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화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다. 2월과 3월 사이에는 전국 곳곳에서 그해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 공고가 줄줄이 올라오는 시기다. 현대 사회에서는 예술가가 굶어 죽을 일은 없다지만, 많은 예술가가 자신들의 창작활동에 몰두하면서 그리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음악이나 공연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인 가격을 매겨서 한번 팔 때 마다 정해진 금액을 받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예술가들에게 활동을 지원해주는 사업들이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매달 마지막째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마지막 주 수요일이 되면 저렴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혜택을받는 사실을 흔히 알고 있는데, 이 또한 ‘문화가 있는날’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춘마이크>도 그런 사업에 해당한다. <청춘마이크>는 학력, 경력, 수상 실적과는 상관없이 실력과 열정을 갖춘 청년 문화예술가들에게 공연 기회를 주고, 그에 맞는 지원을 제공해준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다. 아마도 여러분이 꽤 좋은 공연을 길거리에서 봤다면 <청춘마이크>였을 가능성이 높다. 6월의 마지막째 주 수요일이었던 27일은 때마침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청춘마이크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다
송도 트라이보울 야외 공연장은 탁 트여서 넓고 시원하다. 장마주간이었던 지난 주에 다행히도 수요일에만 비가 멎었다. 그날의 공연은 다양한 장르의 3팀으로 구성되었다. 수요일 오후 6시 트라이보울 앞에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색색의 티셔츠를 맞춰 입은 청년들이 야외공연장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트라이보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는 현대무용에 대중가요와 전래동화를 혼합하여 창작무용을 선보이는 ‘전래무용단’ 공연이었다. 친숙한 노래에 자신들만 고유한 색으로 각색한 전래동화를 연기와 춤으로 표현하였다. 익살맞은 표정이나,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현대무용 특유의 몸짓이 섞여 굉장히 새로운 시너지를 냈다. 각색한 ‘토끼와 거북이’ 동화에 춤을 추듯 연기하는 장면은 짧은 뮤지컬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흰 천을 손에 쥐고 동작을 취하는 살풀이춤을 마지막으로 전래무용단의 화려했던 공연이 끝나고, 이번에는 귀여운 옷차림의 여성이 나와서 자신을 소개했다.
‘벤트시스터즈’는 복화술 공연을 하는 팀이다. 목소리부터 심상치 않았다. 복화술 공연이 생소했기 때문에 굉장히 눈을 빛내면서 보았는데, 주변 아이들도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소리를 내서 던지는 예술이라는 복화술에 대한 짧은 설명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따릉이’라는 인형 친구가 ‘동글이’라는 인형 친구에게 고백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는 스토리로 진행되었다. 인형과 능청스럽게 대화하듯 말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넋을 놓고 공연에 집중했다. 목소리 하나로만 진행되는 공연이었지만, 인형을 비롯해서 화이트보드나 가면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도구들과 재치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여성 두 분이 들어가자 이번엔 새까만 정장을 입은 남성 두 분이 이어서 등장했다. 마치 어떤 공연을 진행할지 예측하기가 점차 어려웠다. ‘전래무용단’과 ‘벤트시스터즈’와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이었지만 무슨 공연을 하는 팀인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준비물은 많은데, 뭘까. 처음엔 요요였다. 그리고는 저글링이고. 곤봉도 돌리고. 아코디언 비슷한 악기도 연주하고. 웃기기도 하고. 근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정말 뭘까. 굉장히 재밌는데, 이걸 무슨 공연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와중에, 드디어 공연은 끝나고 팀을 소개했다. ‘서커스 코미디’를 하는 ‘팀 퍼니스트’의 공연이었다! 서커스 코미디 공연. 어쩜 이렇게도 본인들의 공연을 한마디로 잘 표현했는지.
3팀 모두 공연을 잘하는 팀이었다. 또한, 특정 연령층에만 어필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닌 가족, 커플, 남녀노소 모두가 즐겁게 몰입하면서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라는 점이 굉장히 신선했다.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짧다는 점이 버스킹의 장점이다. 이 장점을 충분히 살려서 관객들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래무용단’은 공연 특성상 춤을 춰야 하므로 공간을 넓게 확보할 수밖에 없지만, ‘벤트시스터즈’와 ‘팀 퍼니스트’는 계속해서 관객을 참여시키고 관객과 호흡하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질 높은 공연을 발걸음 닿는 곳에서 시간만 내면 볼 수 있는데, 그게 마침 우리 집 앞이라면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아닐까. 청년 예술가와 관객을 이어주고, 그 안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표현하며, 그들의 발전을 위해서 지원해준다. 예술가 또한 직업이다. 월급을 받지 않지만. 자신들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노력’에 정당한 대가를 주고 그들의 일에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지원사업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예술이니까!
글/ 사진
시민기자단 이은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