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과 연길을 잇는 10년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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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밟자마자 ‘변강도시 수려연변(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 아름다운 연변에 취하다)’라는 한글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분명 중국에 도착했는데 가장 먼저 마주치는 글자가 한글인 상황인 셈. 입국심사를 거쳐 짐 찾는 곳을 지나자마자 출국장으로 연결되는 작고 아담한 공항 밖으로 나오면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연길’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위풍당당하다. 시내로 이동하는 내내 중국어를 몰라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한글은 거의 모든 곳에 병기되어 있었다. ‘연길이 조선족 자치주의 심장부’라는 말이 그때서야 실감났다. 소수민족의 언어를 한자와 병기하도록 아예 법으로 못 박았다는 중국의 포용력(?)도 함께. 물론 연길에 조선족만 사는 것은 아니다. 한글을 모르는 한족들이 구글 번역기에 기계적으로 돌려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글로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말이 안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실제 연길에서는 중국어를 전혀 몰라도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어디에서나 한국어가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어로 말을 걸면 “한국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글 간판들에 취해 외국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쯤이면 곳곳에 나부끼는 계도성 현수막이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이며, 엄연한 외국이라는 현실을 일깨워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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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금), 길림신문사가 주최하고 인천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제10회 인천문화재단컵 중국조선족중학생사이버백일장’ 시상식이 중국 연길시 국제호텔에서 열렸다. ‘인천문화재단컵 사이버 백일장’은 2006년부터 해마다 열려온 ‘인천컵 인성교육 글짓기 공모’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2012년에는 한국 보리출판사와 중국 흑룡강신문사가 이 공모작 수장작들을 선정해 『엄마가 한국으로 떠났어요』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길림신문은 중국 정부에서 공인하는 대표적인 한글 언론매체로, 길림성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중국 내 뉴스는 물론 해외 곳곳에 흩어져 사는 200만 조선족들의 생활상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 신문사다. 조선족이 누구인가? 일제 시대, 생활고로 중국에 건너갔거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광복이 되자 그곳에 자리잡았던 사람들의 후예가 아닌가. 실제 이 지역(도문, 화룡, 안도, 돈화 등)은 항일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던 곳으로, 곳곳에서 민족학교와 기념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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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나눔’을 주제로 진행된 올해 백일장 공모에는 총 325편의 작품이 접수되었고, 산재지역 학생들의 작품이 84편, 연변지역 학생들의 작품수가 261편으로 산재지역 학생들의 참여율이 26%로 높은 편이었다. 평심(예심)과 본심을 거쳐 총 16명의 수상작이 뽑혔는데, 연길시조양천 제1중학 3학년 강해연, 흑룡강성 목단강시조선족중학교 3학년 리해횡 등 10명 학생이 동상(상금 300위안)을, 연길시실험중학 2학년 김정흔, 룡정시룡정중학 2학년 박수진 등 3명 학생이 은상(상금 500위안)을, 심양시조선족 제1중학교 2학년 김진희, 연길시 제2고급중학교 1학년 서영혜 2명 학생이 금상(상금 1,000위안)을, 용정시용정중학 1학년 차은주 학생이 영예의 대상(상금 2,000위안)을 수상했다. 16명 학생 수상자 외에도 10명의 선생님이 우수교원상을, 학생들의 적극적인 백일장 참여를 독려한 3개 학교가 조직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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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장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들이 가득했다. 중국 전역에서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이다. 하루 먼저 와서 연길에서 숙박하고 참석한 수상자도 있고, 한복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부랴부랴 한복을 빌려 입고 왔다는 수상자도 있었다. 아이들이 수상하는 경우 부모가 함께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떠들썩하고 큰 규모의 시상식은 분명 아니었다. 아리랑이 울려퍼지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길림신문사의 김영화 기자가 낭랑한 목소리로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이날 행사에는 흑룡강신문, 연변일보, 연변TV, 연변라디오방송, 해란강닷컴 등 길림 지역의 주요 언론매체들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연변주교육학원 초중조선어문교연실 허애란 주임, 연변인민출판사 중학생잡지사 주필 등도 참석했다. 경과보고에 이어 시상이 이어지고, 길림신문사는 행사 10주년을 기념해 “조선족교육의 번영과 발전을 위하여 지난 10년 동안 변함없이 조선족 중학생 인성교육상과 사이버백일장을 후원해준 재단의 공로를 높이 기린다”며 인천문화재단에 감사패를 증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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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를 맡은 연변주교육학원 조선어문교연실 허애란 주임은 “항상 이때쯤이면 길림신문사에서 언제 ‘선물’을 보내주나 고대한다”면서 “이 백일장은 민족 청소년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추억으로 담을 수 있는 앨범과도 같은 존재이며 이 글들을 심사하는 우리로서는 젊은 피들과 함께 뛸 수 있는 심장을 선물받은 것 같다”고 심사 소감을 밝혔다. “백일장에 오른 다수의 작품들을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형제자매, 친척친구 등 가까운 주변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사랑이야기는 물론 학교 선생님, 이웃, 그리고 낯모를 사람들까지 글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글 주제의 폭이 넓고 컸으며 특히 진솔한 감정세계를 잘 드러냈기에 설득력이 있었다”는 심사평도 뒤따랐다. 10년을 진행해오면서 길림신문의 이 백일장은 조선족 사회의 현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실제 백일장에서 수상한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등 좋은 성과를 계속해서 내고 있다고 한다. 올해 시상작 제목 중에는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과 중국이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어있는지를 알 수 있는 단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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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국에는, 그리고 이곳 인천에도 많은 조선족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한국으로 돈을 벌러 가고, 연길에 남아있는 조선족은 아주 어리거나 아주 나이가 든 사람들이다. 이렇게 수십 만 명의 조선족이 한국에 나가 있다보니, 결혼식도 아예 한국에서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남과 북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고, 한국인은 아니지만 세계 어느 나라의 사람들보다 조선이라는 역사를 공유한 남북의 발전을 바라마지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곳이 바로 연길이었다. 연길 TV에서는 중국 방송과 연길 방송(자체 제작하는 뉴스와 중국 뉴스를 더빙한 프로그램이 동시에 나온다), 실시간 한국 방송(KBS, SBS 등)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오늘 유행한 아이템이 내일이면 연길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다. 하지만 한국에서 같은 동포로서 역사와 문화, 언어를 공유하고 있는 조선족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족 사회에 일시적인 지원이나 후원은 있어도, 이 백일장처럼 꾸준하게 진행된 행사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오고가는 비행기가 모두 만석일 정도로 한국(인천)과 연길은 생각보다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고리가 잘 보이지 않을 뿐. 이 백일장만 해도 중간에 예산이 50%로 삭감되면서 규모가 축소되면서 중단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06년부터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고, 양 측이 함께 의지를 모아온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10년간 이어진 이 작은 백일장이 인천과 연길의 인연을 이어가는 한편, 활발한 교류로 이어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글 :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정지은

<2016 백일장 수상작 읽으러 가기>
대상 –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용정시용정중학 1학년 차은주)
http://tuney.kr/8pAdHI

금상 – 태양의 후예(심양시조선족 제1중학교 2학년 김진희)
http://tuney.kr/8pByQz

금상 – 사랑해 또 고마워(연길시 제2고급중학교 1학년 서영혜)
http://tuney.kr/8pC6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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