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콕콕] ‘욜로(YOLO)’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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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 번뿐이다, 지금을 즐겨라, 아득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인내하지 말라,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라!

2017년 대한민국은 ‘욜로(YOLO) 권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욜로는 2004년 미국의 리얼리티 쇼 출연자인 애덤 메시가 처음 썼고, 2011년 캐나다 출신 래퍼 드레이크가 가사에 욜로를 사용하며 널리 퍼졌습니다. ‘좌우명(The Motto)’이란 곡에서 그는 ‘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 nigga YOLO’라고 노래했죠.

국내에서는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편’을 통해서 알려졌습니다. 배우 류준열이 캠핑카로 아프리카를 혼자 여행하는 여성에게 놀라움을 표하자 그녀는 ‘YOLO’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이 영상이 전파를 타고 번지면서 욜로는 ‘여행’과 더불어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향유하는 욕망의 아이콘으로 소비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인내의 요구에 갑갑함을 느꼈던 청년들은 현재를 즐기라는 욜로의 부추김(?)을 희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줄지 않는 청년 실업률, 경기 침체 등에서 탈피해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던 거죠. 안락함에서 만족을 찾는 덴마크의 ‘휘게’, 느긋한 삶을 누리는 프랑스의 ‘오캄 라이프’처럼 욜로도 ‘일상과는 다른’ 달콤한 행복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취업전문사이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2-30대 남녀의 84.1%가 욜로족, 혹은 욜로 라이프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현재를 즐겨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네요.

TV도 이런 흐름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MBC ‘무한도전’은 욜로 라이프 특집을 방송했고, 올리브 TV의 ‘어느 날 갑자기 100만원’은 출연진이 백만 원으로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낭만적인 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에피소드를 담은 ‘윤식당’, 한가로운 시골에서 세 끼 밥을 해먹는 반복되는 삶을 그린 ‘삼시세끼’ 등에도 욜로 라이프가 반영됐네요.

영미권에서는 욜로가 ‘중2병스럽게’ 쓰이는 속어라고 합니다. 미숙한 이들이 무모한 짓을 저지르기 전에 핑계처럼 대는 말, 자신의 치기 어린 행동을 꾸미는 포장 언어라는 인식이 있답니다. 배우이자 뮤지션인 잭 블랙은 SNS에 “YOLO는 라틴어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카르페 디엠’ 대신 쓰는 말이 분명하다”고 올리기도 했네요.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현재의 행복을 위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며, 욜로족과 욜로 라이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말은 마케팅으로 활용하기 쉬운, ‘선동적인 멘트’라는 겁니다. ‘지르자!’, ‘하고 싶은 건 하자!’는 구호를 현재의 자기만족에 대입하기 시작하면 먹고 싶은 건 먹고, 가고 싶은 데는 가고, 갖고 싶은 건 다 갖자는 식으로 얼마든지 가지를 뻗을 수 있습니다.

‘무한도전’의 욜로 특집은 멤버들이 방송국에서 준 진행비로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스쿠터를 사고, 한 끼에 20만원 하는 고급 호텔요리를 먹고, 드론을 띄우고, 부모님께 꽃배달을 합니다. (남의 돈으로) 마음껏 지르는 거죠. 예능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의 소비는 크게 무리하지 않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꽃보다 청춘’의 좌충우돌 여행은 제작진의 진행과 염려 안에서 안전하고, ‘윤식당’ 출연자들은 사업 실패에 대한 리스크 없이 일하면서(촬영하면서) 돈을 법니다. 시청자들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탕진하는지, 낯선 외국에서 어떻게 식당을 꾸려나가는지를 궁금해하고, 그들의 행위에서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나의 욜로’는 없고 ‘당신의 욜로’는 저기 있네요.

매년 발행되는 소비 트렌드 분석서 <트렌드 코리아 2017>은 혼밥, 혼술, 1인 경제, 미니멀리즘, 욜로 라이프 등을 현재 지향적 사고가 반영된 올해의 키워드로 꼽았지만 20대들은 욜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이상’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에서 홧김에 돈을 쓰는 ‘시발비용(비속어 시발과 비용이 결합)’, 재물과 재산을 허투루 써서 몽땅 없앤다는 뜻의 탕진과 재미가 결합된 합성어 ‘탕진잼’ 같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죠.

최근 욜로적 소비보다 절약하는 습관을 일컫는 짠돌이 문화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김생민은 의뢰자가 보낸 한 달 치의 영수증을 분석한 뒤 재무 설계를 해줍니다. 충동적인 지출에는 ‘스튜핏(Stupid·멍청이)’, 아껴 쓴 사례에는 ‘그뤠잇(Great·훌륭해)’이라고 외치죠. 그 영어 단어는 금세 유행어가 됐고, ‘생민하다’, ‘생민스럽다’는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돈은 안 쓰는 것이다’, ‘저축은 공기와 같은 것’, ‘커피 마시지 말고 면수(국수 삶은 물)를 마셔라’, ‘샴푸 값이 많이 드는 긴 머리는 잘라라’, ‘껌과 커피는 누가 사줄 때 먹는 것’ 등은 모두 ‘생민하다’는 신조어에 담긴 뜻이라네요.

경제관념을 정립해준다는 취지는 좋지만 2017년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커피 몇 잔 덜 마시면 OOO를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은행 정기예금 이자가 25% 안팎이었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욜로 신드롬은 다 이 광고 속 노랫말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그때 사람들은 그 노래를 이렇게 패러디해서 불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망하셨지, 인생을 즐기다…”

“정말로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구호가 필요하지 않다.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이야기만큼이나 마땅하고도 중요한 사실은, 누구나 자기 인생을 산다는 거다. 걱정 없이 지금만 즐기는 듯 보이거나 앞날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듯 보이거나, 결국 하나뿐인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다.” -황선우, ‘욜로의 50가지 그림자’ 중에서

 

*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1. ‘욜로 라이프, 현재에 충실하라!’
   이미선, 에이비로드, 2017년 2월호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2. ‘YOLO(욜로)’, 영미권 속어인데 한국서는…
   매일경제, 2017.7.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3. 20代 해외여행 11년새 고작 0.7%P ↑… ‘젊은 욜로族’은 허상
    문화일보, 2017.10.11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4. 욜로에 반기 든 짠돌이 청년들
    아시아경제, 2017.10.9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5. 욜로의 50가지 그림자
    두산매거진, 2017.9.1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6. ‘욜로’의 의미를 되짚어봐야 할 때
    한국금융신문, 2017.9.23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7. 욜로 대신 짠돌이 갈아탄 2030 ‘김생민 신드롬’
    스카이데일리, 2017.10.5 (자세한 내용 보러가기▶)

 

글, 이미지 / 이재은 뉴스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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