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미술관 작가연구 – 양유연 작가 <보는 것 만으로 들을 수 있다면>

0
image_pdfimage_print

인천 중구에 있는 임시공간은 1층 미용실이 있는 2층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지도를 검색하면 해당 위치가 나오지만, 그 주변을 몇 번 두리번거려야 찾을 수 있었다. 공간의 절반은 전시를 진행하지만, 그 나머지는 서재와 같은 집무실이었다. 이번에 내가 찾아가 본 전시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湁美述觀 : 작가연구’는 인천의 신생 공간인 임시공간에서 원로작가와 청년작가 사이에 있는 미드-커리어 작가 연구다. 2016년 아트플랫폼 입주작가였던 양유연 작가의 전시로 이전에 전시되지 못했거나 전시하지 않은 작품을 선별하여 전시를 진행한다. 인물을 대상으로 작업하는 가운데, 작업의 초기와 중기, 그리고 최근 작품들을 전시한다. 조금 민망한 이야기를 하자면, ‘인천시립미술관’이라는 전시명을 보고 나서 이 전시가 ‘인천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인천시립미술관’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인천시립미술관은 없었다. 전시 관련 내용을 자세히 보니 한자가 다른 것이 아닌가. 민망하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동음이의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연 어떤 전시일지 더 궁금해졌다.

미술 전시를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작품을 전시할 때 작품의 배치 또한 중요하다. 어떤 액자를 사용하고. 어떤 벽에 어느 정도의 간격으로 작품을 배치할지. 또는 작품을 세워 놓을지, 눕혀 놓을지, 걸어 놓을지 등 말이다. 공간이 넓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작은 공간이어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따라 작품을 효과적으로 전시할 수 있다. 임시공간에 발을 들이고 제일 처음 본 것도 그것이다. 하얀 벽에는 총 7개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좋은 작품에서는 고민이 느껴진다. 무엇을 보여줄까, 어떻게 보여줄까. 좋은 전시도 똑같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까. 작품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하나하나 가까이 볼수록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은 작품과 좋은 전시를 보여주고 싶어서 몇 번이고 고민하지 않았을까?

양유연 작가의 작가노트에는 초기, 중기, 그리고 가장 최근 작업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적혀있었다. 시작은 일기 같은 그림이었다고 한다. 자신 안에서 항상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그저 밖으로 쏟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 작품의 시작과 끝은 비록 어렵지 않더라도 다음에 그것을 보는 순간 그 당시에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너무 선명해서 숨기고 싶었다고.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전부 보여주는 것이 아닌 선택적으로 감추며 조금씩 드러내기도 한다. 우회의 방식이 도리어 작품을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톤과 채도는 굉장히 낮고 어두운 편인데, 실제로 작가의 초기 작품은 비교적 색도 선명한 편이고 표현이 직접적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을 준다기보다는 ‘아, 이런 느낌이었구나!’라고 확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취향에 따라서는 그 이후의 작업보다 초기의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대중적인 색이었다.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인물들을 그렸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를 지시하는 그림은 그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 인물이 갖고 있는 뉘앙스만으로 하려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그림자로, 명암으로, 닮아있는 다른 어떤 사물들로, 또 한편으로는 있는 것을 지워내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시도했다. 그동안 작업의 결들이 생겼고 시기별로 내가 무엇에 주목했었는지, 어떤 것들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알게 되었다.’ – 작가의 글 중

작가의 글처럼 인물을 그린 여러 점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안개가 낀 듯 모호하다. 그림을 그려놓고, 그 위에 살짝 먼지를 뿌린 느낌이었다. 햇빛 아래로 연기를 옅게 깔아놓는다고 해서 빛이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는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그랬다. 그리고 조금은 어둡고 우울하다. 그런데 그 우울이라는 것이 눈물이 날 것 같고 무기력해지는 우울은 아니었다. 차가운 새벽에 혼자 밖에 나와 있을 때의 우울함. 차가운 공기가 낮게 깔려있고, 캄캄하지는 않으나 어슴푸레하며, 사무치듯 외롭지는 않으나 어쩐지 쓸쓸하다. 몸부림쳐서 떨쳐버리고 싶은 우울함이 아니라 혼자 가만히 곱씹을수록 잠잠해지는 우울함이었다. 아크릴과 분채를 같이 사용하는데, 동서양이 섞인 재료에서 나오는 분위기도 좋았다. 최근 작품일수록 작품과 그것을 보는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진다. 내가 지금 이런 기분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너는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작가가 작업해온 시간 안에서 처음에 쏟아내던 감정들은 여러 번 감수하고 절제된 채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우리는 많은 예술 속에서 살고 있다. 숨 쉬며 살아가기에 예술이 필수는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예술가가 계속 배출되고, 사람들은 자꾸만 예술을 영위하고 싶어 한다. 사람은 밥만 먹고 숨만 쉬면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림을 그리는 것과 그림을 보는 것도 그렇다. 어떤 이는 무언가를 그리면서 자신을 찾아간다면, 또 다른 이는 그것을 보면서 자신을 찾아가기도 한다. 폭넓게 좋은 작품들을 자주 보여주는 것이 임시공간에서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라고 한다. 우리는 그저 발걸음을 돌려 찾아가면 된다. 요번에는 너무 멀리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할 겸 친구의 팔짱을 낀 채 임시공간의 문을 두드려보자. 유리창 너머 1층 미용실도 한번 구경해주고. 생각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글 · 사진 시민기자단 이은솔

Share.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