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인천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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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시멘트벽에 그림만 그렸을 뿐인데 범죄율이 줄어들고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띱니다.

“풋풋한 청춘의 ‘생얼’은 계속될 수 없다. 파운데이션, 파우더, 아이섀도, 립스틱……. 구불구불한 골목에 색조 화장을 한 벽화가 길게 이어진다. 어쩔 수 없이 마을은 늙는다. 잡티로 거뭇해진 낡은 담벼락에 붓 터치를 한다. 다크서클 같은 어두운 골목에 색이 들어오면 마을 곳곳에 빛이 든다.”

유동현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의 말입니다.

인천에도 저마다 특징을 가진 벽화마을이 있습니다. 송월동 동화마을, 배다리 헌책방거리, 열우물 벽화마을, 차이나타운 삼국지 벽화거리, 노적산 호미마을 등이 대표적이죠.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
출처 : 아시아투데이
  중구 차이나타운 삼국지 벽화거리
출처 : 연합뉴스
 
동구 배다리 헌책방거리
출처 : 조선일보
  동구 창영동
출처 : Daum카페(homihomicafe)

호미마을에는 낡은 골목과 지저분한 빈터를 호미질해서 생기를 넣어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호미질’은 벽화 그리기로 시작했죠. 봉사자와 주민의 손길이 만나 퍼즐 맞추듯 담장을 채웠습니다. 열우물은 마을에 열 개의 우물이 있어 열우물(十井), 또는 십정리라고 하기도 하고 추위에도 얼지 않는 큰 대동 우물이 있어 열(熱)우물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열우물 마을의 벽화 역사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가 닥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5년부터 십정동에 거주하던 이진우 ‘거리의 미술’ 대표가 동네를 환하게 만들기 위해서 시작했죠. 2002년 열우물 프로젝트 추진위원회가 구성된 뒤 수차례 중단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벽화 그리기는 최근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우물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합니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2016), SBS 드라마 ‘가면’(2015) 등에 모습을 보였죠. 하루아침에 인기 여행지가 돼 주말이면 나들이객과 사진 동호회 회원들이 몰려왔습니다. ‘한류 열풍’에 중국인 관광객도 모습을 보였고요.

 
평구 십정동 열우물 벽화마을
출처 : 한국일보
  오는 6월 18일까지 동구 만석동 우리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이진우 작가 연작
출처 : 경인일보

문학산 끝자락에 위치한 호미마을은 1950년대에 한국전쟁 피난민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1960년대 동양제철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활성화됐습니다. 인천 화학공업의 중심지였고 수인선 협궤열차의 종착역이었던 송도역을 품고 있었죠. 덕분에 마을은 언제나 왁자지껄했습니다. 하지만 화학공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공해와 소음으로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고, 동양제철화학 공장이 군산으로 이전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중 텔레비전에서 ‘게릴라 가드닝’이란 걸 접하게 되었어요. 낙후된 동네를 찾아다니며 밤새 쓰레기를 치우고 화단을 만들더라고요. 직접 실천해보니 놀랍게도 화단을 만든 후 쓰레기 불법 투기가 줄었어요. 골목이 깨끗해지고, 화단에 예쁜 꽃들이 피니까 곰팡이로 뒤덮여 시커메진 담장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서 벽을 흰색으로 칠했는데 너무 밋밋한 거예요. 비영리봉사단체인 네오맨벽화사업단과 함께 벽화를 그렸죠. 예전에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마을에 도깨비가 나온다고 아이들의 출입을 막기도 했는데 벽화가 생긴 이후에는 철마다 아이들 손 붙잡고 산책 오기도 해요.”
노적산 호미마을 대표로 활동하는 유현자 씨의 이야기입니다.

 

미추홀구 노적산 호미마을
출처 : 미디어인천신문

벽화 사업이 언제나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촬영 소품으로 쓴다고 화분과 의자를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거나 허락 없이 지붕에 올라가 기왓장을 깨뜨리기도 합니다. 스태프라고 소개하기에 커피를 외상으로 주었는데 알고 보니 도둑이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열우물 마을의 주민은 촬영 협조 차원으로 받은 적은 돈 때문에 이웃끼리 원수가 된 경우를 고백하기도 합니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33) 씨가 구속되면서 그의 이름을 딴 ‘박유천 벚꽃길’이 철거됐습니다. 지난 4월 말, 계양봉사단은 계양구 서부천에 조성된 280m 길이의 박유천 벚꽃길 벽화, 안내판, 명패 등을 모두 제거했습니다. ‘박유천 보고 싶다’ 등의 글과 그의 모습을 담은 벽화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인터뷰 내용, 드라마 대사, SNS의 언급을 담은 34개 명패도 모두 없앴습니다. 계양봉사단은 2013년에 박씨 팬클럽 ‘블레싱유천’에서 550만원을 기부받아 벚꽃길을 조성했었죠.

출처:연합뉴스

깜짝 놀랄 만한 소식도 있습니다.
인천 내항의 사일로 시설이 2019년 독일 ‘아이에프 디자인 어워드(iF Design Award)’에서 본상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아름다운 공장 프로젝트’ 본상 수상에 이어 2년 연속 상을 받은 겁니다. 독일 아이에프(iF) 디자인 어워드는 미국의 IDEA, 독일의 REDDOT과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데, 올해는 52개국에서 6400여 개의 출품작을 제출해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사일로 슈퍼그래픽은 1979년 인천 중구 월미도에 건립된 곡물 저장고(사일로·Silo)를 도시 랜드마크로 탈바꿈하고자 추진된 사업입니다. 시와 인천항만공사는 지난해 1월 총예산 5억5000여만 원을 투입해 곡물 저장고에 높이 48m, 길이 168m, 폭 31.5m의 크기의 초대형 벽화를 완성했습니다. 벽화 전체 도색 면적은 2만 5000㎡로 축구장 4배 규모이고, 벽화 제작에 무려 86만 5400리터의 페인트를 사용했다고 하네요. 지난해 11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는데 이전 기록인 미국 콜로라도 푸에블로 제방 프로젝트(1만 6554㎡)보다 8446㎡ 정도(1.4배) 더 크다고 전해집니다.

사일로 디자인은 한 소년이 물과 밀을 가지고 저장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순수한 유년 시절을 지나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계절의 흐름으로 표현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북 커버에 그리고 성장 과정을 의미하는 문구가 16권의 책 제목으로 디자인됐습니다. 100일 정도의 제작 기간이 소요됐다고 하네요.

 

인천 내항 사일로
출처 : 위키트리

글·이미지 / 이재은

*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인천항 곡물저장고 벽화, 2년 연속 ‘iF 디자인’ 본상 수상
인천투데이, 2019.3.18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2. 인천항 곡물 저장고 벽화, 미국 제치고 세계 최대 벽화 기네스북에 등재
매일경제, 2018.12.1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3. “예쁜 골목벽화…아이들과 산책하는 동네 됐어요”
인천시 인터넷신문I-View, 2019.5.20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4. “응팔 촬영지라 부럽다고?…동물원 원숭이 된 기분”
한국일보, 2015.12.1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5. [웹툰·갤러리] 골목 벽화 색즉시공
인천시 인터넷신문I-View, 2019.5.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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