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천천히, 신뢰를 쌓아 가는 동행: 연수문화재단 민간공간 협력사업 〈우리동네 문화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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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천천히, 신뢰를 쌓아 가는 동행
연수문화재단 민간공간 협력사업 <우리동네 문화등대>

송수미(연수문화재단)

작지만 의미 있는 동행을 하고 있는 연수문화재단의 민간공간 협력사업 <우리동네 문화등대>는 작년부터 추진 중인 문화체육관광부 제3차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계기로 기획되어, 지금까지 법정 문화도시 사업계획의 방향을 만들어가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공간지원 사업의 경우 보조금 사업이다 보니 선정공간들이 영수증 증빙 처리 등과 같은 과도한 행정업무에 치여 쉽사리 다음 지원사업에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공간운영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공모사업이 아닌 지역의 민간공간들과 파트너십에 기반한 협력사업 <우리동네 문화등대>를 기획하였다. 겉보기에는 어디에서든 할 거 같은 공간 지원사업으로 보이지만 심사를 통해 공간을 선정하지 않으며, 민간공간 운영자들과 사업의 방향을 정하고 함께 문화예술 사업을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공간운영자들은 사업계획서를 통해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고 정산에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다. 온전히 본인의 공간을 열고 찾아와준 시민들과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처음 사업을 기획할 당시 ‘협력사업은 꼭 필요한 것인가?’, ‘협력으로 인해 높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제는 협력이라는 단어를 프레임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협력이란 것은 한쪽의 일방적 이익이나 희생이 아닌 동등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비롯되기에 만약 <우리동네 문화등대> 사업에서 ‘민’과 ‘관’이 파트너십을 통해 공평한 역할분담과 상호 이익을 위한 전략적 맞춤 관계가 보장된다면 다른 어떠한 지원사업이나 공간 발굴사업보다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담당자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지역을 돌아보고 지역민들에게 알음알음 소개받아가며 지역의 민간공간을 찾아다녔고, 현재 6곳의 민간공간 운영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동네 문화등대>는 민간공간들이 지역의 ‘문화거점’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민간문화공간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의의를 두는 사업이다. 지역에서 만난 카페, 서점, 악기사와 같은 민간공간들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동네 사랑방 역할을 원했지만, 기획서를 작성해본 적도 없고, 사업을 운영해 본 적도 없으며, 정산에 대한 개념도 부족하였다. 민간공간 운영자들은 하고 싶은 기획이 많았으며 족히 10년 동안 할 수 있을 법한 순수하면서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민간공간 운영자들과 만남은 우주를 떠다니는 듯한 상상과 함께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우리동네 문화등대 참여공간 ⓒ연수구 문화도시센터

사실 공공과 협력하기 위해 따라붙는 수식어 중 ‘공공의 필요를 항상 충족시켜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동네 문화등대>사업은 공공의 니즈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운영하는 운영자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사업의 방향을 정하고 답을 도출해내는 과정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민간공간 운영자들의 가치, 선호, 경험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이해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이 주도하는 사업이라서 모든 것이 옳고, 모든 것이 정답일 수 없기에 사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하는 공간운영자들의 의견을 듣고 생각을 확인하며 진솔하게 사업을 운영해 나가고 자 하였다. 담당자로서 공간운영자들과 파트너십을 통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려는 이런 선결적 고민은 협업을 진행하는데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공간을 활용한 문화기획을 하기 이전에 민간공간 운영자들과의 협력에 기반한 상호존중과 운영자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할 수 있도록 상호 마음가짐을 다지는 기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간운영자들의 목표와 관심이 재단의 목표와 일치되는 것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상호업무협약서를 작성하여 동등한 협력관계를 맺었다. 또한, 민간공간 운영자들이 서로의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경험하고 공간 간 협력작업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며 자연스럽게 문화예술 기획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학습공동체(COP)를 만들었다. 학습공동체의 이름 짓기, 내용, 회차, 장소 및 시간 선정 등 모든 것들은 민간공간 운영자들의 선택으로 결정되었고 그렇게 <우리동네 문화등대>의 학습공동체(COP) ‘그린라이트’가 탄생하였다. 학습공동체는 참여하는 공간운영자들이 자신의 경력과 경험 등을 나누고 공간별 협업방안을 고민하며 자신의 문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특강 및 워크숍으로 구성하였다. 학습공동체의 회차가 진행될수록 공간운영자들은 ‘내가 하고 싶은 기획에서 지역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획’을, ‘막연한 상상에서 문화 활동의 구체성’을, ‘설명이 아닌 설득하고 공감하는 기획서’를 작성하는 방법들을 익혔다.

<우리동네 문화등대> 학습공동체(COP) ‘그린라이트’ ⓒ연수구 문화도시센터

또한, 공간운영자들이 사업 운영의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예산 활용의 유연성과 증빙 절차의 간소화를 통해 행정업무의 부담을 줄였다. 앞서 말했듯 공간운영자들은 공모사업의 경험이 부족하고 행정업무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기에 사업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단계적 관계 형성과 사업협력 방안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업의 구상·기획·실행·진단의 전 과정에서의 행정업무를 간소화함으로써 함께 활동하는 시민공동체로서의 밀도는 높여갈 수 있었다.

2020 우리동네 문화등대 ⓒ연수구 문화도시센터

올해는 6개의 민간문화공간에서 7월부터 다문화 아동과 함께하는 교육프로그램 <We sing together!>, 일상의 지침을 위로하는 <한상차림> 프로젝트, 미술과 음악의 융복합 예술 활동, 함께하는 인문학 <다섯 문장 글쓰기>, 실버 세대를 위한 프로젝트 <리틀 포레스트>, 마음의 여유를 찾는 소셜다이닝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예정이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고려하여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가 지나고 사업이 마무리될 때 <우리동네 문화등대>의 사업성과는 정량적 수치의 목표 달성도 보다 공간운영자들과 초대된 시민들이 얼마만큼 밀도 있게 소통하였는지, 어떠한 관계 맺음을 형성하였는지를 중요하게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정말 모두가 행복한 경험의 시간이었는지 진솔한 후기를 통해 이후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옛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걸어라.’라는 말이 있다. 협력은 복잡한 것이 아니라 파트너와 함께 문제를 푸는 방법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힌트를 얻으며 서로 힘을 합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동네 문화등대>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지역 안으로 스며들어 신뢰를 쌓고 작지만 의미 있는 동행으로 연수구라는 삶의 무대에서의 경험을 이어가고자 한다. 지금은 비록 동상이몽으로 출발하지만, 우리의 몸짓과 생각이 하나가 될 때까지!

송수미(宋修侎, SuMi Song)

연수구 문화도시센터에서 민간공간협력사업을 담당하며, 문화도시 지정을 위해 오늘도 지역의 다양한 파트너들과 작은 동행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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