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혼(잣)말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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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예능 프로그램 <거인의 어깨>는 인문학적 테마를 중심으로 여러 전문가들이 나와 강연을 펼칩니다. 지난 10월에 방영한 ‘혼말의 시대, 너와 나의 대화법’에서 조승연 작가는 혼잣말과 혼말의 차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남이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이 혼잣말, 많은 사람들이 볼 거라는 기대를 갖고 SNS 등에 올리는 말이 혼말이랍니다. 즉, 혼잣말은 자기 자신에게만 하는 말, 혼말은 불특정한 대상에게 하는 말이라네요. ‘혼말’은 사전에 없고 사실 혼잣말이 곧 혼말이죠.

혼자 카메라 앞에 노출된 배우의 혼잣말이 ‘새로운 캐릭터 창조’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기사 제목이 ‘관찰예능 新캐릭터 혼잣말 배우 박신양’이네요. 그는 스페인에서 시작된 방 바꾸기 체험에서 중후한 목소리로 끊임없는 혼잣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모습을 누군가는 ‘진지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허당한 매력’으로 표현합니다.

혼밥, 혼술, 혼영에 이어 혼(잣)말이 시대를 반영하는 아이콘이 됐습니다.

개념미술가로 알려진 안규철 씨는 지난봄 ‘당신만을 위한 말’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물을 변주해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 보이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작품 제목이자 전시 타이틀인 ‘당신만을 위한 말’은 진회색 펠트를 씌운 방음 스펀지 덩어리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 이런 메모를 적어놓았습니다. ‘세상의 말들이 사라지는 소실점이고, 우리의 비밀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고, 진실과 거짓 너머의 영원한 침묵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아무도 알 필요 없는, 오직 당신의 한 마디 말을 위해 비어 있는 독백의 공간이다.’ 작품에 몸과 마음을 묻고 마음껏 ‘혼말’을 하라고 유혹하네요.


다리가 배를 젓는 노로 변형된 ‘노/의자’(왼쪽)와 펠트 천으로 덮인 스펀지 작품 ‘당신만을 위한 말’. 의자는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가구이지만 다리 대신 달린 노에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 현대인처럼. ‘당신만을 위한 말’에 입을 대고 어떤 얘길 해도 다 듣고 묻어줄 것 같다. 

시인 채상우는 자신이 ‘약간 심하게’ 혼잣말 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길을 가다가 신호등에게 “안녕” 인사하기도 하고, 금연 팻말을 향해 “싫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을비가 내리고 난 뒤 아파트 화단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구절초에게 “너희 정말 하얗구나.”라고 말을 걸었는데 놀랍게도 꽃들이 “그래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눙칩니다. 가끔 자신이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는 “그래도 좋다. 나는 사실 혼잣말을 하는 게 아니니까”라고 자신의 습관을 뽐냅니다. 당장 거기 있는 사람은 혼자뿐이지만 자신은 혼잣말 한 게 아니라 ‘대화’를 했다는 거겠죠. 채상우 시인이 소개한 함성호의 ‘혼잣말, 그 다음’이라는 시를 감상해 보시죠.

혼잣말 그 다음―이 도시는
거대한 레코드판이 되었다
어디를 가나 혼잣말이 들려왔다
아파트 단지의 쥐똥나무 울타리를 타고 흐르고
신호를 기다리는 건널목을 가로질러
말하듯 노래하기로 다가오기도 했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에 호수의 물결이
혼잣말로 들린 것도 그 다음이었다
혼잣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했고
혼잣말이 사라진 자리를 단풍나무와 사철나무가
실망으로 우거져 내리어 메운 것도 그 다음이었다

새벽의 골목에서는 혼잣말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포위해 오며 들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혼잣말의 홈을 따라 도는 바늘 같기도 했다

이 도시에 누가 혼잣말을 기록하고 다녔는지
혼잣말은 지하철로에도, 계단에도, 복도에도
유리문의 경첩에서도 투명하게 울려 나왔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혼잣말을
홀로 듣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이 미약한 신호를 증폭시키는
내가 미친 것은
혼잣말, 그 다음이었다

혼잣말은 종종 고독의 증명으로 나타납니다. 나쁜 습벽이고, 고쳐야 할 병증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혼잣말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에 몰입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충고하기도 하죠. 바빠지면 자연스럽게 혼잣말이 멈출 거라고요. 하지만 혼잣말에도 강약과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1 혼잣말이 자기 목소리인지 확인하기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심각한 정신적 문제일 수 있다.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2 혼잣말 내용 확인하기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을 쭉 나열하는가?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계획하는가?
최근에 벌어졌던 일에 대해 설명하는가?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하는가?

자기 대화가 항상 나쁜 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분명히 표현하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힘든 결정(대학을 고를 때, 선물을 고를 때)을 내려야 할 때 신중히 사물과 사건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3 혼잣말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확인하기
긍정적인 자기 대화는 의욕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넌 할 수 있어!”라고 반복하는 것은 기분도 좋게 만들어줄 뿐더러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를 증진시켜준다. 이런 식의 자기대화(혼잣말)는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혼잣말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왜 난 너무 바보 같지?” 또는 “왜 난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지?”처럼 비판적이고 자신을 꾸짖는 식의 혼잣말을 반복한다면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4 혼잣말이 어떤 기분을 주는지 확인하기
누구나 약간 정상에서 벗어날 수는 있다. 그것까지 인간의 정상적인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습관이 아주 가끔씩만 나타나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고, 부정적인 사고의 언어를 내뱉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혼잣말을 하는 빈도에 불안 또는 죄책감이 드는가?
혼잣말이 분노, 슬픔, 초조함을 안겨주는가?
공공장소에서 혼잣말을 하는 것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워서 외부 활동을 피하는가?
위의 질문 중 어느 하나에라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상담사 또는 정신 보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5 다른 사람들의 반응 살피기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특정 반응을 보였다면, 당신의 혼잣말이 불편함을 야기했거나 주변 사람이 당신의 사회적 기능 및 정신 건강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걸어 다닐 때 다른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가?
사람들이 나에게 조용히 하라는 말을 종종 하는가?
주변 사람들이 내가 혼잣말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가?
학교 선생님이 상담을 받아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가?

자주 쓰던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쇼핑하러 갔는데 필요한 물건이 눈에 띄지 않을 때, 물건의 이름을 중얼거리면 더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의 게리 루피안 교수와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다니엘 스윙글리 교수는 성인들에게 서로 다른 물건이 찍힌 20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 중 한 가지를 찾는 실험을 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땅콩버터 단지를 찾거나 냉장고에서 버터를 찾는 식이었죠.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눈으로만 상품을 찾았고, 두 번째에는 물건 이름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는데 후자의 경우에 물건을 더 쉽게 찾았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혼잣말하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연구에서 착안해 이런 실험을 했는데 혼잣말과 같은 ‘자기-지향적 말(self-directed speech)’은 원하는 물건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 위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글을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1. [오후 한 詩]혼잣말, 그 다음/함성호
     아시아경제 2017.10.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혼술-혼밥에 지친 이들아 ‘혼말’을 나눠봐
   동아일보 2017.3.7.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혼잣말 멈추는 법
    위키하우 wikiHow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물건 찾을 때는 혼잣말하며 찾아라
    코메디닷컴뉴스 2012.4.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58회’ 혼자녀의 혼잣말
    네이버포스트, 서툰, 밥숟갈 하나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관찰예능 新캐릭터 ‘혼잣말 배우’ 박신양
    세계일보 2017.10.3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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