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의 학정(虐政)을 고발하다, 이인직의 『은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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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소설과 이광수와 김동인, 현진건, 염상섭 등의 근대소설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신소설’이다. 조선 후기와 근대소설을 잇는 과도기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인직과 이해조, 안국선 등이 ‘신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1905년과 191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표된 ‘신소설’은 당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져 있었던 시기인 만큼, 백성을 깨우쳐야 한다는 강력한 계몽성을 그 내용으로 했다. 이인직과 이해조, 안국선이 쓴 ‘신소설’들은 내용과 그 방향은 모두 달랐지만, 당시의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 계몽적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이 중 상대적으로 가장 강력한 정치적 계몽성을 담은 작가가 이인직인데, 교과서에서 배웠던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가 대표작이다. 『은세계』는 그의 세 번째 ‘신소설’ 작품인데, 이인직의 작품은 물론 한국 ‘신소설’ 중 가장 강한 정치적 계몽성을 가진 소설로 2018년은 작품이 발표된 지 110년이 된다.

『은세계』는 강릉의 부자 최병도라는 인물이 돈과 재산을 노린 강원관찰사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을 당하다 죽음을 맞고, 그의 자식들은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신교육을 받는다는 내용을 가진 소설이다. 따라서 부패 관료의 가렴주구와 학정 고발, 민중들의 저항의식, 신교육과 개화사상에 대한 강조가 작품 곳곳에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계몽성이 궁극적으로 조선의 멸망과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를 승인하는 쪽으로 향한다는 점은 이인직과 이 작품이 가진 결정적 한계이다. 이인직은 당시 조선의 부패는 일본 지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908년 11월에 단행본으로 발행된 이 작품은, 아래 자료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표지 제목이 ‘新 · 演 · 劇’의 집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이 연극 상연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은세계』는 우리 근대소설 중 극장에서 연극으로 상연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작품 표지에 ‘상권’이라 표기되어 있어 중권이나 하권의 존재를 생각하게 하는데, 현재로선 중권이나 하권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총 141쪽의 중편소설 분량에 해당하는 이 자료는 현재 잔본 부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한국근대문학관 학예연구사 함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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