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인천의 문화적 가치로 가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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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가우디란 천재 예술가가 도시 전체를 채색한 바르셀로나도 아니고, 땅 위와 땅 밑에 2000년의 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도(古都) 경주도 아니다. 그러나 얼마 전 개방된 미추홀 백제의 역사가 서려있는 문학산성, 강화 고인돌이나 고려 문화유산 등이 오랜 역사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고, 근대 개항 후의 문화유산들은 구청 일을 보러 다니면서도 손쉽게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친다. 인천의 자랑거리로 근대건축물을 보존하자던 한 민간단체의 외침 등 민관의 많은 노력으로 20여 년이 지난 요즘, 주말이면 자유공원 일대 차이나타운 거리는 수많은 인파로 넘쳐난다.

시간의 역사는 항상 자연 지리적 장소 속에서 펼쳐졌다. 인천은 바다에 접해 일찍이 항구에 배가 드나들었다. 근대개항과 더불어 서구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하였으며, 동란으로 찢어진 북한과도 가까워 이북 피난민들이 모여 드는 보금자리 역할도 하였고, 산업화 시대에는 주안·부평·남동공단에 전국 팔도 주민들이 모여 용융되는 용광로 역할도 하였다. 이런 인적 자원의 구성은 인천의 특성도 만들어 냈다. 벌써 공단으로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과 최근 송도신도시의 여러 국제기구들, 국제학교로 여전히 유입되는 외국인들을 바라보면, 인천의 지정학적 특성을 새삼 깨닫는다.

(사)해반문화는 1999년 ‘열려있는 땅 인천’ 인천 지역 엘리트 정주의식 조사보고서에서, 바다와 항구라는 입지가 인천의 특성으로 개방성과 다양성, 포용성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인천공항과 송도신도시, 신항만 등이 또 하나의 정체성으로 미래를 향한 역동성을 추가하고 있다. 필자는 2년 전 59회 해반문화포럼에서 “구도심의 과거와 신도심의 미래를 연결하는 데 인천 문화의 비전이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많은 이들이 그간 인천의 정체성에 대해 여러 탐색을 해왔고 나름대로 가꾸어 왔다. 최근 인천시의 가치재창조 작업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문화재가 귀중한 까닭은 그 안에 선조들의 삶의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고, 정작 문화에서 귀중한 것은 대체로 눈에 안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눈으로 보아야만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어서,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그 흔적인 건물이나 외양에 치중해 두기 쉽다. 그러나 달동네박물관의 1960~70년대 단칸방 헌 이부자리에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살을 에는 한 겨울 추위 속에서도 옹기종기 서로의 발을 디밀어 한기를 체온으로 녹였던 그 따스함 때문이었고, 방 한 구석 밥상을 겸한 책상 위에 놓인 동생들의 교모(校帽)를 위해 기꺼이 중동과 월남, 독일로 나갔던 오누이들의 희생적인 사랑 때문이었다. 한국 근대화를 이끈 시대정신,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그 이부자리에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눈에 안 보이는 것들, 홀로 시험 보며 자존감을 키우는 수 십 년 전통의 무감독 고사의 정신을 자율적 시민의식으로 접목시킨다든지, 한국 최초로 어린 여성들이 학교를 다니며 남녀차별을 넘어섰던 사립학교의 정신을 기린다든지, 팔도민이 모여 살며 체득한 지역감정 너머의 자유스런 개방성을 인천의 긍지로 삼는다든지, 168개의 천혜의 섬들을 그대로 후손에게 넘겨주는 자연 보존 의식을 가꾼다든지, 앞으로 우리가 문화적 가치로 만들어나갈 것은 도처에 있다.

어느 땅이든, 그 땅에 사는 사람에 걸맞은 문화가 있다. 유명세를 떠나 지역민이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에 따라 문화적 가치가 가름된다. 사실 내 주변을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보다 더 문화적인 것이 있을까? 문화란 가꾸어나가는 것이란 점도 주목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아끼고 보존하여 미래의 문화적 가치로 가꾸어 나갈 것인가 하는 선택과 열정이 문제이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추모하는 추도사에서, 케네디는 그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가 무엇을 기리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인천의 문화적 가치라고 여기고 기렸는가? 찬찬히 한번 생각해 보자.

 

이흥우 (사)해반문화 명예이사장,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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