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문장 – 한국근대문학관 ‘책 듣는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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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소리는 더욱 깊어진다. 빗줄기가 소란을 잠재우기 때문일까. 아침부터 내린 비는 ‘책 듣는 수요일’을 향해 가는 동안에도 그치지 않았다. 우산 속 발걸음이 번거로워 외출을 자제한 이도 있었으리라. 조촐한, 열 명 남짓의 청자들은 ‘박사’(‘책 듣는 수요일’ 진행자)를 감싸는 모양새로 반원을 만들었다.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은 금세 따뜻한 반달이 되었다.

다섯 번에 걸쳐 문학작품을 듣는 시간. 시작과 끝의 한가운데, 8월의 주제는 ‘근대를 깨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박사 씨는 김명순 소설 ‘나는 사랑한다’와 강신재의 ‘안개’, 나혜석의 시 ‘아껴 무엇하리 이 청춘을’를 들려줬다. 나는 박사의 목소리를 타고 근대 여행을 떠났다.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다. 성우가 아니다. 속도와 음의 고저를 계산하지 않은 데서 온 낭독에는 담백함이 묻어있었다. 라디오 문학관 등에서 들었던 성우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녹음파일이 아닌 같은 시공간에서의 라이브 청취는 지금, 여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다. 슬쩍 돌아보니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박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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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도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대개 라디오에서 나왔다. 라디오 한 대를 온 동네가 공유하며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에 빠져들었다. 동시성을 되살린 ‘책 듣는 수요일’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건드린다. 듣지 않아도 되고(읽으면 되고), 함께가 아니어도 되는데(혼자 들으면 되고), 그럼에도 굳이 집을 나선 것은 장작으로 때는 군불 같은 그리움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푹푹’에서 ‘쌀쌀’로 예고도 없이 ‘페이스 오프’한 계절 탓에 더운 아랫목 공기와 선한 입김을 만나고 싶었다.

왜 1920~50년대 작품이었을까. 왜 ‘나는 사랑한다’와 ‘안개’였을까. 소설 쓰는 사람이라는 소개가 무색하게(나는 소설가다) 두 작품 다 생소했다. “연애소설인데 큰 불로 끝나다니 뭔가 교훈적이죠?”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많이 아실 것 같아서 ‘안개’를 골랐어요.” 각각 30여분씩 쉬지 않고 정주행한 두 개의 단편소설에 대한 감상을 나는 좀처럼 말할 수 없다. 20세기의 문장은 현대의 문장과는 달라서 나는 스토리보다 소리적 재미에 더 끌렸다. 딴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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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점을 말해야겠다. 책을 들려주기 전에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거나 줄거리를 알려주었더라면 ‘음성’이 아닌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그 작품을 큐레이션했는지, 어떤 부분에 특히 끌렸는지 사적인 정보를 나눴더라면 앉은 자리에서 낭독자를 달처럼 우러러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제 심정 같아서 골라봤는데 여러분도 나해석의 청춘에 공감하셨나요?” 듣는 사람의 속도가 아니라 들려주는 사람의 속도로 한 번 들은 시를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멈춤이 불가능한 자리에서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사색을 위한 일시정지’를 외쳤다. 귀 막힌 바보, 바보였다.

낭독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은 잠자기 전에 듣는 ‘수면제’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다. ‘서재에 있는 책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 읽기’가 콘셉트라고 하지만 들어보면 청자의 수준을 낮게 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쉬운 문장으로 적힌 텍스트를 짚어낸다는 뜻이다. 작가는 글의 앞뒤 맥락을 설명하고 전체가 아닌 부분을 읽는다. 인물, 사건, 배경이 담긴 한 편의 글보다 일부를 발췌하는 편이 청자를 염두에 둔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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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성격 문제다. 나라면 사람들을 앉혀 놓고 장시간 책 읽어주는 일은 못할 것 같다. 저기 있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거기 있는 사람의 표정도 보지 못하고, 내 코를 책에 빠트린 채 낭독만 한다고? 나는 확인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세요?” “문장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이 유려한 시어를 좀 보세요.” “달콤한 행간의 여백을 음미하셨나요?” 관객과의 대화를 유도한답시고 촐랑거릴 게 틀림없다. 오늘 참석한 사람들은 박수도 크게 치지 않았다. 진지한 청자로서 낭독자의 호흡과 리듬을 가만가만 배려했다.

‘박사’가 사랑한 다음 문장은 ‘앞서나간, 너무나 앞서나간’ 사람들(이상과 박태원)의 것이다. 그들을 잘 안다고 단정짓지 말라. ‘책 듣는 수요일’에 가면 낯설어질 것이고, 소리의 신선함에 젖어들 것이다. 그 경험만큼은, 한 번쯤 해볼 만하다.

이재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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