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문화다양성 기본계획,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에 기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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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문화다양성 기본계획,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완(아시아인권문화연대 공동대표)

「제1차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기본계획」(이하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이 지난 5월 발표되었다. 이번 계획은 정부가 2021년에서 2024년까지 4년간, 어떻게 문화다양성을 보호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철학과 중장기계획을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의 의미와 내용을 짚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많이 늦은 기본계획

2001년 유네스코는 문화다양성 선언을 발표했고, 바로이어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은 국제협약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은 2010년 문화다양성 협약에 비준했으며, 2014년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2015년에는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을 위한 기초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법률에 따라 뒤이어 발표되었어야 할 기본계획은 계속해서 미루어졌다. 문화부의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사업인 <무지개다리 지원사업>이 2012년에 처음 시행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기본계획의 발표는 매우 늦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다양성’은 이미 여러 번 국가 중장기계획에 등장하고 있다. 「제3차 인권정책기본계획(2018년~2022년)」, 「제3차 다문화정책기본계획(2018년 ~2022년)」, 그리고 「제3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2018년~2022년)」, 모두에 문화다양성은 주요과제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기존의 중장기계획에서의 문화다양성은, 각각의 정책목표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만 ‘문화다양성’을 다루고 있다. 또한, 이주민과 다문화정책의 관점에서 문화다양성을 바라보는 협소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자체를 목표로 하여, 계획된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그 핵심가치와 목표를 ‘차별시정과 인식제고’, ‘문화참여와 접근성’,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그리고 ‘상호문화교류’로 설정하였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문화다양성과 관련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정리된, 한국 사회에 필요한 문화다양성이 적어도 핵심가치와 목표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과제의 상당수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을 모아놓은 것에 그치고 말았다. 많은 협력부처가 나열되어 있지만, 교육부와 여가부에서 이미 시행되는 사업을 적어놓은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에 관해 몇 가지 의견을 적어 보았다.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이 필요한 이유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의 필요성을 윤리와 정의적 차원, 경쟁력의 차원 그리고 국제사회와의 약속 이행의 차원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양성이 가지는 여러 가지 모습을 대부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순서와 각각의 이유에 대한 강조점의 균형은 매우 아쉽다.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필요성에 대한 설명 도입부터, 한국 사회 인구구조 변화 즉, 저출생과 노인 인구증가 그리고 인구감소를 맨 처음으로 언급하며 다양한 외국인의 유입을 적어놓았다. 이주민이 국가사회의 생존과 현재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사람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 자체가 아닌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문화다양성이 증가하면 당연히 개인과 국가사회의 생존과 경쟁력도 향상된다는 점을 알리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가 문화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인하는 첫 번째 설명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경쟁력의 강조는 결국 경쟁력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줄을 세우고,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될 것이다. 이는 모두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부메랑이 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문화다양성 1차 기본계획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문화다양성의 필요성을 한국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알리는 공식적인 문서였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이 ‘획일적인 사회 이데올로기와 효율 만능주의로 인해 남과 다른 소수성이 억압받아 왔다는 점’이 언급되었어야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한 ‘혐오와 차별이 넘쳐나는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점이 명시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문화다양성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를, 문화다양성을 통해 ‘다양성을 억압하는 혐오와 차별을 몰아내고’ 이를 통해 ‘기본적인 문화권과 인권을 보장’하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 그리고 ‘더욱 자유로운 문화적 표현이 실현’되는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본계획의 실행과정에서 이런 점이 보완되고 더욱 강조되었으면 한다.

문화다양성 인식개선과 교육 의무화

문화다양성 인식변화에 교육은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교육만으로는 인식개선을 이룰 수 없다. 구조와 환경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의 ‘기관운영의 문화다양성 운영 반영 확대’, ‘문화다양성 인증제 추진’, 그리고 ‘지역 문화다양성 조례제정이나 문화다양성 위원회 설치 추진’ 등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장기과제로 설정되어 있거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적혀있지 않아, 실제 얼마나 추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모두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문화 분야 공공기관 종사자 문화다양성 교육 의무화’나, ‘문화다양성 관련 보조사업 수행 시 보조사업자 교육 의무화’는 긍정적인 추진 과제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문화다양성 인식개선은 상대방의 인식변화가 아니라, 정책을 기획, 주도하는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작 문화다양성 정책 수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문화부 공무원을 포함한 정부 중앙부처의 공무원단, 그리고 정부 부처 안에서 어떻게 문화다양성 인식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미비하다. 나 말고 당신이 변화라고 요구하는 것은 적어도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에 적합한 방식은 아니다.

문화복지와 문화다양성

사회적 소수자가 혐오와 억압으로 인해,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은 문화다양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지역어와 수어 등 언어적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관행적으로 시행됐던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문예 공모 규칙 개선’ 등의 시행과제들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기대를 하게 한다.

반면 ‘취약계층 문화권 보장’이라는 내용으로 ‘통합문화이용권 및 스포츠강좌이용권 지원 확대’나, ‘소외계층 문화권’으로 ‘문화시설 접근권’ 등을 문화다양성의 주요 세부 과제로 설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은 소외계층 문화나눔사업이나 문화복지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시행과제를 통해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의 일부 내용에서는 단순히 문화예술 향유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문화다양성의 주요 활동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있다. 물론, 문화예술과 스포츠 이용권 제공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에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구조와 환경 그리고 기회를 만드는 것이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과정이라는 점이 세부 과제에서도 명확하게 정리되었어야 한다. 이 또한 시행과정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혐오와 차별에 더욱 적극적인 대응

혐오와 차별에 대한 대응은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에서도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주요 정책목표와 핵심가치로 ‘차별시정과 인식제고’를 선정하였고, 기본계획 곳곳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문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인 권리다.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면서 문화다양성을 가치확산을 하자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따라서,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을 통해 이를 이루자는 목표에 찬성한다.

혐오와 차별 예방과 대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번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에서도 이를 정책목표와 과제로 강조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이에 걸맞은 수준의 시행과제는 보이지 않는다. 시행과정에서는 혐오와 차별을 어떻게 예방하고, 혐오·차별이 발생했을 때 어떠한 제도적 장치를 발동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준비되기를 바란다.

문화다양성 기본계획에 관해서는 실망과 기대를 동시에 가지게 된다.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이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정체성에 대한 표현조차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겪는 오늘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다양성 가치확산은 정부의 계획만으로 이룰 수 없는, 나와 내 주변의 일이다. 계획보다 실행을 더욱 담보하면 좋겠다는 애정을 담아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면 좋겠다.

■ 참고자료

이완(李完, LEE, WAN)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공동대표
경기문화재단 인권경영위원
문화도시사업 컨설턴트
문화다양성 가치확산 무지개다리 사업 컨설턴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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