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구 온마을학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이라는 이 말은 한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도록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한 가정만의 책임이 아니며, 이웃을 비롯한 지역사회 또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농경사회였던 과거에는 마을의 이웃끼리 두레나 품앗이를 통해 서로의 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가정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돌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각기 달라졌고, 이웃의 개념 또한 변했다. 한 마을이 정으로 끈끈하게 뭉치던 과거와는 다르게 현대 도시에서는 이웃끼리의 교류도 극히 드물어졌다.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얼굴을 마주할 시간조차 부족한 사회에서 마을의 아이들을 서로 돌봐주고 관심을 갖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진 것이다. 또한 대가족이 한 집에 모여 함께 살던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에서는 가족구성원 내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핵가족이 보편화되고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혼자 남겨지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되고 학교가 되었던 가정과 마을이 시대의 변화로 인해 그 모습을 잃은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학교를 만들려는 노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정과 학교로 한정되었던 교육의 주체를 지역사회로 확대하여 지역 주민들이 직접 지역의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인천 남구에서는 2년째 <남구온마을학교> 사업을 통해 마을이 함께 마을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와 교육청(학교), 그리고 마을 주민이 연계하여 운영하는 이 사업에는 남구 전역의 33개 마을학교가 참여하여 35개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남구에서는 다양한 주체가 다양한 교육내용과 관점을 가지고 마을의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만큼 아이들이 다양성을 포용하는 성인으로 자라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8월 5일 <남구온마을학교>의 프로그램 중 ‘생태숲환경교실’과 ‘사랑팡만들기’ 프로그램을 방문했다. ‘생태숲환경교실’은 인천환경운동연합에서 운영하는 수업으로, 수봉공원에서 2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생태탐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올 여름 가장 더운 날, 초등학교 2, 3학년으로 구성된 스무 명의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잠자리채를 들고 숲속을 누비고 있었다. 숲 해설가로 활동하며 프로그램의 강사를 맡은 김도연 씨는 ‘이전에는 인천환경운동연합 소속 회원들의 자녀들을 데리고 한 달에 한 번 생태탐사 소모임을 운영했는데, 남구온마을학교 수업을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좋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임에도 주변에 어떤 나무가 있고, 어떤 곤충이 살고 있고, 계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온마을학교를 통해 마을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며 ‘더 많은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사업비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예산이 부족하여 프로그램을 짧게 진행하고, 더 많은 아이들을 모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남구온마을학교>에 더 바라는 점을 밝혔다.
‘생태숲환경교실’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는 학부모 천미정 씨는 “학교나 학원만 가기 때문에 뛰어놀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밀폐된 공간이 아닌 야외에서 수업하는 것을 아이가 굉장히 좋아한다. 곤충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집에 와서 매미를 잡은 이야기를 하면서 수컷 매미와 암컷 매미의 차이점을 설명하더라. 평상시 가족들과 수봉공원을 찾았을 때는 산책만 하고 흙놀이만 조금 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수업을 들은 이후에는 가족들에게 직접 곤충들에 대해 설명을 한다. 직접 손으로 매미를 잡더니 작은 매미는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에 가족들이 모두 놀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유익한 프로그램인데 너무 짧게 구성되어 아쉽다. 상반기에는 신청자가 많아 참여하지 못했는데, 하반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적 협동조합 ‘사랑팡’에서도 역시 온마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방과후학교 또는 동아리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진로체험과 봉사체험을 제공했던 ‘사랑팡’의 이기욱 강사는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남구온마을학교>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중,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수업시간에 만든 빵과 쿠키를 지역의 보육원에 보내고 있다. 학생들이 지역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진로를 체험하고, 이것이 봉사활동으로 이어지며 지역사회에 또 다시 기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사랑팡 만들기’에 참여하는 노상우 학생은 “온마을학교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 시간에는 시간을 허비하는 느낌이 컸다. 하지만 주말에 온마을학교에 나와 제과제빵을 배우고, 봉사활동도 할 수 있어 뿌듯하다. 빵을 만드는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빵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마무리하는 과정을 모두 함께 경험하며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수업을 듣고 있는 남구청소년수련관에는 제과제빵을 위한 시설이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아 아쉽다. 더 좋은 시설이 생긴다면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날도 매일 나오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온마을학교도 개선해야 할 한계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온마을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은 여타 사회문화예술교육이나 방과후학교 등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과 큰 차별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업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온마을학교만이 가지는 변별성에 주목하고 그를 특화해야 한다. 온마을학교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여타 공모사업과는 달리 ‘주민참여형’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체를 단체나 기관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한 동아리까지로 확대한 것이다. 멀리서 전문가를 섭외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이웃의 평범한 어른들이 각자 자신이 가진 특기와 재능을 살려 삶의 지혜를 전수한다.
실제로 올해 온마을학교 주민참여형 프로그램인 ‘그림으로 만나는 마을여행’을 기획하고 운영 중인 ‘독서치료연구회’는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독서치료를 알게 된 마을의 주민들이 스스로 동아리를 조직하여 지속적인 학습모임을 가지고, 교육의 수혜자였던 그들이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아이들의 교사가 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주민참여형 프로그램의 공모가 별도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단체나 기관과 같은 기준으로 심사에 오르기 때문에 전체 35개 프로그램 중 4개의 프로그램만이 주민참여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이 사업비 정산과 같은 행정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주민참여형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일반 주민들을 마을강사로 육성할 수 있는 별도의 양성과정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가정과 학교의 돌봄이 부족한 아이들을 마을이 돌본다는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프로그램들이 입소문을 타고 큰 인기를 얻으면서 소위 말하는 ‘치맛바람’을 일으키는데 일조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선착순 접수를 받고 있어 실제로 일부 프로그램은 빠른 시간 안에 접수가 마감되고 수많은 대기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보력이 뛰어난 학부모들이 발 빠르게 나서야만 수혜를 선점할 수 있다는 점은 사업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온마을학교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온마을학교를 확대하고, 마을의 돌봄이 더 많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교육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도록 연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남구온마을학교>는 존 듀이의 ‘경험중심 교육과정’과 일리치의 ‘학습망’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현재 공교육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경험중심 교육과정에서는 지역사회를 교수학습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학생들이 경험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도록, 교재보다는 생활을, 지식보다는 행동을 중시하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교과서를 통해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실생활을 경험하고 사회적 활동을 하며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구온마을학교>는 학교 교실에서 빠져나와 자연 속에서 또는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역의 어른들을 만나고, 직접 생활을 경험하는 경험중심 교육과정 그 자체이다.
또한 일리치는 학교교육이 지니는 병폐를 완화하기 위해 학습망을 만들어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교육적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기 원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이를 제공해줄 수 있도록 하여 언제든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구온마을학교>는 주민참여형 프로그램을 열어두어 전문 강사가 아니더라도 주민들이 스스로 가진 재능과 특기를 살려 마을의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하며, 지역사회 안의 수많은 삶의 터전을 학습의 공간으로 만들고 마을교육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학습망’을 조직하고 있다.
<남구온마을학교>는 교육혁신지구사업으로 운영 된 만큼 중구, 계양구, 부평구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한 마을학교 사업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인천 전역에 마을학교가 번져 온 마을이 마을의 아이들을 길러내는 모습이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남구온마을학교>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들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남구온마을교육공동체> 홈페이지 ( 바로가기 ▶ )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 인천문화통신 3.0 시민기자 김진아
사진 / <남구온마을학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