혔던 것들을 잊지 않고 지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또다시 이번 팬데믹 같은 어려움이 예술가들을 찾아오더라도 고통스럽지만,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만나는 창조의 작업이 지속되길 희망해봅니다.
문은주(文殷珠 Moon Eun Joo)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잠시 공부한 적이 있는 상담사입니다.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산업조직상담을 전공하고 상담심리사2급(한국상담심리학회)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림대학교 학생생활상담센터, 경희중학교, 다인EAP 상담사, 휴노EAP 상담사를 거쳐 현재 분당서울대소방공무원심리지원단, 서울심리지원동남센터, 나무솔 심리상담센터에서 심리건강 향상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