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일본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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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인천 중구청 앞 인도에 있던 일본풍 조형물이 철거됐습니다. 일본 복고양이(마네키네코)와 인력거 동상이 그것입니다. 중구는 2014년 개항장 거리를 찾는 관광객이 사진 찍는 장소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이 조형물들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개항장 일대를 지나치게 일본풍으로 치장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노역하는 조선 청년과 인력거를 관광 기념용으로 사용하는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이 일대는 1883년 제물포항 개항 뒤 일본 조계지가 들어섰던 곳입니다. 중구는 지난 2007년 4억 3천여만 원을 들여 구청사와 주변 일대를 개항장 거리로 꾸몄습니다. 100년 넘은 오래된 건물이 남아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구청 정문 앞 건물 14곳을 일본풍으로 리모델링해 일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항장은 서구열강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패권 쟁탈장이었습니다. 1905년 이후의 인천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교두보이자 수탈의 관문이기도 했고요. 당시 인천은 ‘조선 안의 작은 일본’, ‘해외의 소일본(小日本)’으로까지 불리기도 했습니다. 중구의 일본 조계지는 일본이 조선의 물자를 침탈했던 대표적인 장소였지만 중구가 관광사업에 급급할 뿐 역사를 알리기 위한 노력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인력거꾼과 고양이상 조형물
출처:조선일보

지난 8월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즐거운 사진 찍기용 소품으로 강제노역 중인 조선 청년의 인력거 대신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도록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영사관에서 퇴근해 나오는 왜의 관리를 기다려 태우고, 용동 권번으로 달려 나갈듯한 태세입니다. 이마에 헝겊을 질끈 동여 맨 젊은 인력거꾼이 걸친 왜색 윗옷에는 ‘인간의 힘(닌겐노치카라)’라는 히라가나가 적혀 있습니다. 버선발 대신에 왜의 전통 신발류인 ‘타비’를 신고 있습니다. (중략) 인력거는 하층 노동을 표징합니다. 이 하층 노동에 종사해야 한 자는 식민지 조선반도에 강점자로 쇄도해 온 일인들이 아닙니다. 조선청년입니다.”

인력거는 1894년(고종 31년) 일본인 하나야마(花山帳場)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총 열 대가 서울 시내 및 서울과 인천을 오갔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일본인이 인력거를 끌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나라 하층 계급 청장년들이 인력거의 손잡이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죠.

“비영리시민단체 ‘NPO 주민참여’는 인천 중구청에 공식적으로 요청합니다.

왜의 제국주의적 가치가 몰입된 옛 왜 영사관 앞에 ‘강제로’ 설치한 인력거를 철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는 역사적 가치를 지켜내야 할 장소입니다. 일제가 겁박하여 열린 그 바닷길 끝에는 왜국의 섬이 맞닿아 있는 특별한 곳입니다. 2014년에 유엔시민권리위원회는 왜국군에 의한 ‘강제 성 노예’를 인정하고 (사과토록) 권고하였습니다. 충격적입니다.

인천 중구청은, 유엔시민권리위원회가 ‘강제 성 노예’를 인정하고 권고한 그 2014년 6월 14일에 ‘수탈과 도륙의 옛 감정을 되살려내는 왜 영사관’ 앞에 조선청년을 무릎 꿇게 하였습니다(인력거를 쥔 청년은 한쪽 무릎을 지면에 꿇고 있습니다). 이 인력거 동상을 보며 굴욕적인 감정을 갖는 건 이상한 지나친 ‘국뽕’일까요?”

2019년 9월 15일 20시 현재 363명이 동의했다
출처: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올해 중구는 백범 김구 역사거리 조성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백범을 통해 일제침탈의 역사를 인천 개항장에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감리서를 탈옥해 서울로 피신했던 백범의 발자취를 찾아 10여 명의 사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이와 함께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한 개항장 일대의 독립운동 콘텐츠도 중구의 관심거리입니다. 개항장을 단순한 관광자원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바뀌고 있는 겁니다.

한국의 문화유산 가운데 일제강점기나 냉전시대와 관련된 근대문화유산은 첨예한 논란거리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유산과 유물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관점에 선 사람들은 문화재 지정 해제나 철거를 주장합니다. 반면 아픈 과거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보존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은 전자를 “일제의 식민통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유산이나 유물까지 수탈의 잔재나 치욕스러운 과거로 치부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거나 패배주의적 역사의식의 소산이다. 이런 논리라면 식민지 근대를 경과하면서 형성된 일체의 문화, 그 시대를 겪으며 형성된 주체인 우리의 정신까지 모두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후자의 보존론도 일면적이기는 마찬가지라고 강조하면서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은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등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나 배상을 하고 있지 않다.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한일간의 갈등도 깊다. 막연한 향수나 과거지향적 동경으로 역사 문화 자원을 활용하다가는 식민지배와 침탈의 역사를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는 식민사관으로 기울기 십상”이라고 덧붙입니다.

개항을 기점으로 근대가 시작되었지만, 그때부터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개항장에서 보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존된 유산에서 되새겨야 할 역사적 교훈이 무엇인지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하네요.

조형물 철거 후의 모습
출처:인천in

중구는 조형물을 당분간 창고에 보관할 예정입니다. 김재익 부구청장은 “아직 어떻게 처리할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설치했고(인력거와 고양이 각각 1900만원과 800만원), 그동안 관광객에게 인기를 끈 데다 반일 여론이 잦아들면 재설치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일부 상인은 철거에 반발하면서 “중국 분위기가 물씬 나는 차이나타운이나 일본풍의 이곳 개항장 거리나 주목적은 관광객 유치 아니냐”며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되는데 왜 철거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앞서 인천 중구는 역사학자 4명에게 조형물의 철거와 유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각각 2:2로 동일한 의견을 주었다고 합니다.

출처:시사저널

글 / 이재은 (뉴스큐레이션)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경인칼럼]근대문화유산과 식민잔재의 딜레마
경인일보, 2019.9.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썰물밀물] 김 첨지의 인력거
인천일보, 2019.9.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중구청 앞 인력거 동상 대신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경기신문, 2019.8.2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인천선 일본풍 조형물 철거… 경기도는 ‘전범 기업 스티커’ 통과
조선일보, 2019.8.3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사설]일본 조형물 철거 계기로 개항장 역사 되돌아 봐야
경인일보, 2019.9.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6. [단독]인력거꾼‧복고양이 조형물, ‘짬짜미 계약’ 의혹
시사저널, 2019.9.4.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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