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뮌스터와 카셀로 떠난 미술탐방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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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레지던시 입주작가들과 함께 독일에서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와 카셀 도큐멘타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호 지구별 문화통신에서는 탐방에 참여한 2분의 작가님을 통해 독일의 뮌스터와 카셀 소식을 전합니다.

 


《조각프로젝트 2017(Skulptur Projekte 2017)》와 《도큐멘타 14(Documenta 14)》를 관람하기 위한 탐방 여행을 다녀왔다. 올해는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유럽여행을 한번쯤은 고려하는 소위 ‘그랜드투어’의 해다. 정확히 10년 전에도 유럽의 대표적인 4대 미술행사(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쿠멘타, 뮌스터조각프로젝트, 아트바젤)를 탐방하는 여정의 ‘그랜드투어’의 붐이 일었다. 그해 여름, 유럽에 방문했던 나는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를 관람했지만 일정이 허락지 않아 나머지 행사들은 방문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올해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지원으로 레지던시 동료 입주작가들과 독일의 뮌스터(Münster)와 카셀(Kassel)에서 각각 열리는 두 행사를 관람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 탐방을 가기 몇 주 전부터 동료작가들과 몇 차례의 강연을 들으며 각각의 행사가 출범하게 된 역사적 계기와 현재까지의 전개과정에 대해 사전 학습을 했기에 떠나기 전부터 큰 기대와 궁금증을 안고 있었다.

조각프로젝트 2017, 시가 흐르는 도시
울창한 숲길과 호수, 낮은 건물과 그 위로 드러나는 하늘이 인상적인 도시 뮌스터에서 《조각프로젝트》가 처음 개최된 것은 1977년이다. 10년을 주기로 열려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뮌스터에 도착하자마자 하나라도 작품을 더 볼 생각에 마음은 분주했다. 올해 프로젝트를 계기로 새로 선보인 예술가 36명(팀)의 작업과, 1회부터 4회까지 전시 후 뮌스터에 영구적으로 설치된 ‘퍼블릭 컬렉션’ 38점이 도시 전역에 설치되어 있다. 미술관 및 전시공간, 공원과 외부공간에 산재한 작품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지도를 통해 도시 전체를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어떻게 이동해야 효과적인지 동선을 짠 후, 도시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움직여 헤매고 그곳을 체험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종이에 인쇄된 지도, 구글맵 등의 어플리케이션이 필요하고,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을 갈 때는 자전거를 빌려 이동할 수 있다.

호수가 시작되는 풀밭에서 발견한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의 <Giant Pool Balls>, 도심 골목에서 청량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다니엘 뷔랭(Daniel Buren)의 <4 Gates>, 숲 속에서 만난 댄 그래험(Dan Graham)의 <Octagon for Münster>, 땅 밑으로 침하되는 경험을 주는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의 <Square Depression>, 이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심심찮게 등장하는 토마스 슈테(Thomas Schütte)의 <Cherry Pillar> 등의 작품들을 그렇게 찾아다니며 만날 수 있었다. 이 도시에 사는 거주자들은 이 작품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하나의 일상일 뿐이겠지만, 방문객으로서 나는 마치 도시를 지시하는 응축된 시어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일리야 카바코프(Ilya Kabakov)의 작품을 보면서 시와의 비유를 떠올렸는데, 그의 작품에서 정말 시를 만났기 때문이다. 높이 솟은 안테나 모양의 작품을 올려다보면 허공에 시가 적혀 있고 이를 읽기 위해서 관람자는 누워야만 한다. 몸을 기울여 누워 시를 읽다보다 보면 자연스레 뮌스터의 하늘을 볼 수밖에 없고 풀의 촉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처럼 뮌스터에서 작품과의 만남은 이 도시의 자연과 주변 환경을 돌아보게 하고 그곳의 삶을 가늠하게 하는 것이었다.

뮌스터의 자연과 삶의 시간이 또 다른 방식으로 압축된 작업들도 많은 이들의 흥미를 끌었다.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는 뮌스터 시에서 시민에게 할당해 준 농장을 경작하는 이들과 협업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는 이들에게 10년 동안 식물들과 기후의 상태를 기록하고 농장의 일상을 일기로 기록하도록 요청했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30권의 책으로 묶어 이를 전시하였다. 무려 10년이란 시간의 결과물은 동일한 형태의 책 속에 담겼지만, 책을 열면 농장에서 보낸 각자의 삶은 개별화되고 구체화되어 펼쳐진다. 직접 쓴 일기, 전통행사나 사소한 모임들의 기록, 각종 사진, 날씨보도나 경작에 관한 내용의 신문 스크랩, 때로는 아무 기록이 없는 공백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을 이어간 것을 볼 수 있다.

인상적인 작품 중에는 삶의 면면을 다루기보다는 보다 큰 우주적 시각을 보여준 작업도 있었다.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는 작년에 폐장된 아이스링크의 내부공간을 변화시키는 작업 <After ALife Ahead>를 선보였다. 땅을 파내거나 쌓아 굴곡진 언덕과 웅덩이를 만들고, 콘크리트와 자갈들이 널려 있다. 고동과 해조류가 사는 수조가 있고 벌과 벌집이 보이고 한 켠에는 푸릇한 새싹들이 무리지어 나고 있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현장에서는 몰랐지만 인큐베이터에 증식시킨 암세포도 있었다고 한다. 천장에는 열고 닫는 기계장치가 장착된 피라미드 모양의 창이 있다. 생명체와 무생명이 공존하는 현장은 인간의 삶 너머 행성의 파국 및 재건과 함께 억만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듯 했다.
본질적이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할 것만 같은 미술작품도 실상 트렌드에 민감하고 변화가 빠르다고들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세월의 거리를 두고 보면 빠른 것처럼 보이는 그 걸음이 오십보백보이거나 제자리인 경우도 허다하다. 뮌스터의 조각프로젝트는 1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흐른다. 도시의 자연과 일상 속에서 시가 된 조각들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 조각이라는 매체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하고 도시 공간과 공적 영역에서 그것을 실험해 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도큐멘타 14, 기록과 증언의 바다
독일의 중부 도시 카셀에서 열리고 있는 《도쿠멘타 14》는 《조각 프로젝트 2017》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조각 프로젝트 2017》이 조각이라는 미술의 매체를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도쿠멘타 14》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된 의제를 시작으로 미술의 실천과 담론을 조직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최 당시의 정치·사회·경제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제까지의 도큐멘타 전통을 이번에는 어떻게 이어갈까. ‘아테네로부터 배우기’라는 이번 주제는 사회정치적 이슈와 미술 실천의 접점을 어떻게 드러낼까. 카셀과 함께 공동 개최지로 지목한 아테네를 지금의 유럽에서 지정학적으로 시급한 의제로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운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치적 첨예함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도쿠멘타의 명성과 이번 주제가 주는 낯섦은 가기 전부터 이런저런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아테네’라는 지리적 설정은 현재 유럽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묵직한 이슈라는 것은 행사의 메인 광장인 프리드리히광장(Friedrichsplatz)에 도착하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광장에 설치된 마르타 미누힌(Marta Minujín)의 <The Parthenon of Books>은 아테네의 파르테논을 1:1 비율로 제작한 후 건축물의 외면을 십만 권의 금서로 둘러싼 작품이다. 이곳 광장에서 나치가 엄청난 양의 책을 불태운 사건이 있었고, 도쿠멘타의 출발이 이에 대한 반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아테네 파르테논은 서구 문명의 우월성과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정체성이 각인된 곳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해 온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불안정성이 노정되어 있어 위협받을 수 있다는 통찰이 이 작품과 함께 하는 것 같다.

광장의 또 다른 한편에는 히와 케이(Hiwa K)의 작품 <When We were Exhaling Images>가 설치되어 있다. 나란히 쌓아올린 오렌지색 파이프의 내부에 소소하고 사적인 물건들을 배치하여 누군가 살았음직한 흔적을 남겨놓았다. 난민들이 임시로 거주하는 실제공간처럼 구현한 것이다. 이를 접하면서 아테네가 시사하는 바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최근의 아테네는 그리스의 경제 위기, 협력 체제로 출범한 유럽연합의 갈등의 심화, 지구 곳곳의 난민과 이주민의 문제, 테러 위협과 삶의 불안정성으로 확장되는 여러 문제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이번 도쿠멘타는 카셀의 35개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전시와 퍼포먼스 외에도 영화, 다큐멘터리 상영과 퍼블릭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되었지만 모두 관람하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했다. 주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 예전의 우체국 건물을 전시공간으로 사용하는 노이에노이에갤러리(Neue Neue Galerie), 도큐멘타 전용 전시관인 도큐멘타 할레(Documenta Halle), 노이에갤러리(Neue Galerie), 카셀중앙역(Kassel Hauptbahnhof) 등 주요 전시공간을 중심으로 관람하였다. 전반적으로 시각적 스펙터클을 강조한 작업보다는, 크고 작은 역사, 대안적인 기억들, 주목받지 못했던 사건의 기록과 내러티브를 집요하고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작업이 많았다.

방대한 양의 작업들 속에서 내가 대면한 것은 도쿠멘타의 명칭처럼 기록과 증언이었다. 수많은 시각이미지와 자료들이 전쟁과 역사, 개인의 기억과 삶의 흔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증거하고 있었다. 기록과 증거의 목록은 방대했지만, 무엇보다 주변적이고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들에 더 관심이 갔다. 프리데리치아눔의 지하 전시장에 상영되는 벤 러셀(Ben Russell)의 작품 <Good Luck>은 수리남의 불법 금광과 세르비아의 국영 구리광산의 광부들과 작업현장,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일상을 기록한다. 노이에갤러리에서 전시된 <Rose Valland Institute>는 유럽의 유대인이 소유했던 재산의 몰수와 그 영향력을 조사하고 기록한 예술 프로젝트이다. 전쟁 후에 나치가 몰수한 예술품의 반환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전시장에는 이와 관련한 자료들을 전시하였다. 또한 생전에 카셀에서 활동한 예술가이자 두 팔을 모두 잃어 장애가 있었던 트랜스젠더 로렌자 뵈트너(Lorenza Böttner)의 드로잉, 페인팅, 그리고 아카이브 자료들은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역동적이었던 개인의 삶을 증언하고 있었다.

여행은 미적·문화적 산물을 통해 도시의 면면을 이해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예술작업의 의미가 도시의 맥락 속에서 확장되는 효과를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는 여정이다. 다른 삶과 도시, 그곳의 문화를 접하는 경험은 늘 새로운 관심거리와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계기가 되곤 한다. 도큐멘타 참여작가인 올리버 레슬러(Oliver Ressler)의 작품에 나온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어쩌면 오래된 질문을 되뇌고 있다. 도쿠멘타에서 접한 유럽의 정치적 상황과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들에 치열하게 반응하는 미술실천들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시아 한국의 상황 속에서 시차와 거리감을 느끼는 내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 이정은

삶과 사회에 대한 소소한 관심들을 전시기획과 미술비평으로 풀어내며 살고 있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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