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는 정보가 중요한 자원이 되죠. 그런데 정보의 과잉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TMI를 아시나요. Too Much Information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말 그대로 너무 많은 정보, 즉 정보 과잉을 뜻합니다. 영미권에서는 2000년대부터 인터넷 용어로 사용됐으며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SNS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그거 TMI다”라는 식으로 일상대화에서도 소통의 단어로 인식됩니다.
TMI 이전에는 ‘TMT’가 있었습니다.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의 약자로 과도하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지칭했죠. TMI와 TMT 모두 원하지 않는 정도를 넘은 정보에 노출됐다는 의미가 담긴 용어입니다.
12월 19일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량은 소주 2잔,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은 키스데이인 6월 14일이고, 유승민 의원은 딸기케이크를 좋아한다는 내용은 한 누리꾼이 올린 ‘TMI 모음’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이걸 꼭 알아야 할까요?
‘별별TMI’라는 타이틀을 단 연예계 카드뉴스 출처:비주얼 다이브 |
SNS를 통해 그날그날의 상황이나 기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인이 감당하지 못하는 감정, 즉 내면의 고통과 사회적 불만을 토로하는 거죠. 그런 자기 독백이 적정 수준을 넘어 ‘자기 고백의 과잉공간’, ‘감정의 배설구’로 전락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타인에게 말할 필요가 없는 일까지 알린다든가 개인적인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내용이 흘러넘친다는 겁니다.
미국의 경제 전문 미디어 <아이엔시닷컴>은 ‘예의 바른 사람들이 꼭 지키는 8가지 규칙’의 하나로 ‘SNS를 감정의 배설구로 이용하지 않는 것’을 들었습니다. “할 말 못 할 말의 구분이 중요하다”면서 “과거 자신이 올린 게시물 중 낯 뜨거운 글이 있다면 반성의 시간을 갖자”고 요청하기도 했네요.
출처: 서울문화사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소비할까요? 수시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틈날 때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일별합니다. 친구나 동료에게 온 이메일과 전화 등에 대응해야 하기도 하고요. 이런 습관이 인포매니아(Informania)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네요. 옥스퍼드 사전은 인포매니아를 ‘모바일 기기나 컴퓨터를 사용해 뉴스나 정보를 확인하고 축적하려는 강박 욕구’라고 정의했습니다.
미국 성인의 미디어 소비 시간은 1일 평균 12시간이라고 합니다. 뉴욕 라디오 방송국의 ‘Note to self’는 정보과잉 이슈를 개선하는 ‘Infomagical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60%가 매일 올라오는 정보에 노력을 쏟는 것이 부담된다고 답했습니다. 80%는 정보과잉이 학습능력을 저하시킨다고 했고요. 정보과잉 상태가 연인과 가족, 친구와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고백한 사람도 30%가량 됩니다.
출처:명지대방송국(MBS)
‘안물안궁’, ‘설명충’, ‘알빠야 쓰레빠야’ 등은 TMI와 비슷한 뉘앙스를 가진 표현입니다. 하지만 TMI의 경우 최근 긍정적인 의미가 부각되며 새로운 소통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지난 8월 27일, ‘TMI: 정보과잉 시대의 자유로운 소통 트렌드’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1년간 주요 블로그 및 카페, SNS 등을 통해 생산된 약 40만 건의 TMI 관련 데이터를 분석했는데요, ‘몰라도 되는 것까지 굳이 알려준다’는 의미의 부정적인 신조어로 등장한 TMI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면서 소셜 버즈량 뿐만 아니라 네이버 검색량 또한 증가했다고 보고했습니다.
TMI 관련 주요 키워드는 좋아한다, 재미있다, 궁금하다 등으로 쓸데없다, 귀찮다, 피곤하다 등의 무기력한 키워드를 앞섰습니다. 이노션 관계자는 “TMI가 TV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온라인에서 일상적인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며 “부담만 갖지 않는다면 사적이고 시시콜콜한 내용도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TMI의 긍정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출처: 일간투데이
TMI는 팬덤형, 자기독백형, 지식수다형의 3가지로 나타납니다.
팬덤형은 팬심을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인증하는 방법으로 정보공유를 넘어 굿즈를 구매하거나 모방하는 유형입니다. 자기독백형은 소소한 일상을 형식, 소재,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공개하고, 지식수다형은 배낭여행 후기, 특정지역 가성비 최고 술집 top3 등 자신이 경험하거나 다녀온 장소에 대한 개인적 느낌이나 정보를 공유합니다. 당장 쓸 데는 없지만, 호기심을 충족하거나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쓸지도 모르는 잠재 정보로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거죠.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TMI를 말해보자’라는 식의 게시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소해서 딱히 말할 필요가 없었던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는 겁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사생활 정보가 범람하는 과잉 연결 시대에 어떤 정보를 선별해야 하는지 가리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껴 TMI를 외치게 되는 것”이라면서도 “시공간의 제약을 떠나 자신과 잘 통하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SNS의 특성 때문에 TMI 공유 놀이가 유행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인기 팟캐스트 ‘지대넓얕’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 하지만 아무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주제를 다룹니다. 이른 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죠. tvN 예능 ‘알쓸신잡’의 타이틀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으로 풀이됩니다. 작가와 건축가, 과학자 등의 출연진이 정답이 없고 돈벌이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인간과 사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죠. TMI의 주목은 시험에 나오는 내용을 지식 전부로 습득하고, 취업에 필요한 정보만 유용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동시대인이 당장 쓸모없더라도 지금 재미있으면 그만인 지식 유희를 만끽하는 유별난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쓸데없는 것’이 가치를 갖는 시대, 정보 과잉의 역설이 아닐 수 없네요.
*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1. [4차산업혁명] “부담없이 재밌게 정보 공유” TMI, 새 소통 트렌드로
일간투데이, 2018.8.27(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정보과잉으로 지친 나를 도와줄 5가지 방법
슬로워크, 2016.3.23(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타인에 대한 과한 정보
서울문화사, 2018.8.28(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정보과잉 시대의 ‘지식’에 대하여
브런치, 2018.6.11(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트랜드지식사전6』 김환표, 인물과사상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