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적 사랑(Planetary Love)’을 위한 실험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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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예술정거장 프로젝트 리뷰-

2018 예술정거장 프로젝트 ‘언더그라운드 온 더 그라운드(Underground On the ground)’는 지하철 역사에 예술작품이 전시되는 일종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공공미술(public art)’이란 예술작품이 화이트 큐브의 전시장을 벗어나 공공의 장소에 놓이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1967년 영국의 미술행정가 존 윌렛(John Willett)의 저서 『도시 속의 미술 Art in a City』에서 처음 사용된 개념이다. 공공미술이 처음 시행된 초기에는 기념비적 조각 작품이 야외에 놓였고 이후에는 도시계획에서 예술이 작품이 위치하는 장소를 고려한 까닭에 ‘장소 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라는 특징이 있다. 최근에는 커뮤니티아트(community art)처럼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소통하며 완성하는 ‘뉴 장르 퍼블릭 아트(new genre public art)’의 형태로 진화해 왔다. ‘언더그라운드 온 더 그라운드(Underground On the ground)’는 이러한 공공미술의 변화과정 가운데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모습으로 펼쳐 보이며, 미술관의 전시가 공공의 공간에서 선보이는 다채로운 실험을 시도한다.

최은동, 아톰, 120×70×240cm, F.R.P, 2011

혼종성의 공간 연구와 다층적인 서사들
이번 프로젝트에는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 미국, 프랑스 출신 29팀(30여 명)의 30여 작품이 선보인다. 기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인천이라는 지역성과 인천시청역사의 특성을 자세히 연구하며 지하철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주목해, 평면, 조각, 설치, 미디어 아트, 아카이브 전시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구성했다. 전시 기간은 2018년 12월 13일부터 내년 10월 3일까지인데, 언사이트(Unsite)를 비롯한 4개 팀의 작품이 인천시청역에 영구적으로 설치되어 시민들에게 일상에서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언더그라운드 온 더 그라운드(Underground On the ground)’는 총 다섯 개의 소주제를 구성하며 현대 사회와 인천이 지닌 ‘혼종성(hybridity)’의 특성을 담아내었다. 공적 공간에서 만나는 현대미술 전시라는 의미로 ‘언더그라운드 아트 뮤지엄(Underground Art Museum)’과 한국 현대미술에서 실험예술을 선도한 원로들의 자료를 아카이빙 형태로 전시하는 ‘언더그라운드 필름타임즈(Underground Film Times)’, 도시의 패러다임 변화로 인해 지하 공간에 대한 잠재력을 살리고 예술과 일상이 만나 친숙한 공간을 조성하는 ‘아트 로드 언더그라운드(Art Road Underground)’, 지하 공간의 새로운 탈바꿈을 통해 정서적 환기를 제공하는 ‘언더그라운드 어메니티(Underground Amenity)’, 지하철이라는 장소 특정성과 어우러지는 ‘언더그라운드 온 더 그라운드(Underground On the ground)’가 그것이다. 이 다섯 개의 개념 안에 녹아든 작품들은 각각의 고유한 다름(alterity)과 차이를 수용하면서 함께 어우러진다. 동시에 식물의 뿌리, 혹은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지하철노선같이 개별 작품들은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다층적인 서사를 펼쳐낸다.

이병찬, 소비생태계, 600×450 ×450cm, 에어모터, ledrgb, led, 필름, 비닐, 광섬유, 미러볼 등, 2018

예술가들의 예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즈(Felix Gonzalez Torres)
프로젝트 안으로 들어가 개별 작품들을 살펴보자. 2018 예술정거장 프로젝트에는 다양한 작품구성으로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즈의(Felix Gonzalez Torres, 1957-1996) 참여다. 40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즈는 쿠바 출신의 난민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성 소수자로 살면서, 혐오와 차별의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예술적 정체성을 확보해 많은 울림을 전했다. 그는 만남, 이별, 삶과 죽음 등을 주제로 한 개념미술작품을 선보이며, 사후에도 많은 현대미술작가에게 창작의 영감으로 회자되고 있다. 자신은 “죽음 이후에도 활동할 것”이라는 자조적 예언처럼 그의 작품은 사후에도 수차례의 전시와 다양한 프로젝트로 여전히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 출품된 토레즈의 <무제(The New Plane), 1991>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으로 인천시청역을 비롯해 총 6개의 공간(인천시청역, 간석역, 인천예술회관역, 인천종합버스터미널역, 원인재역, 인천아트플랫폼)에 설치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주류든 주변부든 모든 존재는 평등하며,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즈, 무제(새로운 계획), 가변설치, 빌보드, 1991 인천아트플랫폼

한국 실험예술의 재조명
‘언더그라운드 필름 타임즈(Underground Film Times)’는 기획팀에서 준비한 섹션이다. 지하철 역사 한편에 6개의 전시 부스를 설치하고, 한국 현대미술에서 실험예술을 이끈 6명의 원로작가 김구림,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성능경, 윤진섭의 자료를 아카이빙 형태로 전시했다. 김구림은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로서 초창기 행위예술의 도입기에 가장 중요한 활동을 한 작가로 평가되며, 이강소는 대구 현대미술의 발전을 주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해오면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업을 펼쳤다. 이승택은 물, 불, 바람, 연기 등 비미술적인 재료를 사용해 현대조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기존 예술에 대한 반개념적 정신과 새로운 도전으로 미술개념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방식의 미술을 전개했다. 또한 이건용은 미술계 주류와 관계없이 개념미술, 행위미술, 설치작업 등에서 실험적 시도를 감행해 전위미술 부문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성능경은 개념적 퍼포먼스의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된다. 윤진섭은 회화, 판화, 설치, 오브제, 퍼포먼스 등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작업에 주력했으며, 이후에는 활발하게 비평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처럼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도한 6명의 사료로 구성된 ‘언더그라운드 필름 타임즈(Underground Film Times)’는 저항과 실험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언더그라운드 필름 타임즈

언더그라운즈 필름 타임즈

에필로그
인천시청역사에는 이외에도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주목받은 육근병, 김승영 등 국내 정상급 작가들과 주로 장소의 특성을 활용한 설치예술을 하는 프랑스 출신 피에르 파브르(Pier Fabre)의 작품이 전시된다. 또한 한국의 도시화로 농촌의 현실을 그려낸 이종구, 도시생태계의 스펙타클한 이미지를 새로운 생명체로 번안한 이병찬, 사용된 장난감 완구를 이용해 ‘업사이클링(up-cycling)’의 선순환의 가치를 살려낸 김용철, 통일된 한국의 미래 풍경을 제시하는 홍원석 등의 작품들은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혹은 전지구화된 세계가 지닌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담아낸 것들이기도 하다.
‘언더그라운드 온 더 그라운드(Underground On the ground)’는 인천이라는 지역성과 세계 속의 인천이라는 글로컬(Glocal) 한 사유를 담아냈다. 여기에는 지구라는 행성의 평화와 공생을 위한 실천 전략으로서 가까운 이웃과 타자에 대한 환대를 주요 개념으로 삼고, 지구가 공통으로 껴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다층적인 시각을 구성해냈다. 또한 우리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글로컬한 생각을 예술적 행동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실험하는 장이 되었다. 인천시청역사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현대미술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은 동시대 시각예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늠해 보는 동시에 공동체에 대한 개방과 포괄의 원을 확장해보길 기대한다.

이종구, 대지의 손, 105x70x10cm, 종이부조와 오브제(), 2005대지의 손, 113x75x15cm, 종이부조와 오브제(), 2005

홍원석, 컬러풀 아시아 하이웨이, 가변설치, 혼합재료, 2018

·사진 고경옥 Ko Kyongok 高敬玉

고경옥 Ko Kyongok 高敬玉
홍익대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쿤스트독미술연구소 연구원, 이랜드문화재단 수석큐레이터, 수원시미술전시관 책임큐레이터를 역임했다. 미술현장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여러 작가론을 썼다. 현재 인천문화재단에서 주최한 <2018 예술정거장 프로젝트>의 수석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예술과 사회에 대한 연구로써 다양한 인문학 공부에 힘쓰고 있다.
curator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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