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통신 3.0 기획 1: 인천 구도심의 문화적 활성화>
인천문화통신 3.0은 2022년에 ‘문화도시’와 ‘포스트 코로나’를 주제로 기획 연재를 진행한다.
4월호는 ‘인천 구도심의 문화적 활성화’를 주제로 문화적 도시재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한편, 동구 배다리에서 활발한 문화활동으로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분들을 만나보는 자리로 마련하였다. – 편집자 주 –
천천히 함께 그물을 엮는 배다리 사람들초록한의원 민순복 안주인
2022. 03. 28. 박수희
아버지의 ‘이십세기약방’으로 돌아온 아들 내외의 ‘초록한의원’, 문화예술 공간을 꿈꾸다
인천 동구에는 헌책방골목으로 유명한 ‘배다리’가 있다. 바닷물이 갯골을 따라 깊이 들고나던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릉의 명소 ‘선교장’의 ‘선교(船橋)’는 ‘배다리’의 한자명이다. 배가 깊숙이 들어오거나 배를 타고 건너다니는, 물과 만나는 지형을 가진 곳에 붙였던 이름. 순우리말의 고운 어감 때문일까, 행정구역상으로 ‘금창동’인 이곳을 우리는 여전히 ‘배다리’라고 부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갯벌은 메워져 땅이 되고 해안선은 멀어져 바다는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배다리 이름 속에서 바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인천 앞바다는 그다지 멀지 않아서 도시의 소음이 가라앉은 새벽 공기를 타고 낮은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인천 동구는 구도심으로 분류된다. 다른 단어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가 정해지는 단어들이 있는데, ‘구도심’이 그런 경우다. ‘신도심’이 있으니 ‘구도심’이 있고, ‘구도심’이 있어야 ‘신도심’이 있을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고 그 나름의 가치가 있기 마련이지만, 미래를 향해 급하게 치닫는 우리 사회에서 ‘오래된 것’과 ‘나중 것’의 상대적인 개념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라는 가치 평가가 덧붙여져 구도심은 개선해야만 하는 낙후된 곳이 되었다.
배다리 그림지도(서예지 작가 제공) |
박태순씨가 기억하는 배다리를 빼곡하게 채웠던 가게들 |
인천 구도심의 오래된 동네들이 흔적도 없이 헐리고 대단지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장소의 주름을 없애는 동안 배다리는 전면 재개발 방식이 아닌 도시재생 대상지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상권이 번성했던 배다리는 도로변의 상가주택들과 좁은 골목마다 살림집이 빼곡한 밀도 높은 동네다.
한때 배다리는 책방, 문구점, 양조장, 병원, 사진관, 다방, 의상실, 양복점, 여인숙, 음식점, 미장원, 목욕탕, 쌀집, 방앗간, 극장, 스포츠 전문점 등 100개가 넘는 가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40년이 넘도록 배다리에서 ‘박 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는 박태순 씨는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정을 나누던 이웃 가게의 이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신도시로 사람들이 떠나고 손님은 줄어 문을 닫는 가게도 늘었지만, 헌책방, 참고서 대리점, 문구, 완구 도매상이 배다리의 상권을 지켰다. 동네 주민들은 고령화되고, 한때 2부제 수업을 할 만큼 아이들로 넘쳐나던 창영초등학교는 현재 전교생이 184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품은 동네의 매력은 생명력이 강한 법이어서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을 배다리로 끌어당기고 있다. 낡은 집을 보수하고 천천히 자신의 취향대로 공간을 가꾸어온 이웃들과 새롭게 동네에 찾아든 이웃이 함께 오늘을 이어간다.
배다리 지역 드론 사진 |
배다리 우각로 전경 |
배다리 헌책방골목에서 동구청으로 이어지는 금곡로 중간쯤에 옥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2층 건물이 고졸(古拙)한 자태로 서 있다. 건물 정면에는 큼지막하게 ‘이십세기약방’ 간판이 붙어있고, 측면에는 ‘초록한의원’ 간판이 단아하게 매달려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이곳에서 약방을 운영했고, 안채에서 자라난 맏아들은 한의사가 되었다. 대전 한의과 대학에서 병원장을 역임한 뒤 서울에서 한의원과 ‘한국노인병연구소’를 운영하던 아들은 연로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초록한의원을 열었다. 1959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 제자리에 단단하게 서 있다.
“처음부터 건물을 재생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아버님이 나이가 드셔서 약방문을 닫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터라 가구나 기구들은 죄다 먼지투성이고 건물이 말이 아니었죠. 이걸 어쩌나 싶었는데,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학예사께서 오래된 약국 기구들을 보고 귀한 자료라면서 꼼꼼히 정리해서 10개월간 특별기획전을 열어주었지요. 그때 결심했어요. 건물의 옛 모습을 가능한 한 살려서 고쳐보자.” 오래된 약방을 한의원으로 고치는 일을 오롯이 책임진 것은 민순복 안주인이었다.
초록한의원 전경 |
초록한의원 민순복 안주인 |
민순복 씨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온 김재관 건축가를 찾아가 설계를 의뢰했다. 재생 건축 설계로 이름이 난 김재관 건축가는 기존 건물의 틀을 살리고 새로운 기능에 맞게 공간을 재배치하는 반짝이는 디자인을 제시했고, 창고였던 2층 건물의 바닥과 천장을 모두 걷어내고 벽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안뜰로 바꾸는 계획안은 정말 근사했다. 건축가의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한의원 운영을 고려한 구체적인 동선을 짜고 합리적인 공간들로 재구성한 내용이었다.
“공사하는 데 4개월쯤 걸렸어요. 매일 이곳으로 출근했죠. 신축하는 거랑 달라서 계속해서 변수가 생기는 거예요.” 공사과정에서 그는 건물의 구조상의 문제를 살펴 가며 천천히 벽을 허물고, 천장을 뚫으며 설계안을 조금씩 수정해야 했다. 가구뿐만 아니라 문짝, 창틀, 창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잘 떼어내어 한쪽에 보관했다가 맞춤한 공간에 재활용했다. 건물 외벽을 치장한 옥색 타일은 이가 빠진 부분만 살짝 보완하고 약방 간판도 씻지 않은 채 옛 모습 그대로 두었다. 타일, 난간, 손잡이, 페인트 색상까지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손수 골랐다.
초록한의원 건물 옆 골목 |
초록한의원 전경 |
“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제 의견을 존중해주고 정성껏 시공해주신 시공사 사장님과 반장님께 감사드리죠.”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었으면 어려웠을 일이다. “어쩌다 보니 겨울철에 공사를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겨울이라 이웃 분들이 문을 다 닫고 생활하시잖아요. 그래서 소음이나 먼지 피해가 덜할 수 있었죠.”
겨울 공사는 누구나 주저하는 일인데, 이웃의 삶을 배려하는 마음이 통한 걸까, 그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안뜰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나무 하나하나 직접 골라서 심었어요. 물 주고, 가지치기하고, 잡초 뽑고, 손이 참 많이 가죠.” 구도심에 공간을 갖고 관리한다는 것은 품이 들고 몸이 고된 일이지만 그만큼의 만족을 얻는다.
초록한의원 건물 옆면 |
초록한의원 안뜰(초록한의원 제공) |
초록한의원 바로 옆 건물에 ‘동양가배관’이 문을 열었다. 스콘을 직접 굽는 30대 청년 이성은 대표가 운영하는 카페다. 민순복 씨는 카페 ‘동양가배관’의 임대주다. 하지만 단순한 임대인과 임차인의 계약 관계를 넘어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는 인간관계를 맺으려 노력한다. “동구가 지원하는 사업으로 젊은이들이 배다리에 가게를 많이 열었어요. 하지만 젊은이들이 지원금에만 의존해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청춘에게 시간과 돈은 너무 귀한 거잖아요.” 그녀는 찾아오는 젊은 예비 창업자들에게 구도심에서 살아남으려면 단단함과 치열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능력 있고 진심을 담아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이라면 가게 운영뿐 아니라 문화예술 활동으로 활기를 더 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줘야지요.” 초록한의원 건물에는 옥상, 안뜰, 2층 복합 공간, 세미나실 등 매력적인 공간이 많다. 민순복 씨는 배다리에 새로이 뿌리를 내리는 젊은 문화예술가들이 그 공간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초록한의원에 문화예술이 활짝 꽃피는 가까운 미래를 기대해 본다.
초록한의원 로비 |
초록한의원 야경 |
초록한의원 창살 |
글/사진 박수희(朴秀姬 / Park SuHi)
건축을 전공했고 지금은 문화대학원에서 지역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시속 4km의 속도로 다채롭고 평범한 사람들의 공간과 일상을 걷고, 보고, 말하고, 읽고, 쓰고, 노래한다. 특히 오랜 시간과 성실한 손길이 담긴 것들을 좋아한다.