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율 개인전 <순환의 여행: 방주와 강목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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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부터 3월 27일까지 한 달에 걸쳐 차기율 작가의 <순환의 여행: 방주와 강목사이>가 인천 동구에 소재하고 있는 우리미술관 전시관에서 열린다. ‘우리미술관’도 ‘차기율’작가도 <순환의 여행: 방주와 강목사이>라는 타이틀도, 나에게는 세상 생소한 단어들인지라 어쩐지 멍한 정신상태로 처음 이 미술관과 마주하게 되었다.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어떤 틀을 깨버리는 작고 소박하며 우리미술관 아기자기한 문패가 이상하게 자꾸 눈이 간다. 작은 입구, 그 옆에는 작은 팸플릿과 도록이 줄 서 있는 작은 테이블, 작은 소파, 작은 방명록, 그리고 더 들어가면 작은 전시관이 있었다.

우리미술관?
전시관은 몇 걸음 걸을 필요 없이 한눈에 작품들이 들어올 정도로 자그마했다. 어쩐지 특이하게 기울어있는 벽면이 눈에 띄었다. 온통 하얀 공간에는 공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작가의 작가노트가 하얀 벽에 가지런하게 프린트되어 있었다.우리미술관은 인천문화재단과 인천광역시 동구청이 상호 협력해 운영 중 인 만석동에 있는 작은 미술관이다.

‘모두에게 열린 문화 예술 사랑방’이라는 소개를 달고 있는 우리미술관은 누구나 개방된 시간에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과, 여러 가지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교육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 공간에서는 말 그대로 ‘우리’들에게 문화예술에 관한 열린 문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는 이미 차고 넘치는 멋진 공간들이 많다. 많은 만큼 잘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곳 인천 동구는 어떨까. 매일매일 사람으로 차고 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거리 안에 따듯한 미술관 하나가 작게 빛을 밝혀주고 있었다.


인간과 자연 – 순환의 여행
그 따듯한 공간 안에는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의 거대한 오브제가 있었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작품의 맞은편에는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 모자이크처럼 배치해 놓은 또 하나의 작품이 걸려있고, 그 오른편 벽에는 그 둘과는 또 다른 흑연으로 스케치 된 드로잉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언뜻 보면 같은 작가의 작품인가? 의아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전시의 제목과 작품들이 모두 하나로 융합된다. 전시의 제목 안에 있는 단어 중 ‘방주’는 서양문명을, ‘강목’은 동양의 자연을 나타낸다고 한다. 인간과 자연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이미 함께 존재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가 없다. 인간은 자연에 속하면서 또 자연과 다른 개념이다. 태어나기를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라기를 자연에서 자라며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인간의 삶 속에 오로지 자연만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어떤 때에는 자연을 일방적으로 갈취하기도 한다. 이런, 마치 오래된 부부처럼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이 관계를 작가는 ‘순환’이라는 개념으로 풀어간다. 순환. 이렇게 완벽하게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을까. 

방주와 강목사이 – 불의 만다라
한쪽 벽면과 바닥을 꽉 채운 거대한 이 작품은 ‘고고학적 풍경 – 불의 만다라’라는 제목을 걸고 있다. 갯벌에 사는 게들이 만든 집을 노천소성(이것도 아주 생소한 단어, 쉽게 말하면 야외의 뜨거운 가마에서 도자를 구워내는 것)의 과정으로 구워내 켜켜이 배치한 설치 작품이다. 제목에 있는 ‘방주’와 어쩐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이 작품은, 갯벌의 흙으로 만들어져 있다. 여러 미술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재료들 중에서 먹이나 흙과 같은 인공보다는 자연과 더 가까운 재료들의 공통점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예민하여 다루기 어렵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마치 숨을 쉬는 듯 생생하다. 작은 빛이나 습도 등에도 변형될 위험을 무릅쓰고 탄생한 작가의 작품은 건드리면 무너질 듯 약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단단해 보이는 외유내강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만다라는 본질에 대한 깨달음의 표현이다. 인간과 자연의 본질에 대하여 수없이 많은 고민과 성찰을 한 작가의 어떤 가치관이 아닐까. 작가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느껴지는 다른 한 가지 작품은 검게 탄 대지를 표현한 드로잉 작품이다. 성인 남성의 상체만 한 크기의 캔버스에는 김(?)을 연상시키는 검은 그림이 담겨있다. 자세히 조명에 비친 그림을 보니, 까맣게 채운 것이 아니라 자잘한 검은 선들이 모여있었다. 불에 탄 대지를 표현했다는 이 작품 또한, 연필심의 재료가 되는 흑연으로 그려졌다. 불에 탄 대지에 남은 것으로 불에 탄 대지를 표현한다. 미술작품이라는 것은 캔버스 안에 있는 어떤 형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 형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작가의 고민,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재료, 이것들이 모여서 여러분이 보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쯤 되니, 중구난방처럼 보이던 작은 공간 안의 작품들이 한데 모여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아닌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방주와 강목 사이를 순환하는 여행
우리는 ‘나’에 대해 생각한다. 가끔, 생각하지 않는다. ‘너’에 대한 생각을 한다. 가끔,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는 생각한다. ‘나’와 ‘너’와 ‘우리’와 ‘그것’을 생각한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그렇게 파고드는 와중에 떠오르는 것들을 표현한다. 공간과 작품이 어우러지기에는 대단히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작가의 인생이 담긴 작품과, 그것을 공간에 잘 붙인 전시를 만나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기분 좋은 일은 너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우리미술관을 뒤로하며 돌아가던 길에 든 생각이다.

 

글·사진/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이은솔
작품사진/ 권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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