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문계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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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앞으로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 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날 예정이다.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교육청에서 만난 시인

문계봉 : 시인

199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장, 인천민예총 상임이사, 인천문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인천광역시교육청 교육감 문화예술교육 정책특보로 일하고 있다.

본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이루어졌음을 밝혀 둔다.

류: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동안 뵙지 못한 사이에 교육청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근황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문: 안녕하세요. 저는 시인이고요. 그동안은 인천민예총과 작가회의, 인천문화재단을 기반으로 인천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다양한 활동과 고민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부터 인천광역시교육청 교육감 문화예술교육 정책특보가 되어 늦깎이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웃음) 물론 작가회의 자문위원과 민예총 이사로서의 회원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류: 교육청과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연결하는 굉장히 멋진 일을 담당하게 되신 것 같군요. 문화예술특보는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요?

문: 사실 교육청에 오게 된 것은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동안 인천에서 해왔던 문화예술활동가로서의 경험과 이러저러한 매체를 통해 개진했던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고민을 공교육 현장과의 매칭을 통해 좀 더 구체화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4년 동안 인천문화재단 이사로 활동할 때도 느낀 것이지만, 재단에서도 정말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잖아요? 여기 교육청에 오니까 이곳 역시도 문화예술교육 관련해서 사업이 참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더라고요. 사업 규모도 대단히 큽니다. 아직 특보로 활동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업무 파악을 하는 단계이긴 하지만, 양쪽 단위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어느 지점에선가 만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접점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게 현재 저의 바람입니다.

류: 듣고 보니 꽤 흥미로운 일이 많겠구나 싶은데요. 현재까지의 느낌을 좀 더 말씀해주시겠어요?

문: 사실 공교육 과정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은 일정한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중등교육 과정에서 ‘입시’라는 요소는 무시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과거 학교에서 진행되는 문화예술교육은 저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기예나 취미’ 위주의 교육이었다고 생각해요. 문화와 예술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인문학적 교육은 부족했던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확실히 달라졌더군요. 전문가 풀도 넓어졌고, 내용 면에서도 다채롭고 충실하더군요. 저는 앞으로 지역의 검증된 예술가와 교육청 예술사업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담당하게 될 거예요. 수십 년 동안 인천에서 활동하면서 관계를 맺어온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많고, 그분들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외람되지만 진짜와 가짜, 즉 옥석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지요.(웃음)

류: 교육과 지역을 연계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왕에 교육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묻고 싶은데요. 최근 언택트 시대의 교육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요. 코로나19가 미래교육에 대한 지향과 속도를 앞당겼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분위기는 어떤가요?

문: 교육청에서도 현재 그 문제를 무척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학습 도구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학생들을 전수조사하여 만에 하나라도 교육 소외가 일어나지 않도록 구체적 지원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 미증유의 바이러스 사태가 너무 갑작스러워 언택트 시대를 겨냥한 교육의 큰 그림은 아직 완성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촘촘한 소프트웨어들이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때에 문화예술 교육 영역도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겠지요. 그동안 자유학기제가 도입되면서 학생들이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는 이전보다는 확실히 많아졌어요. 물론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아낼 것인가는 학교장의 마인드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교육청에서는 주로 큰 그림을 그리거나 행정적인 지원을 고민하고 있지요. 아무래도 제가 교육 전문가는 아니어서 미래 교육의 구체적인 모습을 언급하는 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기존에 이루어졌던 문화예술교육조차 원만하게 진행되기 어려운 조건인 건 사실입니다.

류: 그렇군요. 교육청이라고 하면 교육만을 생각하는데, 사실은 교육에 필요한 행정적인 기능이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교육청에서 일하게 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정시 출퇴근을 어떻게 적응하셨을지도 굉장히 궁금했어요. 사실 선생님께서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문인들이 정시 출퇴근에 익숙한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저는 학교 바깥의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동경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정시 출퇴근이라는 새로운 업무환경에 어떻게 적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교육청으로 오시면서 일상에서 달라진 지점은 어떤 것일까요?

문: 아직은 초반이어서 그런지 아주 즐거워요. 정시 출퇴근이라고 하면 시간이 굉장히 팍팍할 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오히려 여유가 생겼어요. 이전에는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어떤 면에서는 종일 일에 묶여 있었거든요. 늦은 밤이든 새벽이든 뭔가 해야할 일이 있으면 해야 했고요. 그런데 이제는 저 스스로 모든 일을 9시에서 6시 사이에 해치우려고 해요. (웃음)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 시간 동안에는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전에는 하루의 시작이 일정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8~9시부터는 책상 앞에 앉게 되니까 하루가 길어진 셈이죠. 또 업무시간 내에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하게 되니 오히려 저녁이 보장되는 삶이 가능해지더라고요. 일이 마무리가 덜 되었어도 내일 또 출근해서 열심히 하면 되니까, 퇴근 후에는 내 시간을 좀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현재로서는 그래서 만족하고 있어요.

류: 의외의 발견이네요. 교육청에서 인터뷰를 하니까 선생님의 학창 시절은 또 어떠셨을지 궁금해지네요. 아무래도 학교와 관련이 있는 곳이니까요. 저는 특별할 것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선생님께서는 좀 재미있는 경험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학창 시절은 어떠셨나요?

문: 학생은 사실 두 부류로 나뉘잖아요. 학교 안에서 성실하게 공부하는 학생과 주로 학교 바깥에서 돌아다니는 학생.

류: 음.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웠다는 말씀이신 것 같군요.

문: 네, 고등학생 시절은 확실하게 후자였어요. (웃음) 물론 그때만 해도 일탈의 수준이 요즘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어른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학생은 아니었을 거예요. 아무튼 학교보다는 학교 밖이 더 친숙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학교 밖에서 경험한 것들이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제 모교 주변의 풍광이 무척 아름다웠거든요. 여학교도 부채꼴 모양으로 포진해 있었고. (웃음) 하지만 책은 많이 읽었어요. 누나들의 영향도 있었지만, 당시 나온 베스트셀러는 물론 고전, 한국 단편 등 가리지 않고 읽어댔으니까요. 학교의 풍광과 학교 밖의 경험 그리고 책에서 만난 내용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내 문학의 자양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렇게 일탈의 시대를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웃음)

류: 근황에 대해서 여러 말씀을 들었는데요. 이제 조금 더 인터뷰의 본래 목적을 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인께 인터뷰를 왔으면서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지난 2017년에 출판한 『너무 늦은 연서』는 무려 등단 22년 만에 낸 시집이기도 했죠. 시집에 대한 외적인 평가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도 첫 번째 시집이라는 의미가 크셨을 것 같아요. 이 시집에 대한 선생님을 생각을 듣고 싶어요.

문: 사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시집은 아닙니다. 대개 사람들이 시인들의 첫 시집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데, 일반적으로 시인들이 보통은 5년 정도 주기로 새로운 시집을 내면서 자신의 시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되거든요. 그런데 저는 22년의 시 세계를 한 권에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사실 현재의 정체성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했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나를 빼놓을 수도 없었고요. 외부적으로는 호평을 받았고, 최원식 선생님께도 좋은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남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장점도 있었지요. 아무래도 등단한 지가 22년이지만, 첫 시집을 비교적 최근에 낸 시인이니까 신인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제 나이면 중견 시인인 셈인데, 저는 아직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이 더 크거든요. 지금 이 나이에 가슴이 뛴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또, 다른 중견 시인들을 반면교사 삼아서 스스로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요.
또 시를 쓰는 환경에도 변화가 있었어요. 생각해 보면 과거에는 쓰고 싶은 시보다는 써야만 하는 시를 썼던 적이 많았어요. 그때는 문학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데에 더 집중하면서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사회와 현실의 문제는 중요하지만, 이제는 저 자신과 글에 대해서 더 집중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 쓰고 있는 시와 만나는 시들도 과거와는 달라진 지점이 많더라고요. 그런 설렘으로 계속 시를 써나가야죠.

류: 그렇다면 최근 읽으신 시 중에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으실까요? 저 역시도 궁금하고요.

문: 제가 평론가처럼 나오는 시집을 다 읽고 그 경향을 좇는 사람은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2020년의 시가 어떻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고요. 그저 제가 읽은 시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은 과거에는 안 보이던 시들도 이제는 눈에 들어오고 읽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어요. 확실히 접하게 되는 시의 저변이 넓어진 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읽었던 시집 중에는 이소호 시인의 『캣콜링』이 인상적이었어요. 장은영, 허수경, 임승유 시인도 좋았고요. 젊은 시인 중에서는 박준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사봤어요. 그냥 그랬어요. 그리고 『혼자가 혼자에게』로 유명한 이병률 시인도 좋아합니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와 『바다는 잘 있습니다』 같은 시집도 좋았고요. 소설도 많이 보는 편인데, 황정은, 김금희 작가의 최근작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류: 제가 아직 못 읽은 시집은 독서 목록에 담아두어야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최근 시의 경향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 지금은 완전히 독자 입장에서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요. 한동안 젊은 시인의 시들이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채 언어의 변형이나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해서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거나 현실을 냉소하거나 암호 같은 시를 써왔다고 (지극히 주관적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한 작품들도 분명 시의 외연을 확장해 주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또 그게 전부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옛날 형식으로 되돌아가자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확실히 역사와 실천이 다시 화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 코로나19도 그렇고, 지금 우리의 현실이 일정한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강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류: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시대에 어떤 시를 추구하고 싶으신가요?

문: 특별히 이거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없지만 저는 일단 50대의 삶이 겪고 느끼는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낼 생각입니다. 제 나이가 되면 사실 주변 친구들이 다 고아예요. 부모님이 다 떠나셨으니까요. 그렇게 고독한 내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가끔은 소년 같은 내가 있어요. 그러한 다양한 모습을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시에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겠죠. 또 삶에서도 지향점은 있어요. 바로 ‘꼰대 되지 않기’라고 할 수 있지요. 적어도 ‘라떼주의자’는 되지 말자. 이런 다짐을 해봅니다.

류: 정신없이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인터뷰가 끝날 시간이 다가왔네요. 시의 세계에서 이제 문화예술이라는 현실의 문제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난 4년간 인천문화재단의 이사로 재직하셨는데, 재단과의 인연은 그보다 더 오래되셨죠? 그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면 어떨까요?

문: 사실 저는 야전에서 문화예술 운동을 했던 사람이지요. 관에서 문화예술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 재단이라는 것으로 가시화된 것이고요. 그렇다 보니 재단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여러 모로 지켜보고 견제하기도 하고 또 자연스럽게 협업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재단이 하는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은 아무래도 재단 이사로 들어가면서부터였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재단이었잖아요. (웃음) 그래서 일단 ‘복마전’으로 들어가서 싸우든 개선하든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이사 공모에 응했던 것이고요. 처음 2년은 인천 문화 현장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배우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지나니까 비로소 인천문화 판에 대한 그림이 좀 그려지더군요. 그때부터 이사의 역할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류: 그렇다면 이사로 재직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슈는 아무래도 혁신위에 대한 것이었겠군요?

문: 그렇지요. 사실 올해가 이제 진짜 혁신위 원년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사실 모든 혁신이라는 것이 단 한 번으로 완벽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혁신이라는 것은 또 다른 혁신으로 극복되어야 하고요.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혁신이 재단을 위해 최선이었나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야 검증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혁신안에서 마련했던 기본적인 생각이나 의도 이런 것에 대해서는 계속 긍정하는 마음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죠. 현장에 적용되어 시스템으로 안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요. 하지만 맨 처음 함께 생각했던 고민과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겠죠. 혁신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닐 테니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변화해 가는 인천문화재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류: 혁신위 원년을 맞이한 재단에 대한 기대와 당부는, 앞으로도 날카로운 비판과 든든한 지지로 재단을 함께 지켜봐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류수연 문학평론가,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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