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목요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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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목요일 늦은 7시 도화역에서 천천히 걸어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에 이르렀다. 사실, 네이버 지도 앱에서 알려준 대로 가다 보니 뜬금없이 민가로 안내가 되어서 잠시 헤매긴 했다. (지도 앱을 사용했는데 골목길로 알려준다고 해도 주저하지 말고 큰길로 가면 된다.) 밖은 해가 져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지만, 공간 내부는 밝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은 70년대 고지대의 급수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던 시설이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게 된 옛 상수도 가압펌프장을 창작공간으로 새롭게 개조한 곳이다. ‘생활에 가장 중요한 식수 공급에서 예술의 꽃에 물을 주는 창작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라는 슬로건이 마음에 들었다. 매번 시민기자로서 취재를 나갈 때마다 인천의 구석구석에는 우리가 모르는 예술과 관련된 많은 공간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예술가를 비롯하여 일반 시민들을 위한 생활문화예술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조금만 검색하거나 알아보면 무료로 혹은 저렴한 비용을 내고 평소에 관심을 두었거나 필요했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내가 다녀온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에서 열리던 <목요낭독회>이다.



희곡 낭독의 실제 – <목요낭독회>

8월 9일부터 10월 27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마다 열리는 <목요낭독회>는 고교생 이상인 모든 시민에게 열린 프로그램으로, 함께 모여 즉흥극을 하거나 희곡을 낭독하면서 ‘바쁜 일상을 한 줄의 대사로 툭툭 털어버리는 시간’(프로그램 담당자님의 오픈 멘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을 인용했다)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본 프로그램을 마친다. 이미 올해는 앞서 두 번의 낭독회를 진행했지만, 이미 그 기회를 놓치게 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올해 마지막인 <목요낭독회>도 일찍이 마감되어 내년을 기대해볼 수밖에 없었다.

담당자님의 여는 인사말을 마치자마자 앞으로 대략 20명의 참가자를 즐겁게 이끌어갈 강사 두 분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창작집단 LAS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이기쁨’씨와 그 소속 연극배우 ‘이세롬’씨가 이번 목요낭독회의 연출과 조연출을 맡게 되었다. 연극에 대한 엄청난 스킬업이나 지식을 알려주기보다는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희곡을 낭독하는 방법을 수강생들에게 알려주면서 ‘연극’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증폭되길 기대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강사진은 수강생들에게 길잡이의 역할이 되면 좋겠다는 멘트를 덧붙이며 간단한 일정소개와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빠질 없는친해지기

상반기 내내 취재를 다녔던 여러 프로그램 중에 다수의 프로그램이 낯선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함께 배워나가거나 연습하는 과정이다. 목요낭독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첫날에 항상 ‘자기소개’와 ‘친해지기’가 빼놓지 않고 시작되었다.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인 시간에는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서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부분이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보다 성인이 친해지기가 조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낭독회’라고 해서 대사만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몸을 써가면서 사람들 앞에서 연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요낭독회의 강사님들은 어떤 방법으로 친해지는 방법을 준비해 오셨을지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강사님들이 준비해온 친해지기는 바로 ‘진진진가’이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4가지 준비하는데, 그중 세 가지는 진짜 정보이고, 나머지 하나는 가짜인 정보로 구성해서 발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발표하지 않는 나머지 사람들은 그중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별해서 맞춰보는 자기소개 방법이다. 수강생들은 발표자의 겉모습과 말하는 모습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를 통해서만 정보를 유추하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된다. 그리고 발표자도 그 4가지 정보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풀어나가면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방법이다. 다들 자신에 대해 쓰는 동안 나도 조용히 적어보면서, 잠시 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연기는 나와 전혀 다른 누군가로 변신한다고 해도 그 캐릭터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사고하고 대사를 만들고 표현하는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진진가’를 통해 나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까닭이다. 사실 나는 이때부터 이들 사이에서 기자가 아닌 참여자로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부풀어 올랐다.

 
 

“너 뭐 해?”와 ‘의자 뺏기’

이후에는 간단한 즉흥극이 시작되었다. A가 의자에 앉는다. B가 다가와서 A에게 ‘너 뭐 해?’라고 묻는다.예를 들면 A는 ‘나 지금 너무 화장실이 급한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와 같이 자신이 처해있는 가상의 상황에 대해서 제시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로 돌아간다. 남아있는 B는 A가 제시한 그 상황에 대해서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C가 와서 ‘너 뭐 해?’라고 물으면 B는 A가 했던 상황을 그대로 연기하고 또 남겨진 C는 B가 했던 방식을 따라 한다.

“너 뭐해?”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바로 ‘의자 뺏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A 의자에 앉는다. B A에게 다가와서 어떤 상황에 대해 연기한다.
A의 목적은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에서 일어서지 않는 것이고 B의 목적은 A를 의자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

그러니 B는 자연스럽게 A가 의자에서 일어날 만한 상황을 연기하고, A는 B의 연기를 받아치면서 엉덩이를 그 자리에 붙일 수 있는 상황으로 몰고 가야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뻔뻔하게 연기를 해야 하는 자리지만 모두가 놀라울 정도로 능청스럽고 즐겁게 연기를 이어나갔다. 부족한 시간 탓으로 모두가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앞에서 연기하는 사람들 외에도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속으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으니까!) 이렇게도 상황을 표현하네? 저런 식으로 행동을 하는구나! 다들 주어진 상황에서 내 자신을 투영해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듯 하였다. ‘즉흥’이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떠올린 기발한 아이디어와 개개인 마다 다른 표현 방법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일상의 소소하고 확실한 탈출구 -‘표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프로그램에 지원한 이유가 달랐다. 연기에 대한 관심으로, 조금은 소심한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일상에서 색다른 활동이 필요해서, 연기를 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등 가볍거나 무겁다고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목적과 사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긴장하는 반면, 누군가는 편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친구와 같이 온 사람도 있고, 혼자 방문한 사람도 있었다. 대학생, 휴학생, 취업 준비생, 주부, 회사원 등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목요낭독회>에 굉장한 기대를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수업이 끝날 때쯤에 수강생들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한가득 안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돈도 되지 않고, 무언가 득이 될만한 특별한 스펙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아주 쓸모없을 것 같은 어떤 행동이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와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마치 우리의 행복이 필요한 행동을 했을 때만 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인천에는 왜 이런 공간과 프로그램이 많을까? 게다가 많은 사람은 열과 성을 올리면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할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 그것은 사실 몹시 어렵고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글/사진 시민기자단 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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