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은 콘서트: 올 어바웃 듀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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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보컬리스트 임경은은 2015년부터 보컬과 악기와의 듀오 컨셉의 공연을 해오고 있다. 첫 회는 <Just Duo>란 제목으로 열렸고, 2016년에는 <The Art Of Duo>란 제목으로 열렸다. 올해는 그 세 번째 공연으로 <All About Duo>란 제목을 붙였다. 2015년의 <Just Duo>는 각각 피아노, 기타, 베이스와 스테이지 별로 듀오를 편성해 선보였고, 2016년의 <The Art Of Duo>에서는 새로운 뮤지션뿐 아니라 드럼을 추가로 구성해 색다른 질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 공연에는 피아노와 색소폰, 클라리넷, 비브라폰과 밴드 셋을 선보였다. 매회 공연을 거치며 「재즈」에 근거를 둔 형식적 실험을 이어온 셈이다. <All About Duo> 공연의 1부는 피아노와 색소폰, 비브라폰과의 듀오 연주로, 2부에서는 드럼과 베이스가 가미된 밴드 셋으로 공연이 진행되었다. 

1부 공연은 토크쇼와 닮았다. 보컬의 듀오가 아닌 악기와 보컬의 대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재즈의 듀오, 듀엣은 다른 장르에서 관습적으로 진행되듯 엄정한 룰을 따르기보다는 즉흥에 가까운 상호 교감을 전제로 한다. 형식과 질서 바깥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음악이 복무하는 방식. 임프로바이제이션(improvization), 애드립(ad-lib), 훼이크(fake) 등의 프리 재즈의 용어와 용법을 몰라도 그 순간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All About Duo> 공연이 프리재즈 공연인 것은 아니지만, 요소요소에 그런 임프로바이제이션의 순간들이 존재했고 그것이 공연을 감상하는데 주요한 포인트였던 건 분명하다.

첫 순서는 피아니스트 송영주와의 듀오로 시작되었다. 스탄 게츠의 1981년 발표곡 「The Dolphin」으로 시작한 공연은 곧바로 거슈윈의 「Fascinating Rhythm」으로 이어졌다. 이 두 곡에서 임경은과 송영주는 미묘하게 피아노와 목소리를 주고받으며 때때로 앞서고 뒤따르면서 관객을 미지의 장소로 인도했다. 특히 빈틈없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빈틈을 만드는 구성에서 조용히 음계를 뒤따르던 관객들은 기대하지 못한 풍경을 만난다. 3분 가까운 피아노 솔로가 이어지는 부분에선 예측을 비껴나는 진행으로 내내 듣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맞다. 이토록 듣는 행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공연은 오랜만이었다. 새삼, 좋은 음악이란 관객 혹은 청자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컨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들려주는 행위란 연주자와 관객이 모종의 힘겨루기라는 것이다. 그 팽팽한 긴장이 충만한 순간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으로 관객을 이끄는 공연은 곧이어 색소폰/클라리넷 연주자 여현우와의 무대로 이어졌다. 여기서는 몽크의 「파노니카(Pannonica)」와 임경은의 신곡 「듀엣」을 선보였는데, 「듀엣」은 사실상 이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기도 하다. 「파노키아」가 낭만적인 색소폰 음색을 배경으로 여성 보컬이 나비처럼 우아하게 비행하는 곡이라면, 「듀엣」은 보컬과 색소폰의 교감이 좀 더 적극적으로 진행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탐닉하는 곡이다. 색소폰의 묵직한 사운드가 가벼운 보컬을 쓰다듬는다 싶으면 보컬이 그 소리를 타고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이런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상당한 텐션을 만드는데,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약간의 우울감을 가미한 아름다움이 흐르는 곡이다. 마치 찰나에 타올랐다 사라지는 저녁노을 같은 곡. 공연장에 있던 관객들 모두 이 순간적인 비장함에 압도당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크리스 바가의 비브라폰 연주와 임경은의 보컬이 어울리는 무대였다. 앞서 「듀엣」 공연은 토크쇼와 같다고 말한 바, 크리스 바가의 경우엔 이런 특징이 훨씬 도드라졌다. 그는 빌 에반스의 「My Bell」과 「No More」 두 곡을 연주했는데, 이 곡은 비브라폰의 영롱하고 신비로운 음색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공연 중 임경은이 언급한 대로, 크리스 바가의 신비로운 회색 눈동자와도 어울리는 곡이기도 한데, 앞서의 스테이지가 통제와 자율, 소통과 교감이 교차할 때 분출되는 에너지가 주도했다면, 크리스 바가의 스테이지는 말로 전환되지 않는 모호함과 신비함이 주도했다. 언어가 아닌 감각에 기댈 수밖에 없는 공연, 이 10여 분의 무대에 대한 여운이 꽤 오래 갔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3개의 무대가 끝난 뒤, 2부에서는 송영주, 여현우, 브리스 바가가 모두 무대에 위치하고 베이시스트 김호철과 드러머 신동진이 착석해 밴드 셋의 공연을 선보였다. 1부가 연주자와 보컬리스트의 상호교감에 집중하며 내면적인 무대를 선보였다면 2부의 밴드 셋은 외향적인 사운드를 주로 선보였다. 이런 구성이 무대에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하며 관객과의 교감을 더 발전시킨 것도 당연하다. 1부의 관람을 통해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다가 2부에서는 긴밀하게 밀착되는 경험은 꽤 신선했고, 기획 재즈 공연을 촘촘하게 설계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공연이란 결국 무대 위에 선 음악가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자, 객석에 앉은 관객들과의 소통이라는 점을 새삼 환기시키는 구성이었다.

2부는 김호철이 이 공연을 위해 새로 작곡한 「Invisible Things」로 시작했다. 묵직한 무게감보다는 가볍고 경쾌한 산책 같은 느낌의 곡으로, 중반부에 이른 공연의 흐름이 반전되었는데, 곧 이어진 빌 에반스의 「Five」에서 이런 경쾌함은 더욱 강화되며 공간을 그야말로 「재즈적인 사운드」로 채웠다. 우리는 자유분방하면서도 무질서한 규칙, 일견 모순적이지만 감각에 집중할 때 자연스레 알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재즈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음악이야말로 애초에 규격화되지 않은 미학이 지배하는 분야이고, 그 자유로움은 규칙을 깨면서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규칙 없는 규칙’에 가까운 것이다. 소위 원초적인 쾌락이야말로 음악의 본질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공연이었다.

이어 모두에게 익숙한 스탠다드 명곡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과 빌 에반스의 「Blue In Green」을 절묘하게 결합한 연주와 보컬, 색소폰, 드럼, 비브라폰, 피아노와 베이스가 겹겹이 쌓이는 「No wonder」를 끝으로 공연은 마무리되고, 앵콜로는 「Tangerine」이 연주되었다. 전반적으로 잘 설계된 공연이었고, 신곡을 두 곡이나 접할 수 있어서 의미가 깊었던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임경은이라는 보컬리스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 연주를 들려주는 기획이 돋보였다. 결과적으로 이 공연은 재즈를 소재로 삼은 토크쇼이자 큐레이션이자 컴필레이션인데, 이런 형식적 실험이 재즈를 즐길 만한 것, 다시 말해 팝처럼 만만한 음악으로 여겨지게 하는 거란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든 우리에겐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할 것이다. 관객, 대중, 혹은 소비자들과 음악이 만나는 더 많은 접점이 요구되는 시대에 <All About Duo>는 재즈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완성도와 친근함을 높이는 공연을 성사시켰다. 이 점이야말로 이번 공연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글/ 차우진 평론가
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민경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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