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보물지도’, 연극 ‘은하수 사진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는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있다.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가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 시민이라는 것이다. 아버지 역의 람베르토 마지오라니는 목공 일을 하는 노동자였으며, 아들을 연기한 엔조 스타이올라 역시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떠돌이 소년이었다. 감독은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떠안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이미 부르주아가 되어버린 배우들 대신 일반 시민을 캐스팅했다. 덕분에 영화는 2차 대전 직후의 참상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주 인천에서는 평범한 시민들이 배우로 출연하여 직접 자신의 일상을 연기한 연극과 뮤지컬이 각각 한 편씩 상연되었다. 인천문화재단의 인천왈츠 뮤지컬 <보물지도>와 작업장 봄의 연극 <은하수 사진관>이 그것이다. 두 작품 모두 지역의 예술가들이 극작과 연출을 맡고, 생활문화프로그램과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강사로 나서면서 시민배우들과 결합하여 만든 작품이다.
11월 10일 금요일, 주안노인문화센터가 연극 ‘은하수 사진관’을 보기 위해 몰려든 100여명의 관객으로 북적였다. 작업장 봄은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인천이야기’를 통해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인천 지역의 65세 이상 어르신들과 함께 연극과 영화 작업을 해왔다. 2006년부터 실버극단 ‘학산’을 운영하며 지역의 어르신들과 작업해온 작업장 봄의 이란희, 신운섭 강사는 올해, 사진을 주제로 선택해 인천의 옛 사진, 참여자들의 옛 사진을 매개로 인천의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했다.
그렇게 모인 네 개의 이야기는 인천독립영화협회의 감독들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 <사라진 것들과 남겨진 것들>로 제작되었다. 여고 시절 함께 사진을 찍던 친구들이 50년 뒤 다시 만난 이야기, 결혼식 당일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뒤늦게 결혼사진을 찍은 이야기, 선을 본 당일 짜장면을 함께 먹고 약혼사진을 찍으며 설렜던 이야기, 타향에서 시집살이를 하며 그리운 부모님께 독사진을 찍어 보낸 이야기 등 사진을 10분 내외의 짧은 단편영화 4편이 이 날 공연과 함께 상영되었다.
연극 <은하수 사진관>역시 어르신들의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구도심에 위치한 은하수 사진관에 공무원이 찾아와 사진관을 헐고 주차장으로 만들어 관광지로 개발하자며 제안하고, 주인공 광언은 사진과 함께한 자신의 반평생을 되돌아보며 사진 속의 사람들을 추억한다. 주안공단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여직공이 부모님께 보내기 위해 찍은 사진, 인천도나쓰 가게에서의 미팅을 앞둔 여고생들이 찍은 우정사진 등, 사진 속에는 인천의 옛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11월 11일과 12일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상연한 뮤지컬 <보물지도>역시 인천 시민들이 배우로 등장하며, 인천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지난 7월부터 인천문화재단 시민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인천왈츠에서는 인천 지역을 대표하는 극단 십년후와 인천의 시민배우들이 함께 작업을 해왔다. 시민배우 뿐 아니라 시민 오케스트라도 함께했다.
뮤지컬 <보물지도> 역시 인천의 구도심을 배경으로 한다. 신포동에 위치한 장미빌라에 재개발 바람이 불고, 마을에 보물이 묻혀있다는 소문이 돈다. 할아버지의 보물지도를 들고 온 중국인 소녀로 인해 보물찾기에 혈안이 된 마을 사람들의 이기심이 서로 충돌하며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결국 재개발도 물 건너간다. 묻혀있다던 보물단지는 소녀의 증조할머니의 유골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허탈함을 느끼고 더 크게 갈등한다. 마을의 천덕꾸러기 신세를 받던 젊은 예술가들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함께 축제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축제를 준비하며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하나가 된다.
비록 뛰어난 연기력과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뮤지컬 <보물지도>와 연극 <은하수 사진관>은 인천의 시민들이 직접 자신들이 살아온 모습과 살아가는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특히 구도심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인천의 옛 모습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웃 간의 정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요즘, 시민들과 함께 사라져가는 인천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작품으로 만드는 시도들은 크게 주목할만하다. 인천왈츠와 작업장 봄의 다음 작품을 더욱 기대해본다.
글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인천문화재단, 작업장 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