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 읽을수록 달리고 싶어지는 만화: 『헤어진 다음날, 달리기』(위즈덤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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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함께 읽기
만화에는 재미와 감동이 있습니다. 만화에는 이 시대가 생각해야 할 가치, 우리 사회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만화 함께 읽기’에서는 ‘문화예술을 소재로 한 만화’나 ‘문화 현장의 쟁점을 다룬 만화’를 소개합니다. 바쁜 일상이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만화를 읽으며 삶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읽으면 읽을수록 달리고 싶어지는 만화『헤어진 다음날, 달리기』(위즈덤하우스, 2018)

최기현(인천문화재단)

달리기는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활동이었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달렸다.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가족이 굶어 죽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생존의 위협을 당할 때는 도망치기 위해 달렸다. 많은 사람이 달리기가 주는 유익을 잘 안다. 체중 감량 외에도 심폐기능과 혈관 건강을 향상시키고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장점이 있다. 달리기가 주는 유익을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달리지 않는 사람이 많고, 많은 사람이 각종 성인병을 달고 산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만화 『헤어진 다음날, 달리기』(위즈덤하우스, 2018)는 제목 그대로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살아가며 이것저것 기웃거리면서 바쁘게 사는 사람, 그리고 주인공 ‘서바람’처럼 인생에서 달리기 한 가지만 있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는 주말 아침이 한 주간의 밀린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라면, 그녀에게 주말 아침은 달리기 위한 시간이다. 서바람의 20년 지기 친구 한태수는 사내 연애를 하다 여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한태수는 실연을 잊기 위해 헤어진 다음 날부터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다.

돌배, 『헤어진 다음날, 달리기』(위즈덤하우스, 2018)

장거리 달리기에 도전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더군다나 고등학교 체육시간 이후 한 번도 달려보지 못한 과체중의 남자 한태수는 1㎞도 제대로 뛰지 못하고, 달리다가 자리에 주저앉는다. “달리기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 못하겠다.”는 한태수의 고백은 일상을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는 우리의 푸념과 이상하리만큼 닮았다.

제목에 있는 ‘헤어지다’는 동사는 누군가에게 글자 그대로 실연을 의미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실망을 뜻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각자 다르겠지만 좋지 않은 사건인 것만은 틀림없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그 사건을 경험할 수 있지만, 대처는 모두 다르다. 학생이라면 공부가 잘되지 않고, 공부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직장인이라면 담당하던 업무가 잘 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지적을 받고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있다. 예술가라면 자신의 예술활동이 왠지 벽에 부딪힌 것처럼 답답하거나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말로 ‘슬럼프’라고 부른다.

“소질이 있어야 달려? 소질이 없으면 달리면 안 되는 거야?”

“달리기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는 한태수의 푸념에 서바람의 답변은 독자에게 신선함을 준다. 인생을 살면서 때로 슬럼프를 겪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달리기를 하는데 꼭 소질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소질이 없다고 달리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버티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헤어진 다음 날, 달리는 행위는 글자 그대로 달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경험한 그 사건 때문에 자신의 일상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견디면서 일상을 꾸준히 살아내겠다는 다짐의 표현이기도 하다.

『헤어진 다음날, 달리기』중 한 장면

슬럼프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에게 슬럼프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슬럼프가 찾아왔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숨이 턱에 차오르는 고통을 인내할 때 어느 순간 머리가 맑아지면서 고통이 사라지고 행복감이 밀려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찾아온다고 한다. 슬럼프 속에서도 꾸준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일상의 러너스 하이는 분명히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벌써 11월이다. 2021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돌아보니 체중이 조금 늘었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몸도 마음도 조금은 게을러졌다. 신기하게도 『헤어진 다음날, 달리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를 달리고 싶게 만드는 만화다. 등장인물들처럼 달리기의 매력을 흠뻑 느끼고 싶다. 나 역시 당장이라도 책을 덮고 공원을 달리고 싶다는 충동을 여러 번 억제하면서 만화를 끝까지 읽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동네 공원 한 바퀴라도 뛰어야겠다.

최기현(崔基鉉, Daniel Choi)

인천문화재단 전략기획팀 과장. 만화평론가. 문화예술과 만화에 담긴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웹툰이나 공연, 전시를 추천해주신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DANIEL7@if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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