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간상의 발견, <문학이 있는 저녁 세계문학특강 ‘가즈오 이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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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매우 많은 특강이 열린다. 요번에 다녀온 <문학이 있는 저녁, 세계문학특강>은 문화평론가이자 출판사 민음사의 편지장 박혜진 씨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주제로 2차강의를 열었다.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 중 몇몇은 박혜진 씨를 낭만 서점 팟캐스트로 알고 오기도 했다.

나는 중고서점에서 1년간 일을 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점에서 일하면 많이 팔리는 책과 인기 있는 책을 굉장히 빠르게 알 수 있다. 서점에서 일했던 2016년도에는 사람들이 사고파는 책 가운데에서 이름을 보지 못한 작가였다. (당시에는 맨부커상을 받았던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굉장히 유명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인기 많은 작품에는 그 작가의 특징이나 책의 내용에 대해 쉽게 접할 수 있고, 인기가 많은 만큼 많은 관심이 쏠리게 된다. 나에게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작가였다. 근대문학관에서 나눠주는 작은 간식과 함께 그런 낯선 작가에 대한 특강이 시작되었다.

강사님은 먼저 인천이라는 지역이 본인에게 거리상으로는 멀지만, 문학적으로는 가까이 느껴지는 지역이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소설 ‘아편전쟁’의 배경이기도 하지만, 소설 ‘해가지는 곳으로’ 저자인 최진영 작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인천의 해가 지는 장소를 찾아보기도 했었다고 한다. 강사님은 가즈오 이시구로를 굉창히 좋아하지만, 오늘의 강의는 작가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의 작품을 읽은 이에게는 조금 더 풍성한 이해를 돕고 이제 읽어보려는 이에게는 어떤 작품을 먼저 읽을지 가이드라인을 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먼저 노벨 문학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2017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인간상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나 안톤 체호프 같은 경우에도 작은 인간상(이상할 정도로 극도로 소심하거나 한)이 드러나 있다. 언어나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면을 발견하는 것. 가즈오 이시구로는 기억하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발견했다. 그 기억은 즐겁거나 아름다운 기억이 아니라 본인이 피하고 싶은 기억이다. 자신에게 불편한 기억을 대면했을 때 외면할 것인가,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내적 갈들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는 표면적인 사건이 크게 일어나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와 계속해서 갈등하는 모습이 그려진다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최초의 문학창작과 출신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정석 코스를 착착 밟고 온 엘리트 느낌인데, 이는 2016년도 수상자 밥 딜러와는 상반된 느낌을 품고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감정의 거대한 힘이 있는데,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어떤 감정이 느껴지도록 한다.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내재된 불안을 독특한 판타지 요소로 드러내는 카프카,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정교하고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풀어내는 제인 오스틴, 기억이나 의식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루스트.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런 유럽문학의 총체적인 합 같다고 덧붙였다. 그의 문학세계는 크게 초기, 중기, 후기순으로 구분되어 강사님은 이 순서대로 강의가 이어졌다. 강의 소제목인 ‘기억하는 인간, 기만하는 인생’이 처음부터 눈에 띄었는데, 그의 작품이 딱 이 한마디의 로그라인으로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주로 한 인간(주인공)이 자신의 기억 중 외면하고 싶은 기억을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면서 어떤 선택과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잊히고 불편하고 왜곡된 기억들을 마주하면서 그 기억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타협하는지를 알려준다. 꼭 모든 인간이 그런 기억들과 용감하게 싸워서 이길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불편한 기억들을 계속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한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접할 예정이라면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작품을 첫 번째로 추천하셨다. ‘녹턴’이라는 유일한 단편집은 여행 갈 때 들고 가서 잠깐씩 이동하거나 기다리는 시간에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에 대학교 문학 수업에서 한 교수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문학의 소재는 고대에서 근, 현대로 올수록 점점 작은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로 바뀐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신에 관한 이야기, 그다음은 신에 버금가는 영웅이나 귀족, 다음은 영웅이나 귀족은 아니지만 능력을 갖춘 사람, 다음은 평범한 사람. 그다음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덜 가지고 있거나, 더 불편하거나 한 사람들의 이야기. 나와 내 곁의 사람들과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쓰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알고 보고 싶지 않은 부분에 대한 글들이 상을 받고 있다. 사회 안의 문제들과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귀 기울이는 글들이 훌륭하다 평을 받는다는 말이 아닐까.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힘든 시련 앞에서 정의롭고 올바른 길을 척척 골라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렵다. 우리는 불편한 문제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고민한다. 어쩌면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외면하거나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문제들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것.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이 우리가 사람으로 살면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글·사진 시민기자단 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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