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합창단 ‘예그리나’ 김상구 지휘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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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019 동아시아 생활문화축제에 합창단 연합 콜라보레이션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난히 눈에 띄는 합창단이 있었는데 바로 발달장애인 합창단 예그리나입니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하모니를 만들어가며 무대에 오르기 위해 애쓴 지휘자의 지도 방식과 그들의 현재와 미래가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햇살 드는 카페 한구석에서 김상구 지휘자를 만났습니다.

축제 이후에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셨나요?
매해 진행하는 전국 장애인 합창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연습에 매진 중입니다. 올해는 11월 25일 부산에서 개최해서 일박 이일로 다녀올 예정입니다. 난타북 팀도 있는데 같이 움직이려고 해요.

‘예그리나 합창단’이 만들어진 이야기 좀 해주세요.
2003년도에 처음 창단했습니다. 처음에는 강좌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는데 나중에는 강사 섭외가 어려워서 초청공연 있을 때만 모이다가 2017년 9월에 제가 들어오면서 정기연습을 진행하는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지휘자님은 어떤 계기로 전임 지휘자가 되셨나요?
저는 성악을 전공했어요. 사회복지 분야는 따로 공부했는데 협회에서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다가 인천시에서 주관하는 문화행사에 합창단 초청을 받았어요. 평소 나에게 있는 달란트를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천에 있는 장애인 합창단을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인천에도 합창단 지도자가 없어서 제가 돕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죠.

처음 오셨을 때와 지금이랑 합창단원들의 변화는 있나요?
처음에는 친구들이 20명 이내였어요. 합창단이라고 하기에는 인원이 너무 적어서 협회 산하시설(자립지원센터 등)에 자조모임식으로 해서 현재 장애인 친구들이 27~28명쯤 되고 비장애인 어머니들까지 모두 합하면 40명 정도 됩니다.

합창단 활동을 원하는 친구들의 연령 제한이나 조건이 있나요?
없습니다. 저희 친구들은 오히려 장애가 좀 심한 편이긴 합니다. 기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가능해요. 지금 제일 어린 친구는 고등학교 3학년이고 나머지는 성인으로 나이가 가장 많은 친구는 서른여덟 살입니다.

합창단의 활동량은 어느 정도예요?
작년에는 장애인 친구들만 합창했습니다. 그런데 활동량이 많아지니 실력 있는 공연을 원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비장애인이 재능기부로 함께 하고 있는데, 많지는 않고 현재 열 분 정도가 있으십니다. 감사한 마음에 제가 음료수도 챙겨드리고 여러모로 마음을 표현하니 지휘자가 이렇게까지 애쓰는 게 안쓰럽다며 지속적으로 함께 해주고 계세요.(하하)
요즘엔 저희가 활동도 많이 하고 좀 알려져서 그런지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은 어떤 마음에서 오는 걸까요?
어딘가에서 음악 활동을 하셨던 분들이 많이 오세요. 우리 친구들은 20대, 30대이지만 지적 수준은 초등학교, 중학교 수준입니다. 연습 시간은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인데 편안하고 친밀한 분위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45분 정도는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장난치고 그래요. 이때 친구들이 그분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자기소개도 하고 얘기도 하죠.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과 친해지기도 하고 보람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예그리나 합창단은 기관이나 단체에 속해 있나요?
인천지적발달장애인 복지협회에서 운영하는 합창단입니다만, 따로 예술단 단체 등록을 해서 공모사업도 신청하고 운영도 하고 있어요. 이 예술단에는 브라스 앙상블, 중창단, 난타, 합창단 그리고 팝 밴드도 있습니다.

합창단 활동을 하시면서 힘든 적이 있었나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긴 합니다. 게다가 일과를 마치고 저녁 6시 이후에 연습을 하므로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날씨 영향도 받는 편인데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은 날에 아이들도 힘들어합니다. 이런 날은 연습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친구들과 레크리에이션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그리고 합창단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처음에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고요.

합창단의 목표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공모사업을 신청할 때 일시적으로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 친구들을 전문예술가로 훈련해서 자립 생활을 할 수 있게 기반을 만든다는 목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죠. 공모사업의 심사위원분들은 사실 부정적이에요.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인정하지만, 이 친구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회의적이더라고요. 발표회 정도의 수준일 거라고 단정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 친구들이 갖는 자긍심과 자부심은 프로 이상인데도 말이죠.

공모사업을 통해 꼭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많으신 것 같아요. 조금 더 이야기해주세요.
공모사업을 통해 복지관이나 강당 등을 대관해서 발표회 한 번 하고 끝내는 사업은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순회공연 공모사업을 신청할 때 출연료 지급 명단에 친구들 이름 한 명 한 명 모두 넣습니다. 심사 때 이것에 대해 부정적인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이것은 발표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술가로 훈련하기 위한 레슨이고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대답하죠. 결과는 예산 축소로 돌아오지만, 금액이 적더라도 아이들이 예술 활동으로 출연료를 받았다는 경험을 얻게 되는 건 큰 보람이 됩니다. 특히 이 부분은 기업과의 매칭도 고민하고 있어요. 기업에서도 장애인 고용기준과 관련해 서로 필요한 부분이 잘 맞으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목표는 친구들이 예술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이에요. 비장애인이 하는 것을 장애인이 못한다는 생각은 편견입니다. 장애인도 음대 졸업하고 해외 활동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어요.

예그리나 합창단에 들어오고 싶거나 관심 있는 분들은 어떻게 가입할 수 있을까요?
일단, 발달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어야 하고, 발달장애,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모두 지원이 가능합니다. 연락처는 협회로 하시면 돼요. 연습 장소는 사회복지회관(간석동 소재) 대강당에서 매주 수요일, 목요일 저녁 6시부터 7시 반까지 하고 있습니다.

예그리나 합창단만의 특징이나 자랑거리를 말씀해주세요.
보통 제조업 등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직장에서 3개월 이상 견디지 못해요. 스스로가 비장애인과 함께 있을 때 상대방의 모든 말과 행동을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거죠. 사소한 것도 비교당하고 차별받는다고 여겨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때문에 예그리나 합창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노래하고 어울리는 것 자체가 나도 할 수 있고 해냈다는 자신감을 주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하는 합창단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없애줍니다.

지휘자로서 활동하는 동안 가장 기억나는 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친구들이 무척 밝아졌어요. 소극적인 친구들도 적극적으로 바뀌고. 처음 오디션 할 때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울면서 부르던 소심한 친구가 나중에는 웃으며 아주 좋아하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전 키움과 SK 2차전 때 경기장에서 애국가 제창을 저희가 했는데 이때도 친구들이 너무너무 좋아했죠. 전혀 안 떨려 했어요. 다만 집중을 못 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말을 걸면서 저만 보게 했죠. 3일간 진행했던 합창제에도 나갔는데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장애인 예술의 가치도 비장애인의 예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지휘자님으로부터 또 다른 고민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합창단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바로 단원 모집에 어려움을 느끼고 계셨죠. 협조 공문을 정말 많이 보냈지만, 실제로 여러 기관에서는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선뜻 보내주기까지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어렵게 신입 단원이 들어오면 훈련된 기존 친구들과 잘 지낼 때까지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도 필요하다고도 하네요. 인터뷰하던 날 따스한 햇살을 받던 지휘자님의 환한 모습처럼 합창단 예그리나 지휘자님의 노력과 계획이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글 · 인터뷰 / 생활문화동아리 일일 시민기자 허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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