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센터에 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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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피로사회’ , ‘분노사회’, ‘단속사회’… 최근 우리 사회를 정의한 책 제목들이다. 이렇게 많은 학자가 우리 사회 문제점과 대안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너무 많이 죽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한국에서 일어난 자살 사망자 수는 전 세계의 주요 전쟁 사망자 수보다 2~5배나 더 많다고 발표됐다.

02한국은 올해로 13년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다. 이젠 뉴스도 아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심각하다. 아직 경쟁사회에 뛰어들기 전 청소년과 청년 자살 증가율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OECD 국가들은 청소년 자살을 15.6%나 줄였다. 우리만 47% 나 늘었다. 더 큰 걱정은 자살 당사자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유족들은 일반인보다 자살 시도 확률이 6배나 높다. 또 1명이 자살을 시도하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주변 최소 6명은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고재학. 한국일보 논설. 2016, 6)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모든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고 한다. 사회적 유대감, 결속력의 약화, 불안정한 사회, 개인이 겪는 급격한 구조변화가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타살’이다. 경쟁에 치이고, 성과나 업적에 압박당하며, 언제 또 현재 자리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스트레스가 우울증이 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병훈·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사회적 타살이다. 이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다. 허술한 사회 안전망 속에서 고독감과 고립감, 무기력을 호소하는 외로운 개인들이며 지금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웃과 가족들이다.

대안, 일상생활에서 찾는다.
치열한 경쟁사회는 국가와 시장(자본)논리를 근본으로 한다. 그리고 민감한 현안에 대한 입장을 양극단으로만 만든다. 최근 연이어 일어났던 대형 참사에 대한 입장과 반응을 보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억울한 죽음 앞에서 반성과 대책 마련보다는 나와 다른 입장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격과 훼손에만 열을 올린다. 경쟁과 대립은 상대방을 공격해서 제압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서로를 강화하고 키운다.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며 바꿀 수도 없다. 그래서 사회를 바꾸는 새 질서는 다른 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양극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간지대, 일상생활권이다. 국가와 시장 논리에 생존과 생활이 위기에 처한 일상생활권은 삶의 양보다 질을 중심에 둔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등의 확산과 그 속에서 실험되는 생활경제, 생활정치, 생활예술의 시도가 그것이다. 개성과 자율, 협동을 바탕으로 한다. 그동안 국가와 시장(자본)을 근본으로 하는 구질서가 새질서로 교체되는 것이다. 절박한 일상생활의 의미를 자기 근거로 삼는 새 질서는 창조적이다. 지역에서 상호호혜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협동과 자율의 힘으로 신뢰를 쌓아 생활 속 현안들을 함께 해결한다. 생활 속 민주주의와 사회자본을 쌓는다. 많은 생활예술공동체가 지역에서 필요한 이유다.

03로널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는 ‘문화 민주주의’라는 글을 통해서 사회가 생존가치 survival values보다 자기표현가치 self-expression values를 중요시할 때 민주주의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했다. ‘자기표현’이 개인 간 신뢰, 관용, 의사결정 참여 등 민주주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문화적 가치가 생존가치 추구보다 우선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인 불안 해소와 안정감이 민주주의를 위한 자기표현가치 실현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이루려고 하는 공유경제나 경제적 자립모델을 포함한 생활과 생존가치 해결은 자기표현가치와 함께 이루어야 하는 생활문화사업 통합 목표가 된다.

많은 통계를 보면 사회적 신뢰도인 ‘사회자본’ 지수가 높은 지역이 경제적 성장도 실제 높게 나타났다. 저신뢰 사회에서 막대하게 들어가는 감독, 과도한 집행 절차, 보장과 보호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고신뢰 사회에서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비용은 지역 성장과 발전에 재투자하여 순환한다. 생활예술 활동은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협동과 신뢰를 쌓아 간다. 주민들은 일상적 공론장에서 개인 경험과 요구를 모아 공적인 문제로 토론하고 합의에 도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룬 작은 성공 경험들은 공동체 구성원과 주민들에 사회자본을 키우는 데 중요한 계기다.

생활예술 공간과 자생력
생활예술 활동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위한 중요한 조건은 공간이다. 하지만 공간은 운영 방식과 조성 목적에 따라 효과는 매우 다양하다. 지금까지 공공의 문화 공간 지원은 행정 관리 감독과 책임 아래 있는 직영방식, 민간단체 위탁방식, 한시적으로 임대료를 지원하는 민간 운영 지원방식 등이 있다. 이 경우 이용자는 행정의 통제와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이용자의 자발성과 상상력에 한계를 가진다. 생활문화공간 주체가 이용자에게 안정적인 연습 공간 제공 만을 목표로 한다면 이용 편의를 위한 서비스와 합의 통제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공간 이용자의 역량이 지역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점 역할은 하기 힘들다.

04결국, 공간 이용자의 자발성과 자생력 향상은 잘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발성과 자생력을 높이는 주인의식은 권력을 나누고 함께 참여하고 책임지는 과정에서 생긴다. 브라질 작은 도시 뽀루뚜알레그리에가 민주주의 모범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따라 하는 이유는 모든 주민에게 주인의식을 갖게 한 ‘참여 예산제’라는 정책의 시도였다. 주인의식은 주민 각자가 시 정부 정책과 예산에 영향을 미치고, 공정한 참여를 보장하는 정부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그 결과 행정으로 불가능했던 긴급 현안들이 해결했으며 주민의 창조적인 생활정책들은 차별 없이 제안되고 실현되었다. 참여와 개입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문화변동을 가져와 정착되었다.

문화공간에 대한 주인의식도 다르지 않다. 구성원들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업과 예산, 집행을 함께 논의하고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전체 사업 예산을 유기적이고 통합적으로 보면서 상대 사업에 대한 배려를 아쉬워 했던 것은 한정된 정보 제공이 그 원인이었다. 과거 행정은 답을 찾아 주민에게 제시해야 하는 주체였다면 지금은 주민에게 답을 물어보고 논의를 붙이는 주체이다. 과거에 문화공간 이용자들은 까다롭거나 착한 민원인 중의 하나였다면 지금은 공간운영과 성장을 스스로 해결하는 지혜로운 공유 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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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새롭게 추진하는 이번 ‘생활문화센터’는 이러한 필요성과 기대로 시작된 문화시설 공간 조성 사업이다. 그래서 기존 문화시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생활문화센터’ 조성 사업은 주민들의 생활문화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와 기회도 제공하지만, 자율적인 생활예술 동아리 활동이나 자발적인 공간운영이 가능한 환경과 조건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생활문화센터를 생활권 중심부에 배치하여 주민들의 생활문화활동이 지역공동체 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커뮤니티 아트나 공공예술, 마을 만들기 같은 사업과 연계해 지역 문화예술활동 네트워크 중심으로 ‘생활문화센터’의 가능성을 기대한다. 결국, 지역 생활문화공간은 주민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면서 주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다.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자기표현에 장애가 되지 않는 공론장, 자율과 협동으로 생활 속 현안을 해결하는 공동체, 일상생활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가 강화, 발전되는 공간으로 고민과 변화가 멈추지 않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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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관/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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