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였다.
언젠가부터 소식(小食)하는 사람들이 장수하는 이유는 그들이 적게 먹음을 실천함으로써 살생을 적게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담보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제 어미의 몸을 담보로 한다. 어미는 복중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속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먹지 못해도, 아이는 어김없이 자란다. 아이는 어미가 새로운 영양분을 섭취 못해도 이미 어미 몸속에 축적된 영양소를 토대로 자신의 몸을 성장시킨다. 어미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대가로 온종일 어지러워 아무것도 못하고 몸저 누워있지만, 아이는 그런 어미의 몸속에서 더욱 여유롭게 자라난다. 태아는 어미의 육신과 영혼을 먹고 자라며, 그렇지 못하는 태아는 살아남지 못한다.
태어난 후에 살아가는 일이란 어떤가? 인간이 먹는 음식, 입는 옷, 사는 곳,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소비하는 의식주에서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살생을 저지르지 않는 분야는 없다. 우리의 삶과 소비는 타인의 생명을 취하지 않고서는 영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인간이란 죄를 짓지 않은 채로 결코 당당하게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이미 죽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금이나마 인간이 죄를 적게 범하면서 사는 방법이란 소식하며, 필요하면 적당히 입고, 적당한 크기의 집에서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고 입고 취하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그렇게 소비되기 전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우주의 생명이었으며 그들은 우리와 자연을 공유하는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이다.
날이 좋아 기분이 좋을 토요일 오후, 인천 아트플랫폼 광장 한쪽에서는 중국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광장에는 아이들과 함께 휴일을 즐기러 나온 많은 가족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휴일을 즐기는 광장 한 켠에는 햄버거 사진 하나가 놓인 갤러리가 있다. 그리고 인천아트플랫폼 윈도 갤러리 안쪽에는 돼지 한 마리가 누워있다. 바로 신재은 작가의 개인전 GAIA이다.
가이아 GAIA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이다. 신재은 작가의 작품 GAIA는 여신 가이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지를 상징하는 형태의 설치물이 있고, 바로 그 맨 하단에 돼지가 놓여있다. 아스팔트에서부터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간 형태를 전면에서 바라보듯, 인간이 밟고 선 아스팔트 아래의 지층은 그렇게 이루어져 있으리라고 생각한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대지 지층의 가장 아래층에는 돼지가 누워있다. 도축 후 내장까지 제거되어 정육점으로 들어가기 직전 상태로 돼지는 땅의 가장 아래층 밑에 누워있다. 아니, 도축되어 누워있는 돼지 위로는 우리가 밟고 선 땅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돼지는 우리 인간과 유전자가 아주 유사하다고 해요. 우리는 돼지를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늘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와 꽤 비슷한 유전자를 지닌 존재라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많은 부분 밝혀졌지요.”
신재은 작가에게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방금 보았던 전시 포스터에서 뭔가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흔히 광고에서 햄버거가 먹음직스럽게 보이려고 둥근 빵 사이로 베이컨이 양옆으로 삐져나와 있곤 하잖아요. 이 포스터에서 물고기 모양처럼 묘사된 부분이 바로 베이컨이에요”
신재은 작가의 작품 GAIA는 우리가 늘 밟고 선 지표면 아래에 우리와 유전자가 아주 비슷하다는 돼지가 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의 토대인 대지는 죽어간 돼지 위에 쌓여 형성되었으며, 우리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자주 애용하는 햄버거는 바로 그 돼지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전시장 한쪽에는 바로 이 문구가 적혀있다.
“우리는 모두 형제였다.”
도축된 돼지가 놓여 있던 자리는 위생상의 문제로 이틀 후면 몇 개의 뼈들로 대체 될 예정이다. 필자가 전시를 방문했던 날은 마침 전시 오프닝 날이었고, 오프닝 행사로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조금 드시고 가세요. 돼지고기로 만든 햄버거와 맥주에요.”
2018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특정주제전
9기 입주작가 신재은 개인전
2018. 06. 16. – 07. 20
1부 6월 16일 12:00-16:00
2부 6월 17일-7월 20일 항시 (월요일 휴무)
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 갤러리(문의: 032) 760-1003)
글, 사진 김경옥(인천문화통신 3.0 기자, 수필가 블로그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