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어 함께 가는 친구
인천청년문화창작소 ‘시작공간 일부’ 이야기
박석태(인천문화재단)
청년이 화두다. 무한경쟁이 당연시되면서 사회로 진입하려는 청년들의 설 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청년들은 안정적인 주거와 일자리, 결혼과 같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조차 마음 편히 누리지 못 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뿐 아니라 지난 재‧보궐선거에서는 급기야 언론에 의해 ‘이대남(20대 남자, Z세대)’과 같은 말로 표현되어 세대 구분 논리의 중심에 서기까지 했다. 이 모든 현상은 그들이 만들지 않았다. 다만 특정한 방식으로 누군가는 그들을 규정하고 편 갈랐을 뿐이다.
다소 거친 표현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서 청년은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자, 장애인과 같은 위치에 버금가는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다. 더욱이 청년 중에서도 예술가는 더더욱 그렇다. 학교라는 무균의 환경에 익숙한 청년들이 그곳에서 벗어나 예술계에 홀로 던져졌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낯설고 두렵기만 한 예술계라는 생태계의 가장 말단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함께할 동료는 없다. 이 사회에서는 예술이 밥 먹여 주는 일이 아니기에 생활의 방편은 묘연하기만 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선은 “좋아하는 일을 하니 그 정도는 참아도 된다.”는 인식이 전제된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니 외롭다. 게다가 실제로 대다수가 생활고에 시달린다. 따라서 청년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의 목표는 그들의 고립감 해소와 새로운 예술 생태계에 안착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조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2016 <바로, 그 지원> 포스터ⓒ고등어 작가, 인천문화재단 |
인천문화재단이 청년예술가와 함께하는 사업은 이러한 취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2015년 시작된 신진예술인지원 <바로 그 지원>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지원사업의 형태이기는 하나 이제 막 예술계에 진입하려는 청년예술가(기획자)을 위해 선배 청년예술가가 일종의 멘토가 되어 지원자의 프로젝트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 자신의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프리젠테이션 데이는 동료 예술가들의 작업에 대한 고민과 지향점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각자도생했던 청년예술가들이 동료, 선배, 심의위원의 지지와 응원을 확인함으로써 지역에서 예술 활동을 지속하는 데 큰 힘을 얻은 사례가 많았다. 여기에 함께 발표에 참여했던 다양한 동료 청년예술가와 멘토 사이에 일종의 연대의식이 싹터 이후의 창작 활동에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 방식은 청년예술가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던 인천문화재단과 해당 사업 담당자들의 땀의 결과였다.
인천청년문화창작소 ‘시작공간 일부’(사진: 인천문화재단) |
이렇듯 청년예술가가 지역 예술계의 중요한 자산임을 자각하는 것과 함께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연대의식을 마련하기 위한 태도는 이후 인천청년문화창작소 ‘시작공간 일부’(이후 청년문화창작소)의 운영 철학으로 이어졌다. 청년문화창작소는 2018년 「인천광역시 청년 기본 조례」 제정에 따라 이듬해인 2019년 동인천역 앞 옛 인천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쓰이던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인천광역시가 설립하고 인천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는 형식이었다. 1년간의 모색기와 실험기를 거쳐 2020년 본격적으로 청년예술가와 기획자를 위한 실제적인 사업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 시작은 청년문화창작소 공동운영단의 제언에 힘입은 바가 크다. 지역에서 활약하는 다양한 분야의 청년예술가, 활동가, 기획자 4명으로 이루어진 공동운영단은 청년예술가와 기획자를 위한 사업을 제안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청년문화창작소의 본격적인 비상을 알렸다. 청년문화창작소가 ‘시작공간 일부’라는 멋진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이들 덕분이었다. 청년 창작자의 날갯짓을 돕는 공간이면서 비상을 향한 첫 번째 단계인 1부라는 은유가 그 속에 숨 쉬고 있다.
아카이빙을 위한 공간 ‘나침판’ | 청년창작자, 기획자들의 공유공간인 ‘공유판’ |
(사진: 인천문화재단) |
청년문화창작소는 출발을 맞아 크게 세 분야의 사업 영역으로 라인업을 갖추었다. 청년의 감성을 담은 건물(공간)의 유지와 개선을 뜻하는 ‘청년문화창작소 운영’, 청년예술가의 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을 제안하고 실행하는 ‘시범사업’, 청년문화창작소의 기획사업 영역인 ‘활성화 사업’이 그것이다. 이 사업들은 모두 앞서 말한 청년예술가 간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연대의식을 기르는 데 방점이 찍혔다. 이들 사업은 2021년 청년문화창작소 운영의 근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청년문화창작소의 2021년은 크게 보자면 연속성과 심화라는 두 단어로 집약할 수 있을 듯하다. 1기 공동운영단의 제안으로 실행된 시범사업을 ‘역량 강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하는 한편, 그 내용은 새로 선임된 2기 공동운영단의 검토와 협력 아래 한층 깊어져 인천의 청년예술가와 기획자들에게 더욱 피부에 와닿는 내용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청년 창작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워크숍 프로그램인 <워크쉽>, 청년 창작자의 작업 결과물을 아카이빙하는 <항해일지>, 아직은 서툴지만 함께 나누고픈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PT데이 나알람>, 늘 꿈꾸던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어쩌면 기획일지 몰라>는 2020년에 이어 보다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2020년 큰 호평을 받았던 활성화 사업도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있다. 2020년 ‘축제’를 주제로 진행했던 <인천청년별별학교>는 청년 창작자 스스로 기획부터 실행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그야말로 실질적인 기획과 마주할 수 있는 양질의 프로그램이었다. 2021년에도 청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색다르면서도 진지한 주제로 계속될 예정이다.
2020 인천 청년 한 달 레시던시(사진: 인천문화재단) |
같은 인천에 살면서도 도심과 섬 지역의 젊은 창작자와 활동가가 얼마나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까? 그 둘 사이에 연대의식의 발화가 가능할까?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데서 연대의식이 생긴다면 그것은 과연 지속 가능할까? 이런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탄생한 사업이 <인천 청년 한 달 레시던시>였다. 강화도에도 청년의 삶을 고민하며 실천하는 젊은 창작자·기획자가 있었고, 그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스스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 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이 운영하는 민박 공간까지 있었기에 이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격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청년 창작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일주일 동안 강화도에서의 삶을 체험하고 작업의 영감을 얻는 ‘체험형 레지던시’라는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강화도에서 의욕적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는 또래의 청년을 만나 지역과 예술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서로에게 미쳤다. 이어 진행된 ‘정주형 레시던시’는 일주일이 아닌 한 달간 강화도에서 생활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의 우려와 달리 정말이지 알찬 시간으로 채워졌다. 예술가가 지역의 삶과 만나 어떤 에너지가 생기는지를 몸소 보여주었고, 그들 중 몇몇은 아예 강화도로 거처를 옮겨 지속 가능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계획 중이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청년문화창작소가 꿈꾸었던 끈끈한 청년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연대의식의 지속이라는 가치가 조금씩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인천청년문화살롱>이라는 사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청년 창작자끼리의 네트워크 확대와 접점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또 2021년 신설된 ‘융합예술 지원사업’은 청년문화창작소를 창작의 거점으로 삼아 새로운 예술에 도전하는 청년 창작자들의 아지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련하였다.
청년이 스스로의 삶을 두려움 없이 응시하고 굳건하게 이 땅에 발 딛고 설 수 있도록 매개하는 임무를 지닌 곳이 청년문화창작소이며, 그 공간의 존재 이유다. 청년과의 사업은 매 순간 뚜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이 땅의 청년들의 삶처럼 늘 성공할 수도 없다. 그래서 청년문화창작소의 여러 시도는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고, 변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021년의 청년문화창작소는 청년 창작자들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어 함께 뚜벅뚜벅 걸어가는 속 깊은 친구의 모습으로 보이기를 바란다.
박석태(朴奭泰, Park, Seoktae)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부 과장. 서울에서 태어나 10살 때 인천으로 이주, 이후 잠깐의 군복무와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을 제외하고 인천에서 살고 있다. 인천의 근·현대미술사 집필과 미술비평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