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인천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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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간 다시 읽기’는 인천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글입니다. 인천의 도시 공간 그 자체, 혹은 그 안에서의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명확한 찬반을 주장하거나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늘의 인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갖거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우리 동네’ 혹은 ‘인천’라는 말에 첫 번째로 떠오르는 풍경은 무엇인가요. ‘우리 동네’는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살고 계시는 각자의 공간들이 생각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공간은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어쩌면 두 단어에서 같은 공간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다른 공간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오늘은 인천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풍경’이라는 단어에서 생각나는 이미지는 보통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거대하고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자연, 이를테면 깎아지른 듯한 바위 산이나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깊은 숲 속에서 쏟아지는 폭포, 끝을 알 수 없는 산의 이어짐이나 초원, 또는 운해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큰 검색사이트에서 ‘풍경’ 혹은 ‘landscape’로 검색을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풍경’이 어떤 느낌의 이미지인지 조금은 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겪지 못하는, 때로는 상상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 같은, 거대하고 신비로워 압도되는 공간들을 ‘풍경’ 이라는 말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무수한 자연 중에 어떤 것이 ‘풍경’이 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중요한 단서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칸트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개념을 구분했습니다. ‘아름다움’은 “즉각적으로 감각에 쾌미를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숭고함은 “절대적으로 거대한 것”, “모든 비교를 넘어서서 거대한 것”, “그것과 비교하면 나머지는 모두 작은 것”, “감각을 초월하여 있는 것” 등으로 정의합니다. 이것에 덧붙여 숭고는 “자연의 사물에서는 찾아질 수 없는 것이며, 단지 우리의 관념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는 이것을 이렇게 풀이해 줍니다. “자연 자체가 숭고한 것이 아니라, …(중략)… 주체의 세계 구성적 차원과 결합하여 인간화 될 때 숭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략)… 풍경은 문화에 의해 번역된 자연, 인간에 의해 재현된 숭고한 자연이라는 위상을 획득한다.” 이로써 ‘풍경’은 어떤 놀라운 형태의 자연이라면 가질 수 있는 이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문화적 토대 속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자연의 어떤 부분에서 숭고함을 끌어냈을 때, 그 장면은 비로소 풍경으로 주어집니다.

20세기 독일의 미술사학자 마르틴 바른케는 ‘정치적 풍경’ 이라는 책을 통해서 고전적인 풍경의 개념을 더 넓혀냅니다. 바른케는 자연이 풍경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거대한 기념물과 건축물, 성채, 정원과 같이 인간이, 권력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제시하고, 태양과 같은 자연물을 권력의 상징으로 치환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지는 풍경이 정치적인 선택의 결과물임을 보여줍니다. 이제 어떤 사회가 공유하는 풍경은 그 사회의 권력이 선택해서 보여주는 풍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도시 공간이 급격히 피폐해지면서, 대조적인 농촌의 전원을 이상적인 영국의 모습으로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남부 잉글랜드의 농촌으로 표상되는 영국적인 전원은 단순히 농촌 공간을 넘어서 ‘영원한 지속의 공간, 계급 없는 사회, 공동체, 조화로움’ 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러한 목가적 전원을 그려온 컨스터블과 같은 화가는 런던의 미술계를 통해서 국민 화가로 치켜세워집니다. 20세기 전반기를 휩쓴 두 번의 세계대전 속에서 농촌 풍경은 영국의 이상향이자, 지켜야 하는 조국의 이미지가 됩니다. 1차 대전에서 많은 영국의 군인들은 그들이 지킨 조국을 “시냇물이 흐르고 버드나무가 드리운 녹색 초원”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이 리버풀의 공장지대에서 자랐건, 스코틀랜드의 거친 산악지대가 고향이던, 그들이 지키는 영국은 목가적인 농촌 풍경으로 이해된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공업국가가 된 영국이 스스로의 풍경을 이렇게 정의하고 받아들인 것은 영국 사회가 스스로 어떤 한 자연을 풍경으로 선택해서 받아들였음을 보여줍니다.

비슷한 시기의 미국에서도 ‘미국의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미국은 19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기나긴 서부 개척의 시기를 걸치면서 그들의 모체였던 유럽과 다른 아이덴티티를 찾아냅니다. 그것은 바로 ‘프런티어’입니다. 아직 개척하지 못한 경계지역을 뜻했던 이 단어는 서부의 황량한 땅을 지속적으로 프런티어로 바꾸고, 다시 앞으로 전진하며 정착지로 바꾸어 온 미국인들의 진보와 변화, 그것에 대한 적응의 역사를 상징하는 단어로 변모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의 다양한 국가에서 바다를 건너온 모두 다른 배경의 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됩니다. 프런티어는 유럽과 다른 미국의 특성을 만들었고 미국인에게는 영국 출신, 이탈리아 출신, 아일랜드 출신 대신에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미국인들도 프런티어를 이미지로 재현하며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정착지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할 황량한 미개척의 땅입니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자연의 이미지는 미국이, 미국인이 더 나아가야할 지평이 남아있음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요세미티, 그랜드 캐년과 같은 자연이 사진작품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안셀 아담스의 작품은 컨스터블의 그림과는 달리 생명이 없는 불모지를 압도적으로 보여줍니다. 비어있는 불모지가 여전히 남아있고, 미국인의 프런티어 정신이 여전히 유효한 것이죠. 이러한 풍경의 이미지 속에서 서부에 존재하던 인디언의 존재, 인디언을 핍박한 미국인의 역사는 철저히 외면됩니다. 사진 속 프런티어의 풍경은 장엄하고 성스러운, 미국인들이 다함께 나아가야 하는 지향점이 됩니다.

오늘의 사회는 앞에서의 영국과 미국의 과거보다 훨씬 다원적이고, 국가나 도시적 차원에서 공유되는 풍경을 생각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천이 우리에게 꾸준히 보여주고, 내면화 시키고 싶은 인천의 풍경은 분명히 어느정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도시 마케팅이 강조되면서, 우리나라 모든 도시들이 저마다 각자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인천도 “All ways Incheon”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올해부터 사용하고 있죠. 이 슬로건을 이용한 영상 홍보물들을 보면,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천의 여러 곳들을 담아서 홍보를 하는 듯 하지만, 대부분의 동영상에서 많은 시간을 송도국제도시의 모습을 강조하는데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을 집중적으로 제시합니다. 다양한 공간을 비교적 균형있게 보여주는 영상에서도 마지막 슬로건과 함께 제시되는 풍경은 송도국제도시입니다.

인천의 위상은 오랫동안 서울과 연결되어 정의되어 왔습니다. 세계최고의 공항이라는 인천국제공항마저도 수도권의 관문, 나아가 대한민국의 관문이라는 상징성이 워낙 커서, 온전히 인천의 정체성으로 소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송도국제도시는 인천이 서울에 종속된 정체성, 수도권의 일부분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 세계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갖게 하는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천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풍경이 송도국제도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각적으로 독특한 센트럴파크 주변에 집중함으로써 우리에게 인천에서의 삶이나 여행의 경험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미래적이고, 그래서 독특하고 새로울 것이라고, 그래서 다른 나라의 도시들과 비견될 만한 도시라고 강조합니다. 인천의 미래지향적 풍경에 대한 집착은 한때 인천의 브랜드 로고에 페이퍼 플랜에 불과했던 송도 인천타워를 사용할 만큼 적극적이었습니다. 인천타워는 끝내 삽 한 번 뜨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말입니다.

인천의 도시계획은 최근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전히 경제자유구역의 개발에 매진하면서도, 과거에는 철저히 재개발의 대상이었던 구도심을 역사문화지구 등을 비롯해서 기존의 도심의 작은 공간들을 재발견하고, 도시재생을 통해서 도시공간을 유지·보수하는 국가적인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전세계로 열린 도시, 가장 미래적인 도시로서의 인천의 풍경이 조금은 바뀌거나 다양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인천이 보여주는 풍경들을 통해서, 인천이 갖고 싶은 정체성은 무엇인지, 인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길 바라는 정체성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글, 사진제공/ 김윤환 도시공간연구자

[참고문헌]
박지향(2006).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도서출판 기파랑
마르틴 바른케. 노성두 역(1997). 정치적 풍경. 일빛
김홍중(2005). 문화사회학과 풍경의 문제. 사회와 이론. 6
주은우(2003). 19~20세기 전환기 자연 풍경과 미국의 국가 정체성. 사회와 역사.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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